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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Unity, Diversity
본문: 롬 14:1-4 최근 참석한 한 세미나 제목이 “향후 10년간 교회가 직면할 10대 도전”이었는데, 그 중 제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교회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교회 안에서의 양극화의 도전을 받을 것이란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입장만이 기독교의 유일한 길로 여기게 될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는 뉴스를 통해 한국 사회와 한국 기독교가 이 문제로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을 겪고 있는지 잘 보고 있어서 더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양극화(polarization)란 Division into two sharply contrasting groups or sets of opinions or beliefs. The act of dividing something, especially something that contains different people or opinions, into two completely opposing groups 으로 정의합니다. 즉, 극과 극이 완전히 상극화되어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으며, 자신의 신념을 거의 종교적으로 신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극화는 여러 폐단을 낳게 되는데 대표적으로는 분열 (Division), 악마화 (Demonization), 고착화 (Fixation) 등이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결국 교회는 깨어지게 됩니다. 성경은 양극화를 어떻게 이해할까요? 성경은 양극화를 극복하고 교회의 연합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둘을 하나로 연합하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엡2:14). 예수님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도 우리에게 연합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엡4:3). 따라서 성령 충만하면 상대방을 존중하지 경시나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기애도 갖게 됩니다. 반면, 양극화의 폐단인 분열은 사탄이 가장 잘 쓰는 무기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심지어 나와 나 사이의 관계를 분열시키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양극화를 극복하고 연합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교회에서 양극화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하지 않아 왔습니다. 한 쪽의 주장만 내시는 성도들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믿고 열심을 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결국 사탄만 기뻐하는 교회 분열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스승과 거짓 선지자는 처음에는 비슷하게 오지만 그 끝은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결과를 통해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야 합니다. 양극화를 부추기는 지도자들은 자신의 카리스마적 능력을 활용하여 성도들을 부추겨 분열을 선동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 결과는 독단, 자기우상화, 선동, 분열, 성적/재정적 타락으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참 스승은 비록 그 길이 힘들어도 사랑, 연합, 겸손, 포용, 성숙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주의력을 갖고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 시대에도 비슷한 양극화의 문제가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음식규정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시장에서 팔았는데 그 고기를 먹으면 우상숭배라고 주장하는 무리들과, 마음에 우상숭배의 의도가 없으니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들로 나뉘었습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고기를 먹는 쪽이 더 강한 믿음을 가진 자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의 기초가 ‘행함’이 아닌 ‘은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기초하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반면 행위에 기초하면 그 행위가 흔들릴 때마다 신앙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강한 믿음은 은혜에 기초한 믿음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어느 쪽이 강한 믿음인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권면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른지가 아니라, 어떠한 경우라도 교회의 연합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이 은혜에 기반하고 있으면 이런 비본질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든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여 그 행동을 하였습니다. 신앙에는 이쪽에도 길이 있고 저쪽에도 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수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내시기도 하십니다. 이는 죄가 아닌 모든 생각과 사상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양극 모두에게 하나님의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옳은 지보다 교회의 연합을 이루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고기를 먹는 문제는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닌데, 오히려 그 문제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바울은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약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그 의견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의 자유함이 약한 형제들에게 거리낌이 되지 않도록 배려하라고 권면합니다. 반대로 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양쪽 모두 받으신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합니다. 다른 형제를 업신여기고 비판하면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 물으실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따라서 바울이 가장 강하게 질책하는 쪽은 약한 믿음이 아니라 분열을 꾀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연합은 다양성을 포용하는 연합입니다. 교회 안에는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이 섞여 있는 상태로 연합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영역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와 관련된 영역들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영역들에 대해서는 교회는 다양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본질과 비본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정치적 견해는 비본질적 요소입니다. 이것을 본질로 둔갑시켜 하나님의 진리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사탄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 모든 것에 “사랑으로 하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합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양극화는 사랑과 관용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가장 고귀한 교회의 연합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 귀한 사명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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