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7일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비 토플러가 타계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제 3의 물결"등의 명저 등으로 워낙 유명하신 분이었기에 그의 타계 소식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여러 기사들 가운데, 그가 생전에 남긴 여러 명언들을 다룬 기사를 읽었는데 그 중에 한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You've got to think about big things while you're doing small things, so that all the small things go in the right direction. 작은 일을 하는 동안 큰 일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작은 일들이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 <앨빈 토플러> 그가 신앙적인 이유로 이 말을 남긴 것은 아닐테지만, 저에게는 이 말이 영적인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가 남긴 말처럼, 우리는 삶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그림이든 이 것은 나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담고 있어야 하고 그래야 우리의 삶에 방향성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이 작고 사소한 것들로만 이루어져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분명한 계획과 실천이 있다면 이 작은 것들이 모여 언젠가는 큰 그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은, 일상의 스케쥴 그 자체가 아닌 일상이 모여 이루게 될 미래의 큰 그림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그림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실상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온 우주를 말씀으로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 물리 법칙과, 인간의 이해를 한참 뛰어넘은 고차원의 세계를 만드시고 주관하고 계시며,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가장 큰 신비인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작고 작은 인간의 일상 가운데로 오시기 위하여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은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덕분에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다 결국은 사망의 결과 밖에 없을 인간이라는 존재가 비로소 진정한 삶과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고 사소한 일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영원토록 아름답고 위대한, "하나님 나라"라는 그림으로 그려져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모여 "하나님 나라"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의 원칙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위해서 날마다 갖는 경건의 시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매일의 말씀 묵상과 기도가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할 지라도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하나님과의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의 원칙입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과 같이 일상의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 마다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생명을 살리는' 원칙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어떤 식으로든 생명을 살리는 일과 연관이 있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원래의 사고방식과 성품으로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채워질 때에 비로소 나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시게 됩니다. 이 세가지 원칙을 마음에 담아 두고 실천할 때에 우리의 우리의 작고 사소한 일상이 어느샌가 점점 더 분명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 허창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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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정말로 필요한데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지 몰라서 방황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어서는 알지만 마음에 믿어지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적은 없나요? 신앙적 고민이 있는 분들에게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의 이수관 목사님의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 때”라는 글이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를 보면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찾아오시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늘 하나님은 우리를 애타게 부르고 계신다고 얘기합니다 (사65:2).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은 흔히 구원을 생각할 때, 그것은 내가 쟁취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종교는 언제나 구원은 내가 깨닫던지, 내가 고행을 하던지, 무엇을 하든 내가 쟁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내가 구원받고 싶은 의지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고 싶어 하시는 열정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롬3:11). 인간은 본질적으로 교만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우길 뿐 내가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을 버렸고, 그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우기는 우리의 성향을 성경은 죄라고 얘기합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사용하는 방법가운데 하나가 마음의 갈급함입니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외롭다는 느낌이 들던지, 아니면 회의가 찾아와서 늘 재미있던 것이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느껴지던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뭔가에 대한 책임감으로 늘 염려하며 긴장가운데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 늘 자신감으로 차 있던 내 인생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무력함이 느껴진다면 그것도 역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힘들고 지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인정하고 그 분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님과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저 역시도 1993년 어느 날 자신감에 차 있는 제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저는 그 분께 의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일을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새벽기도를 다니기 시작했고, 성경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은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한결같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들기고 계셨던 하나님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시고, 그 분이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오시고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어차피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낭비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
Author
김상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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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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