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1-2)
다윗은 원수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가운데에 이 시를 썼습니다. (3절) 그런데 1-2절을 보면 그런 상황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다윗은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윗이 처한 상황은 흔한 고난이 아니라 목숨이 위험한 심각한 고난이었습니다. (4-5절) 믿음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실제 삶에는 폭풍우가 몰아치는데도 믿음을 붙잡은 사람은 태풍의 눈과 같이 고요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믿음 가운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이 6절에 나옵니다. 그는 자기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다 들으신다는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기 대적들이 무섭고 맹렬하게 자기를 공격해도,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다윗은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무섭게 반응하십니다. 7-15절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대적들에게 진노하셔서 산이 요동하고, 입에서 불이 나오고, 우박과 숯불과 우렛소리와 번개를 내고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의지하는 하나님은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대적들이 다윗을 이유 없이 죽이려는 것을 너무나 싫어 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고난받는 주의 자녀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16-19절은 대적들이 어떻게 다윗을 죽이려 했는지와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윗을 구원하셨는지가 잘 나타납니다. 대적들은 먼저 일어나 다윗을 미워합니다. (17절) 다음으로, 들은 자기들끼리 연합하고 뭉쳐서 아주 강해집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다윗에게 재앙을 꾸밉니다. (18절) 예나 지금이나 세상의 악한 대적들이 하는 수법은 똑같습니다. 이 때, 우리가 의지할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이십니다. 그 분은 이러한 세상의 비열한 대적들의 행위에 대해 공의로 진노하시는 분이시고, 대적들을 능히 이기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 이 점을 너무나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세상 바라보거나 사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만 의지하여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환란 가운데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넓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19절) 하나님이 붙잡아주시면 신기하게도 죽을 것 같은데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비록 재앙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의 기도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악한 대적들에게 진노하시며 우리를 건져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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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믹담이라 제목이 붙여져 있는 시편은, 시편 150편 가운데 6편이 있는데 오늘 그 중에 하나인 16편을 살펴보게 되겠습니다. 믹담이라 하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확증되지는 않지만, 격언, 황금, 주옥, 기둥이나 비문에 새겨진 글들과 같은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근거 아래, 유대 랍비들은 다윗의 믹담을 ‘황금의 시’, 가장 빛나는 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윗의 확신의 고백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1절 말씀에 보면 다윗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하는 말은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고, 하나님께로 피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위급한 순간 임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서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고 2절에 고백합니다. 또한 다윗은 8절에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앞서 가지 않고 늘 앞서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 나가지 않고 늘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겸손히 따르는 다윗은, 그를 권능의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도 주님 밖에 나의 복이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고백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나의 분깃이 되시며 아름다운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Most theologians seem to agree that David wrote this Psalm after he oversaw the work of moving the Ark of the Covenant to the holy hill of Zion. He had been confronted with the weight and glory of the holiness and magnificence of the very presence of God.
The Bible goes to great lengths to remind us that God isn’t like us. He is good and gracious towards us, but his holiness and glory are fearful, worship-inducing elements that we would do well to remember. The sheer weight of the responsibility leaves David asking a question that many of us ask all the time: How good is good enough for God? How good does one need to be in order to experience God’s presence and favor? David goes on to describe a man who lives a life that seems beyond what any of us could ever accomplish. Just be blameless and perfectly righteous and speak the truth all the time. Oh okay, anything else? If that is the standard, then I am in trouble. David knows it too, and the tone of this Psalm is one of desperation. The really good news is that God himself provided that man. The man that David describes is Jesus, and he came to live the life that I could never live, on my behalf. And this is really good news for all of us that put our hope and trust in Jesus because the gospel isn’t a message about how we need to be good, but how all that is good is found in Jesus. And in Jesus’ goodness (his perfection) he has imparted his goodness on us so that we can have a relationship with God. Prayer. Father God, help us to understand the beauty and holiness of God so that we would know you more and to humbly approach the throne of God. Thank you for living a life that we could not live and dying a death we all deserved. Help us to always rely on your goodness. In Jesus’ name, amen. 시편 14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시고,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십니다. 그러나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되 하나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연약한 백성을 떡 먹듯 먹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의인과 함께 계시기에, 그들은 몹시 두려워합니다. 악인들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포로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1)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6)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7) 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부패하고 악한 세대 가운데서 항상 건져주시고, 주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하는 이 세대 속에서 제 마음이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부르짖을 때, 저에게 응답하소서. 저를 잊지 마시고, 주의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제가 주의 사랑을 의지하고,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주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주님은 제 삶에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편은 다윗의 탄원시입니다.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아픈 이유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절규합니다. “하나님, 어느 때까지 나를 잊으시겠습니까?” 하나님, 어느 때까지 나에게서 숨어 계시겠습니까?” 시인의 영혼은 번민하고, 마음은 근심합니다. 원수는 계속해서 시인을 대적하고 자랑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생각하시고, 응답하시고, 눈을 밝혀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혹 자신이 사망의 잠을 잘까, 원수가 승리를 외칠까, 대적들이 기뻐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다시금 믿음을 고백합니다. 자신은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고, 마음으로 주의 구원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기로 결단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금까지 시인의 인생에서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1)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5)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6)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제 마음이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부르짖을 때, 저에게 응답하소서. 저를 잊지 마시고, 주의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제가 주의 사랑을 의지하고, 주의 구원을 기뻐하며, 주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주님은 제 삶에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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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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