제목: 2인자로 빚어져 간 대제사장 아론
출 4:13-16 여름 기간동안 성경 인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모세의 형이자, 조력자이며, 대제사장 계열의 조상이 된 아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레위지파의 형제로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포로로 살 때 태어났기에 어린 시절 삶과 죽음의 위기를 경험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고, 형 아론은 포로 가정에서 자라난 운명적 갈림이 있었습니다. 이런 성장배경은 아론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동생 모세에 대한 마음 깊은 곳의 시기심을 갖게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80이 된 모세를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나오라는 사명을 맡기실 때 모세는 이를극구 사양하였습니다. 그가 다섯 번이나 부인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돕는 자로 세우신 사람이 바로 아론이었습니다. 아론을 부르시는 호칭을 보면, 이미 하나님은 아론을 레위지파의 리더요, 제사장직을 맡길 인물로 삼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론은 모세를 만나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평생을 함께 하였던 아론의 존재는 모세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와 아론은 좋은 팀웤을 유지하며 백성들을 인도해 냅니다. 그런데, 이런 아론이 40년간 모세와 함께 하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저지릅니다. 첫번째 실수는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그는 시내산에 율법을 받으러 올라간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들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모세가 더디 내려옴을 두려워 한 백성들의 요구에 못 이겨 그만 금송아지 우상 형상을 만들고 경배하는 큰 실수를 저지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아론은 절대로 모세를 대신할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지도자의 분별력이 흐려지면 공동체에게는 재앙이 됩니다. 아론의 두 번째 실수는 모세의 리더십에 도전한 것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을 계기로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의 지도자로서의 권위에 문제제기를 합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모세의 권위를 보호하셨습니다. 그 결과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고, 아론은 모세에게 잘못을 빌며 미리암을 위한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아론은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정확하게 깨우쳤습니다. 그는 2인자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1인자가 되기 위한 영적 분별력도, 지도자다운 마음 씀씀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1인자건 2인자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 인간은 2인자 자리에 만족하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각자가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성실히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너무나 귀하게 보십니다. 토기장이는 귀히 쓸 그릇도 천히 쓸 그릇도 만들 권한이 있으며, 사람 눈에 천히 쓰이는 질그릇이 복음 사역에서는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이 1인자가 되고자 했을 때 이스라엘은 큰 곤경에 빠졌지만, 그가 자기 부르심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수행할 때 그의 삶은 다른 삶을 축복하는 귀하고 복된 삶이 되었습니다. 아론의 축복이 그 좋은 예입니다. 목사님들이 예배 마지막에 축도하는 것의 기원이 바로 아론의 축복입니다. (민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왜 하나님은 아론같이 부족한 자를 대제사장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는 뭔가 완벽해야 한다고 착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은 그 스스로도 연약하여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히 5:1-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연약한 그를 부르셔서 세우시고, 기름 부으시고, 하나님의 제사장직을 감당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리더들을 우리는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백성들이 아론의 권위에 도전했을 때, 하나님은 아론의 권위를 확실히 보호하셨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이 그것입니다. 아론의 사촌동생 고라가 주도한 반역사건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각각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지팡이는 통치력과 지도자를 상징합니다. 각각의 지팡이에 각 지파의 지도자 이름을 새긴 후 언약궤 앞에 두게 하시고,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의 지팡이에만 싹이 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론의 지팡이에만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은 온 백성이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게 만드셨고, 그 싹난 지팡이를 지성소 안에 영원히 두게 하심으로 아론의 제사장직을 영원히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아론의 삶을 통해 질서의 하나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가 부르심의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를 2인자로 빚어가셨습니다. 성장 배경에서 생겼던 시기심과 경쟁심을 극복하고, 부르심의 자리에 따라 자신의 한계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으로 그를 이끄셨습니다. 비록 인간적으로 볼 때 부족함이 많았지만, 아론은 결국 자기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모세의 조력자로서,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끝까지 다하였습니다. 그의 속죄제사를 보시고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를 사하셨으며, 그의 축복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백성들을 마음껏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잘 기억한다면, 우리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런 지혜롭고 성숙한 공동체 되길 축원합니다. 묵상 질문 1. 나에게는 아론과 같이 1인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2. 아론이 모세의 권위를 부정할 때 하나님은 모세의 권위를 보호하시고, 백성들이 아론의 권위를 부정할 때 하나님은 아론의 권위를 인정하신 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나요? 3. 나의 부르심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아론을 빚으셔서 그 자리를 찾게 하신 주님이 우리도 부르심의 자리를 찾아 가도록 빚으실 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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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온유와 순종의 사람 이삭
