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존재 목적을 이루려면
본문: 마태복음 22:36-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은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십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이 이 두 계명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의 1번과 2번의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인데 이것은 신구약 성경에 기재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가능하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간의 존재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제 프랑소아 페넬롱은 “단지 성경을 읽고 예배당에 가고 ‘큰’ 죄를 멀리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이란 말인가?”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매 주일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늘 행하는 종교 행위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 그분 자체를 사랑하고 있나요? 아니면 하나님 주시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만 관심과 사랑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 관계를 위해 사역하셨고 앞으로 영원토록 그 사랑의 관계를 이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죄로 인해 깨어졌던 관계를 회복시키기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와의 깨어진 관계, 원수 되었던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죄인이며 원수인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관계 회복을 위해 계획하시고 성취하신 분이 이런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어찌 그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웃 사랑은 어떨까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말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 21절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지적합니다. 보이는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웃도 사랑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드러냅니다. 사랑은 내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요, 빛 가운데 사는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할 때,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들까지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호감을 느끼라고 명령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의 여부는 죄도 덕도 아닙니다. 다만 그 감정을 잘못 다스리면 죄가 될 수는 있겠죠. 호감이 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까지도 품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C. S. 루이스는 내가 내 이웃을 사랑하나, 하지 않나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말고 일단 하나님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까?” 물어보고 떠오르는 일을 과감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든 이웃을 향한 사랑이든 기독교적 사랑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이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사랑하려고 하면 사랑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고 이웃도 그렇고 감정이 생기고 나서 사랑의 행동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평생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감정의 문제는 뒤로 하고, 일단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우리의 몸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절대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핑계 대면서 안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사랑 없이는 우리가 주님을 믿는 사람임을 나타낼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주님을 즐거워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존재합니다. 이 존재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 삶에 동기가 되어야 하고 과정이 되어야 하고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장 큰 계명입니다. 이 위대한 명령 앞에 순종함으로 나가는 어스틴 한인장로교회 청년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각자의 존재 목적을 이루어 갈 때,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흘러넘치는 어스틴 한인장로교회 청년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 질문
0 Comments
Leave a Reply. |
"주일설교에 대한 질문을 작성해주세요."
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1층 본당) Archives
January 2025
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