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있는 전기 주전자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물이 잘 끓지 않습니다. 잘 될 때도 있지만 안될 때는 물이 따뜻해지기만 하고 영 끓지 않습니다. 물이 데워지는 동안 손으로 주전자를 꾸~욱 눌러주고 있으면 물이 끓는다는 팁을 발견해서 2-3주간은 그럭저럭 썼는데, 결국 이번 주에 완전히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걸로 커피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사발면도 먹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요. 어쩔 수 없이 새 전기 주전자를 사야겠습니다.
물을 끓이지 못하는 주전자를 보고 있자니 성경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생각이 납니다. 믿음의 행위에 있어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미지근함을 책망하시며 심지어 입에서 토해내겠다고까지 말씀을 하십니다. 미지근한 물인줄 모르고 일회용 커피를 타 마시려다 커피가 잘 녹지도 않고 맛도 형편없었던 게 생각이 납니다. 물이 아까와서 마셨지 정말 뱉어 버리고 싶었으니까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서 예수 믿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믿음의 열정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많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자기 일상 생활에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한 번도 끓어오른 적이 없는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기독교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지만 정작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구원 받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새로 믿은 사람들이 더 열정적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예수께서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격해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아는 듯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달은 대로, 사랑, 희생, 용서를 실천해 보려 용기를 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립니다. 신앙 생활에 가장 위험한 것이 ‘적당히’입니다. 왜냐하면 실상은 믿지 않으면서 믿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짜 믿음은 반드시 끓어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나의 가치관이 변하고 삶의 패턴이 바뀌어 모든 것이 주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끓지 않는 믿음은 아무리 좋은 말씀을 갖다 넣어도 삶에 녹아 들지 않아 마치 커피가 녹지 않는 미지근한 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없이 책망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망은 사랑의 책망입니다. 책망 가운데서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참으로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19-20> 예수님께서는 믿음 없는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의 마음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야 진짜 믿음이고 말씀이 삶에 녹을 만큼 끓어야 진짜 믿음입니다. - 허창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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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옆에서 기도를 해 주곤 합니다. 기도를 하려고 할 때마다 둘째 아이가 꼭 하는 말이 있는데, “무서운 꿈”입니다. 이 말은 형을 따라하다 생긴 습관인데요. 큰 아이가 제가 기도해 주기 전에 “무서운 꿈 꾸지 않게” 기도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한 때 큰 아이가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고 중간에 깨어서 울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 기도할 때, 중간에 ‘무서운 꿈 꾸지 않고 예수님 꿈 꾸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을 꼭 넣습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란 말이 있듯이 인생은 종종 꿈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의 오래된 소설, 「구운몽」에선 주인공이 겪은 일들이 모두 꿈이었고, 어떤 드라마도 사실 여주인공의 꿈이었단 식으로 끝이 났고, 기독교의 위대한 고전 중 하나인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주인공의 꿈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정말 힘든 일을 겪을 때 ‘악몽’같다는 표현을 하나 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현실은 악몽 같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요셉이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고, 그리고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창세기 28:10-15을 보면 야곱의 꿈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 채기까지 했는데, 정작 야곱의 현실은 복은 커녕 자기를 죽이려는 형을 피해 도망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밤 중에 잠잘 데가 없어서, 일교차가 극심한 중동 지방에서 노숙을 하는데 머리를 기댄 곳은 차디찬 돌베개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서러워서 인생이 참 ‘악몽’같다 여겨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꿈을 보여 주십니다. 꿈 속에서 그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와 그 위를 오르내리는 천사들과,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여전히 저 멀리 있는 지평선처럼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과 땅을 하나님께서 이어 주셨고 그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통해 야곱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았으며, 그 꿈을 계기로 자신만을 위해 살던 이기적인 그가 앞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는 결단을 하였으며,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진실로 구원의 사닥다리였고 지금 우리에게 그 사닥다리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야곱이 그러했던 것처럼 악몽 같은 현실을 살아가도 예수님을 바라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어떤 일이 닥쳐도 두렵지 않고 담대합니다. 현실이 바뀌는 것은 나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들은 매 순간 마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복임을 알고 주만 바라봅니다. 어차피 지나가고 마는 현실 때문에 너무 속상해 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서운 꿈 말고 날마다 예수님 꿈 꾸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꿈은 일장춘몽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졌고, 앞으로 이 땅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질 하나님의 비전임을 마음 속에 늘 새기며 씩씩하게 살길 바랍니다. - 허창도 전도사 |
Author
김상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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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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