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님과의 동행
본문: 요한복음 14:16-17, 26-27 교회 역사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철학과 운동은 리더가 살아있을 때 부흥하다가 리더가 사라지면 쇠퇴하는 것이 보통인데 교회 역사는 정 반대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에 부흥의 역사를 경험했으니까요. 그 이유는 교회의 리더인 예수님이 죽지 않으시고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며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승천하신지 열흘 뒤 성령이 제자들 가운데 강하게 임재하였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 부활로부터 약 50일이 지난 날입니다. 오순절(五旬節)이란 단어의 유래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초실)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7일(완전수)이 7번(완전수) 지난 후 이 땅에 성령님이 오신 것은 부활사건과 성령강림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잘 보여 줍니다. 이 날은 모세가 시내산 율법을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같은 날 성령이 오신 것은 신약시대에는 성령이 율법을 대신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성령의 이름인 보혜사(保惠師)는 helper이며, 원어적 의미는 ‘옆에서 부르는 사람’ 즉, ‘곁에서 부르시는 성령님’이란 뜻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 곁에서 잠잠히 나를 부르시고 위로하시며, 때론 책망하며 올바른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천년 전에 오신 성령님은 동일하게 오늘도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동일한 성령의 역사를 성도들 가운데서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이 말은 성령님께서는 모든 거짓과 위선과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까지도 보시는 성령님은 세상과 우리 스스로가 속이려는 거짓된 모습을 진리 가운데 밝히십니다. 성령님은 속지도, 속이시지도 않으십니다. 그 분은 본질적으로 진리이신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 크리스쳔과 세상 사람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비록 기독교인이 처음부터 세상보다 정직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점점 더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나중의 모습은 더욱 더 진실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인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면 그것은 그 기독교인이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은 소금’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는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순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을 ‘성령 세례’라고 부릅니다. 물 세례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존재적 변화를 줍니다. 성령 세례는 우리 삶의 방식을 성령님과 동행하도록 삶의 방법적 변화를 불러 일으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시고, 예수님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에서 하나 하나 가르치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도 우리 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제자들에게는 이 성령을 반드시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22절에서 하신 주님의 명령을 보면 주께서 이 명령을 하실 때 ‘복수형 동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령 충만을 공동체가 함께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은 현재형 명령형을 쓰셨습니다. 과거에 성령 충만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수동태 동사형을 사용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내가 뭔가를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임재하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으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한 가지 확실한 현상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마음에 오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편안과는 차원이 다른 평안입니다. 이 평안은 상황을 초월하는 평안입니다. 마치 풍랑이 이는 바다에서 평안하게 잠을 청하셨던 예수님과 같이 외부환경을 뛰어 넘는 평안입니다. 또한 이 평안은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 보장된 평안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위로의 표현, ‘잘 될거야’ 하는 것과 다르게 실제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으신 주님께서 이 상황을 아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평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는 우리에게 근심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평강은 우리가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가장 좋은 기준입니다. 성령 충만하면서 근심 가운데 있는 것은 말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충만이 임하신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평강을 넣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와 현재의 시공간적 간극이 사라지고, 오늘을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심령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평안하십니까? 샬롬 하십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것처럼 이 시간을 통해 Psalm 신앙 공동체가 함께 성령 충만을 받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함께 모인 이 자리 가운데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시기를 초청합시다. 그 다음은 성령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그 분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드립시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이 이미 약속하셨고, 주시기 원하시고, 이미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충만한 성령 세례를 이 자리 가운데에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함께 성령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가는 공동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님에 대해서 새롭게 더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요? 2.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듣고 변화되었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나누어 보세요. 4.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공동체가, 현재/지금,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우리 공동체와 목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0 Comments
Leave a Reply. |
"주일설교에 대한 질문을 작성해주세요."
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청년부 예배실) Archives
September 2024
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