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죄수는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가로 부분을 운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채찍질로 인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지고 가야할 십자가를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지도록 했습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뒤따르다는 표현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모습은 참된 제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위해 가는 동안 백성들과 여인들로 이루어진 큰 무리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중 여인들은 자신들을 가슴을 치며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당부는 예수님을 배척한 예루살렘에 큰 심판의 재앙이 닥쳐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가오는 심판이 너무나 커서 애를 낳고 젖을 먹이는 여자들이 복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전혀 낳지 못하는 여자가 복될 지경이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대인들에게는 끔찍한 환난이 다가왔으며 많은 유대인들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아무런 죄도 없지만, 죄인들을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공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구원의 의미를 되새기는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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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 갔다가 희롱 당하시고 매를 맞으시며 빌라도에게로 넘겨졌다가 헤롯에게로 넘겨졌다가 오늘 본문에 다시 빌라도와 대제사장들 앞에 서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어떤 죄목도 찾을 수 없는 예수님이시지만,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의 모함에 이리저리로 끌려 다니는 참담한 모습입니다.
어떻게라도 사형 선고를 받아내려고 하는 무리들과 재판의 결론이 나지않아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빌라도는 그들 앞에서 공표하기를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4절b: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18절: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 하니” 22절: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23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서는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형으로 내어주심을 당하게 되었지만,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에는, 온 세상을 심판하시되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빌라도의 수준을 넘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진정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메시아라면, 나의 모든 것을 드려서라도 붙들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의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죄인이었던 바라바가 풀려난 것처럼, 바라바와 같은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 덕분에 영원한 심판에서 놓임을 받았음을 기억합시다. 사순절을 지나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우리를 죄에서 놓임 받게 하신 그 사랑을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대제사장의 집에 모인 무리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갑니다. 당시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3가지 이유를 들어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백성을 미혹한 죄,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 죄,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백성을 미혹하지도,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이 두 죄는 언급하지 않고(무죄로 여기고),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인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말이 옳다고 대답하십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무리는 더욱 강하게 빌라도를 압박하고,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인 것을 안 빌라도는 예수님을 갈릴리 관할자 헤롯에게 보냅니다. 당시 헤롯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본 헤롯은 매우 기뻐합니다. 그는 평소에 예수님 소문을 듣고 궁금히 여겼고, 예수님의 이적을 보기 원했습니다. 헤롯의 질문들에 예수님은 침묵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힘써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예수님을 업신여긴 헤롯은 예수님에게 빛난 옷을 입혀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빛난 옷을 입힘으로, 예수님을(왕이신 예수님을) 조롱한 것입니다. 헤롯과 빌라도는 전에는 원수였는데, 이 날은(예수를 심문하고 불의의 재판을 하는 날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3)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12)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무죄한 예수님을 심문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안에서 인간의 죄악을 봅니다. 제 안에도 이러한 죄악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죄인인 저를 용서해주소서. 세상을 사는 동안, 악을 도모하는 데 동맹이 된 빌라도와 헤롯의 길을 따르지 않게 하소서. 진리 앞에서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시고, 억울한 일을 만날 때는 침묵하신 예수님을 묵상하게 하소서.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 참 사랑합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에서 고난당하고 심문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지키는 자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립니다.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묻습니다. “선지자 노릇을 해 보아라. 너를 때린 자가 누구냐?” 이뿐 아니라 많은 말로 예수님을 욕합니다. 날이 새자,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공회 앞에 세우고 심문합니다.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님이 답하십니다.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공회원 모두가 묻습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이에 공회원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근거로 삼아(구실로 삼아) 예수님을 정죄하기로 결정합니다.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63-65)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70)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제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할 수 없이 큰 사랑에 감사합니다. 희롱당하고 매맞고 욕을 많이 들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저도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권력자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담담히 진리를 말씀하시는 주님을 닮게 하소서. 오늘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도록 저를 붙드시고, 저와 함께 하소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후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직히 따라 갑니다. 베드로가 뜰 가운데 있을 때 베드로를 향하여 한 여종이 그와 함께 있던 것을 이야기하니 베드로는 부인합니다. 또한 두 번 더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처럼 닭이 곧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니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했던 베드로였지만 몇 시간이 지난지 않은 채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베드로 향하여 돌이켜 보는 것은 여전히 베드로를 사랑과 용서하심을 보여 줍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 “네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돌이켜 너희 형제들을 강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도 베드로를 통해 성취될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베드로의 모습은 연약한 죄인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또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통곡하는 것은 그가 회개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우리가 이 땅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모범이 됩니다. 주님의 우리를 향한 시선은 언제나 변함이 없음을 기억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어리석음과 경솔한 장담과 교만을 회개하게 하여 주시고, 언제나 우리를 향해 동일한 사랑과 은혜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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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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