창 26:12-19 여름 기간동안 성경 인물들을 중에서 보통 설교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인물들을 선정해서 그 삶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이삭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삭은 창세기에 나오는 네 명의 족장,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중 한 명으로서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야곱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뭔가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그저 평이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그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삭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뽑자면 세 가지 장면이 중요합니다. 그 첫번째 사건은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이삭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당시 이삭의 나이는 대략 10대 후반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종들과 나귀는 내비둔 채 자기하고만 산에 올라가는 것이 이상해 아버지께 여쭙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제물을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는 대답을 해 줍니다. 그러고는 산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마치 자신을 하나님이 준비하신 제물인 양 결박하고 나무 위에 올려 놓은 채 칼을 들어 치려 합니다. 놀랍게도 이삭은 이 과정 가운데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아브라함은 이삭보다 백살이나 많았기 때문에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면 그가 저항하지 않아야 가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삭은 설명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 앞에서도, 자신의 목숨이 끝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와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경우에도 순종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삭의 이런 모습을 고난당한 메시아로 비유합니다. 이삭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내가 손해를 봐도, 혹은 죽게 되더라도 존경하는 아버지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장면은 그가 아내인 리브가를 맞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가 무능해서 자기 아내도 스스로 구하지 못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명확한 결혼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는 땅에는 가나안 여인 외에 다른 여인은 없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나이 40이 될 때까지 다른 여인을 사귀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저 언젠가 아버지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신뢰하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삭의 이러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종을 보내어 신붓감 리브가를 데리고 옵니다. 그녀와 처음 만날 때 이삭은 저녁 때 들에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가정과, 아내감을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자기 신부가 이 집안의 현명한 안주인이자 아버지에게도 좋은 며느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리브가를 보자 마자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사라의 텐트로 그녀를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이삭은 결혼의 문제에서도 아버지와 가정 전체를 생각하는 속 깊은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을 빼다 박은 모습들을 보입니다. 그도 아버지처럼 장장 20년 동안이나 자식을 보지 못합니다. 그 때, 그는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아마도 자신의 출생 스토리를 평생동안 부모에게 듣고, 그 모습 대로 자기 부부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삭은 가나안 사람들과 화평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이 또한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내의 장지를 살 때, 우물을 팔 때 항상 현지인들을 존중하고 화평의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새 우물을 파야 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 때 팠던 우물을 현지인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문제로 다투지 않고 조용히 새 우물을 팠습니다. 거기서 샘물을 얻습니다. 이는 기적에 가깝습니다. 그러자 현지인들은 그 물이 원래 자기 것이라고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삭은 그들과 싸우지 않고 또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팝니다. 이렇게 그는 세 번이나 우물을 팠고, 그 때마다 샘물을 얻었습니다. 그제서야 현지인들은 이삭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우물 이름 (르호봇)을 볼 때, 마지막 우물이 가장 크고 좋은 우물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계속 양보하고 피하는 데, 하나님은 그를 계속해서 축복한 것입니다. 현지인들도 그런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옳지 못한 모습도 배웠습니다. 그가 아비멜렉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두번이나 했던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거하던 그랄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그는 아버지처럼 애굽으로 내려가려 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에 내려가지 말도록 그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그가 그 땅에 거하며 농사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셔서 백 배의 결실을 맺게 하십니다. 이는 우물보다도 더 확률이 적은 기적이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처럼 이삭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말년에 판단력이 흐릿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잊고 자신의 생각대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 합니다. 이것을 막은 것은 그의 아내 리브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런 일을 아시고, 일찍부터 리브가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녀가 남편을 속인 것의 도덕성을 떠나, 리브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인생의 실수를 아내의 현명함 때문에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강한 성격도, 행동력도, 리더십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야곱처럼 끝까지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스타일도 못되었습니다. 그는 유약하고 조금은 여성스러운 면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그가 그렇게 많은 것을 갖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축복의 삶을 충분히 누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돕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고, 하나님은 그가 바른 길을 가도록 친히 인도하시고, 풍성히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축복의 인생, 복된 인생을 살아 내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삶이 복된 삶일까요? 이삭처럼 많은 재능을 받지는 못했을지라도 겸손하고 온유하게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 삶, 이것이 정말 복된 삶이 아닐까요? 예수께서 팔복에서 온유한 자와 화평케 하는 자에 대한 말씀은 이삭과 참 잘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이삭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선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주어주신 삶과 달란트에 자족하며 복된 인생 살아가시는 귀한 인생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 질문 1. 존재감이 적은 이삭이 아브라함과 야곱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사실 가운데 느껴지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2. 내 스타일을 생각해 볼 때, 이삭을 도우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을 나는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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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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