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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상을 뛰어넘는 성령의 인도하심
본문: 행 16:4-10 우리는 사도바울의 전도여행을 따라가며 복음전파와 신앙의 중요한 원리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지난주까지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친 부분을 묵상했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바울은 주께서 자신을 ‘이방인의 증인’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2년 이상의 경험을 통해서 그의 사명이 보다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그는 모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머물며 형제들과 함께 잠시 기쁨으로 섬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바울의 마음에는 1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1차 전도여행 때 중도 하차했던 마가를 이번 전도여행에 참여시키는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심한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성경은 마가가 중도 하차한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지만, 바울의 반응을 볼 때 그것은 그다지 수용될만한 이유였다기 보다는 개인적인 힘듦의 문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한 번 공동체를 떠나 사명을 포기한 자를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 그가 더 훌륭한 복음의 일꾼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 배경에는 물론 마가가 자신의 조카이기도 했지만, 원래 바나바는 성품이 유하고 이해심이 많으며 사람을 세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한 쪽이 양보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이 일이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심한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둘은 서로 갈라져서 각각 다른 루트로 전도여행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바나바는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 섬으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내륙을 통해 길리기아 지방으로 출발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과 같은 유형의 불화는 우리 주변에도 종종 일어납니다. 이를 살펴보면, 관계주의 vs 개인주의, 상황주의 vs 원칙주의, 기회주의 vs 소신주의의 부딪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누가 더 옳았는가?’가 아니라 ‘서로 다름의 문제’ 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양쪽 생각 모두 귀한 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름은 궁극적 협의가 쉽지 않은 영역이며,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름이 나의 모든 행동의 변명이 될 수도 없습니다. 즉, 나의 다름을 지나치게 주장하면 무례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름이 성숙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연합은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로 인해 완전히 갈라섭니다. 바울은 훗날 마가와는 화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 후 바울과 바나바가 화해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더베와 루스드라 지역에서 사역할 때 인생의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의 영적 아들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디모데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헬라인 아버지와 신실한 신앙을 가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모계쪽의 신앙의 내력을 잘 이어받아 매우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 때 만난 둘의 관계는 바울의 평생동안 이어졌습니다. 저는 디모데를 만난 시기에 주목합니다. 그 때는 바울의 영적 스승인 바나바와 막 헤어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중요한 만남과 헤어짐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길로 인도하셔서 아름답게 열매 맺으셨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둘이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싸우지 않고 갈라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랬다면 후에라도 서로 화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을까요? 감정은 때론 일의 폭발력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일을 망치기도 하는 것임을 알고 우리는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서 부를 때 가장 먼저 할례를 받게 한 부분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구원받는데 할례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가장 강력히 주장한 사도입니다. 그런 그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한 것은 그를 무할례자 (이방인)로 보는 유대인들의 잠재인식을 고려한 처사였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디모데의 복음전파 사역이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원칙주의적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주의적 지혜도 함께 갖고 있는 사도였으며, 그의 판단의 기준은 그것이 복음전파에 유익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곧 이어, 바울 일행에게 참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의 복음 사역을 막으시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을 성령님이 막으신다는 것이 참 신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막으셨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방인에게로 나아갔듯이 성령님은 새로운 복음전파의 땅으로 유럽을 주목하셨던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드로아에 있을 때 환상을 주심으로 그가 전혀 생각치 않았던 땅 마게도냐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마치 회전문이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처럼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일하시며, 어느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것임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기 원하는 자들은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울이 성령의 예상치 못한 인도하심을 따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차 전도여행이 유럽으로 확장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로마에도 복음이 전파됩니다. 후에 로마의 정치적 영향력, 행정력, 도로, 해상교통력을 통해 예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계획이 가장 좋은 것임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놀랍게 구원 사역을 펼쳐 가실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따르는 귀한 청년 공동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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