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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꽃과 가시

5/3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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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사람들에게 오래토록 이어온 질문이 있다.
인간은 착한가?  인간은 악한가?
인간은 선하면서 악할 수 있는가?

선을 원하는 그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가 아니었던들
 그가 그렇게 사모할 수 있을까?
그만큼  강할 수 있을까?
그토록 모든 것을 부둥켜 안을 수 있을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누구나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숱한 적군이 있다.
때로 벗들 마저도 헤어져야 할 때가 온다.
새로운 얼굴과 눈이 마주치고 그에게 귀가 열린  까닭이다.
 
꽃만 알면 건방지게 된다. 위험하다.
가시만 알면  속는 것이다.  비참하다.
 
꽃에게 물으리라. 가시를 딛고 서 있는 그에게,
가시에게 물으리라. 꽃을 이고 있는 그에게,
 
어둠에 갇혀 있을 때,
혼자만 밤을 낮인 줄 알고 있을 때-
 
너는 누구 것이냐고
 
사랑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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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을 드라이브하며

5/2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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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전통과 혁신이라는 두 개의 궤도 위를 달리고 있다.
교회의 역사 또한 그것과 공통점이 있다.
 
전통과 혁신, 이 둘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역사를 만들어간다.
역사를 읽으면 분통이 터진다. 어쩌구니 없다. 뒤집히고 그것은 또 뒤집힌다.
또 역사를 읽으면 상쾌하다. 비록 그것이 잠시라 하더라도 치유와 자유를 경험하게 한다.
역사를 읽으면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다. 비참할 정도이다. 인생 무상을 실감한다.
그리고 역사를 읽으면 심지어 두렵기까지할 만큼 신비롭다.
비굴하고 야비하게 살 것도 아니고 거만하고 안하무인으로 살 것도 결코 아니다.
 
아무리 전통을 강조해도 인간은 혁신을 거듭한다. 오히려 신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우리 지금의 미용 스타일, 의상이 그것을 입증해준다.
만일 지금도 상투 모양과 비녀 착용의 두 발, 치마 저고리나 바지 저고리 그리고 두루마기를  일상으로
착용한다면 그래도 전통적이라 할 수 있겠다.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바지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변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쳐도 이미 우리는 혁신의 물결 속에 흐르고 있다.
아무리 혁신적, 개성적이라 하여도 여전히 전통적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있다.
 
내가 확신이 있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평안을 구해야하고,
내가 불가능하다고 여길지라도 바꾸어져야 할 것이라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할 것이다. Reinhold Niebuhr의 기도이기도 하다.
 
왜 우리가 전통과 혁신을 모두 드라이브해야하는가?
그것은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와 임무를 만나기 때문이다.
전통을 위하여 바쳐진 희생이 나 혁신을 위하여 바쳐진 희생은 엄청나다.
무엇인가가 포기되지 않는 희생이란 없다.
그러나 그 댓가를 통하여  우리들의  관계와 역활이  뛰어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최근 바이러스는 무서울 만큼 우리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바이러스는 감염된다.
그런데 바이러스 뿐이 아니다. 감정도 감염된다. 언어도 감염된다.  사상도 감염된다.
물론  행복도 감염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게 변화될 수도 있다.  
상호 관계나 주어진 역활이나  믿음의 활동에서  지금 영역을 뛰어넘을 수 있겠다.
 
어제의 전통은 오늘에는 혁신이 되고 오늘의  혁신은 내일에 또 다른 전통이 된다.
 
성경의 주요 인물들의 특징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의 말씀에서 그 초심을 지켜나가는 이야기 이다.
 
내가 고칠 수 없는 일이 있고 사람도 있다. 사람이라면 대체로 가까운 사람들이다.
가족일 수 있다.
어느 남편은 결혼 초부터 아내를 변화시키겠다고 작심하였다. 물론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에서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꾸어지지 않는다.
놀라운 사실은 아내도 똑같이 남편을 바꾸어 놓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라리 바꾸어야 할 대상은 자신부터 먼저 바꾸어 놓겠다는 결단이 더 빨리 행복지지 않을까 싶다.
 
어떤 전통과 혁신은 다분히 그 근거가 인간적 냄새가 풍겨 날 때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전통과 혁신은 언약의 말씀에 근거하고 인간은 그 도구가 될 때이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 믿음은 냉엄할 수 있다.
 
부디 바라건대 전통과 혁신을 부여받을 때 당황하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어젖하게 통과할 수 있기를 다짐한다.
내 자신의 삶 속에서, 가정과 사회에서의 대인관계에서,
그리고 신앙의 사역에 그리한다면  더 멋진 앞날을 예언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새로운 전환과 도전적 상황을 통과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목사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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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씨앗의 만남

5/2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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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흙이 거므스레 하고  부드럽고  촉촉하고 바람을 받아들일 틈이 있는 흙은 좋은 땅이다.
그 땅은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땀과 꿈이 함께 작업한 현장이다. 
그것은 씨앗이 준비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밝고 부드러운 마음 밭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예언에  눈  밝고 귀  밝은 까닭이다.
굳어지고 더러워지고 가시 밭되기 쉽건만  얼굴보다  더 잘  씻고 가꾸어온 까닭이다.
그 밭에는 말씀이  반드시 인정을 받는다.
 
영혼이라는 진실 하나로 묶어진 그  무리의 밭에는
어떤 것으로도  그 숨은 재능과 꿈과 향기는  불을 찾는 나비같이 나타난다.
 
"농자 천하지 대본" (農者 天下之 大本)은  농사하는 사람이 세상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생애 마지막에  하나님을 "농부"라 고 가르치신다.
농심(農心)은 하나님의 심장과 가장 가깝다 하겠다.

주여 긍휼을 쏟으소서.
온갖 밭들에게,
토양을 향해 쏟아지는 비와  햇살의 흡족함으로.
 
그 날을 사모하며
​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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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

5/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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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어느 밤 예배에  선글래스를 낀 채  참석한 사람이 있다.
두툼한 옷을 겹으로 입은 차림이다. 초 여름 밤이다.
그  선글래스는 그가  처음으로 산 것이다.   내일부터 쓰고 입고 멋내고 싶은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처음 생기면 교회가 먼저이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아마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아이는  그 초심으로 청춘과 삶과 신앙을 가꾸어간다고 믿는다.
 
어느  부부는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농장을 만든다. 고추도 심고 토마토도 심는다.
그 집 어린 아이는 농장 주인이 되고 물을 주며 돌본다.   그에게는 처음 열매가 신통하다.
어느 날 엄마가 묻는다. 이 과일 누가 먹을까?. 그런데 아들 대답, "교회에 가야지".  
당연히  "내 꺼야"  할 줄로 안 아빠는 놀란다.
 
대지의 어머니는  황홀하다.  위대하다.그리고 거룩하다.
내 눈물과 땀과 기도를 그는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처음 것은 다 내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나는  아무 것도 없이 여기 왔다.
내  뜰 안에 숨어 있는 꽃잎과 처음 열매의 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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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다시 만나다!

5/1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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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엄마의 가난은 자식의 부유함을 위한 것이다.
엄마의 슬픔은 자식의 기쁨의 토양이 된다.
엄마의 고픔은 자식의 배부름과 같은 것이다.
엄마의 아픔은 자식의 치유로 지워진다.
엄마의 부끄러움은 자식의 내일로 잊혀진다.
엄마의 행복은  자식을 위하여 바치는  젖은 기도이다.
 
지난 날에 엄마와 같이 살던 집이 우리 집이였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집이 우리 집이 되었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은  엄마 집이 되고
그 뒤에 그 엄마 집은 남의 집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낡은 둥지가  되었다.
 
엄마는 무섭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도 두렵지 않다.
엄마는 불쌍하다. 자식의 무덤이 된 가슴에 아직도 향을 피우고 있다.
엄마는 허무하다.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여기 저기 떠돌며 바보로 산다.
엄마는 거룩하다. 엄마의 삶에는 하나님의 심장이 새겨져있다.
아직도 다 길어올릴 수 없는 엄마의 깊은  가슴이여,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은  엄마를 보내신 분의  가슴에 나를 묻는 것이다.
 
2020년  5월  어스틴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던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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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발가락

5/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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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어느 연못 가에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새끼 한 마리.  그는 형제들로 부터 미움을 받고 따돌림을 받는다.
자신 마져도 자신을  곱게 볼 수가 없다. 외로움과 갈등으로 몸부림친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는 날개를 저으며 푸른 창공을 황홀하게 날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고운  다른 친구들이 대지에서 기어 다니고 있다. 그들은 모양만이 아닌  그 본성도 다르다.
 
발레의 모든 동작은 날려고하는 몸짖이다. 아름답고 도도할만큼 고결한 이미지다.
마치 모든 동작은 깃털같이 사뿐사뿐 움직이다.
그러나 극한 직업 중에 하나가 발레리나란다.
자기 혼자 멋을 내는  것이라면 그래도 자유로울 수 있다.
수 십 명이 함께 한 무대에서 한 사람의 동작처럼 만들어내어야한다.
그래서  이쁘고 상처 없는 발가락 가지고 발레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디 미운 발가락 뿐이랴. 가슴을 휘어파는 흔적은 왜 없으랴.
그 미운 발가락만이 그의 꿈을 위한  아이디(ID)가 되리라.
 
메시야의 천성을 가진 존재들이 믿음의 사람이다.
그 자신도 아름답지 않기는 커녕 사람들로 부터 멸시를 받는다.
만약 우리가 이 법칙을 거부한다면  그 믿음은 사기다.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하지 않는가.
훗날 어린 양은 혹시 우리 발가락을 먼저 보고 싶어하시지 않을까?.
경건이란 결코 유흥도 아니고 로토도  아니다.
 
삶과 죽음의 날개를 연마하고 있는 벗들을 생각하며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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