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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무엇일까요? 사전적 정의로 인생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인생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합니다.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모두 헛되고 부질없는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헛된 인생이 아닌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오늘 본문을 통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창조주를 기억하는 인생입니다. 전도자는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청년의 때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때는 죽음의 때가 오기전 모든 인생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시간에서는 늙고 노쇠해 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는 우리의 인생이 찰나이기 때문에 우리의 전 인생이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이 청년에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첫번째 권면입니다.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삶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것을 기억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경외하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기억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실제적인 삶에서 모든 것의 기준과 주도권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삶의 모습을 본받아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 즉 인생의 사용 설명서를 따라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세상의 가치관,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으로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교훈, 책망, 바르게 함으로 교육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어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가치 있는 인생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인생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속한 모두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가치 인생 되시는 AKPC 청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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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기초 “4” – 헌금과 헌신
본문: 고후 9:7, 롬 12:6-8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있는 신앙의 기초 시리즈는 현재 우리 공동체에게 너무 필요한 부분들을 한 번 집어보는 귀한 시간을 주고 있습니다. 다소 세미나 같기도 하고 때로는 민감하고 부담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평소 다루기 어려운 ‘기초’라는 부분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각자의 삶에 접목한다면 큰 은혜가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오늘 다룰 부분은 ‘헌금과 헌신’입니다. 이 둘은 하나님께 나의 재물과 시간과 노력을 드린다는 의미에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태동기와 성장기에는 받고 자라는 것에만 집중하지만, 신앙의 성숙기로 접어들면 내 것을 드리고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해 집니다. 한 가지 오해를 버려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과 헌신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존하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받지 않으셔도 자신의 뜻을 이뤄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헌금과 헌신이 필요할까? 첫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이야 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복된 마음입니다. 영국의 설교가 존 헨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다” 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물과 봉사가 필요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헌신을 낭비로 보지 않으시고 기뻐 받으신 것은 그 마음의 중심에 있던 감사를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둘째, 공동체를 섬기고, 하나님 사역에 동참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지만 공동체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항상 있습니다. 우리의 헌금과 헌신은 부족한 이웃을 채우고, 먹이며, 영적 성장과 복음전파의 사역을 뒷받침하기에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에서 보듯,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헌신을 매개체로 사용하셔서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그 태동기부터 성도들의 헌신 위에 세워졌고, 그 원리는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셋째, 성숙과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으면 더 움켜쥐려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헌금과 헌신은 이러한 죄된 탐욕의 마음을 극복하는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가시적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헌금과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내어 드릴 때 더 큰 것을 맡기시는 하나님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와 2달란트 받은 종이 열심히 수고하여 그 만큼을 남겼을 때 주께서는 “적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더 큰 것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은 큰 축복으로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헌금은 특별히 마음과 깊이 관련되어 있어서 주님도 재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재물이 이 세상에서 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 중에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헌금은 결국 나의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음에 대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헌금 방법은 1) 마음을 담아 2) 정성스럽게 3)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려진 헌금은 액수에 상관없이 주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이 좋은 사례입니다. 십일조의 시작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입니다. 그 의미는 승리와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신앙인의 기본 자세와 태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시대로 가면 언약공동체 (교회공동체)의 경제원칙이 됩니다. 주의 일을 위해 택함 받은 레위지파의 생계를 다른 열 한 지파가 십일조를 통해 책임지고, 레위지파도 받은 금액의 십일조를 내며, 그들의 사역을 통해 공동체 모두가 축복을 받는 구조입니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십일조는 자신이 속한 교회에 내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만약 선교단체나 개별적 지원을 고려한다면, 십일조 외에 추가로 하는 것이 더 바른 태도가 되겠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군소 교회가 전임 사역자를 갖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사역자는 이중 직업을 갖고 사역하게 되는 데 영적 성장에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회의 재정 자립은 영적 성장에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위한 성도의 책임을 함께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십일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평생 십일조를 지키면 사는 삶 자체가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삶임을 믿으며 사시길 축원드립니다. 헌신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낮은 자리에서 섬김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서 섬김의 본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따르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섬길 수 있도록 각자에게 맞는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은사를 십분 활용해서 공동체를 섬김으로 제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청지기 정신이란 주가 주신 은사로, 주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에 대한 자원하는 마음은 나의 영적 상태와 밀접히 연관이 있습니다. 먼저 은혜로 충만해지고, 그 힘으로 섬기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부름 받을 때 주께서 ‘자격 있다’ 하신 것은 스스로 ‘자격 없다’고 사양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이 심판관이 되는 교만의 발로가 될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자격을 운운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자입니다. 헌금과 헌신은 하나님 사역으로의 초대입니다. 이 귀한 초대에 인색하지 않고, 후히 드림으로 참여하는 귀한 공동체 되시길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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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기초 “3” – 거룩
본문: 레19:1-2 우리 공동체의 현재 화두는 “기초와 기본” 입니다. 이에 따라 신앙의 기초 시리즈를 함께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은 거룩입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충분히 부담스러운 단어입니다. 오늘 설교가 부담스럽게 느껴 지실 분도 있으실 겁니다. 성령님의 은혜로 거룩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거룩의 삶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솟아나는 귀한 시간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개념을 세 가지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관계성, 구별성, 순결. 첫째, 관계성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을 따르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 해져야 가능합니다. 크리스챤적 거룩이란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충만이 스며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 스스로의 거룩의 수준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거룩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의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은혜와 사랑, 채우심이 우리를 적실 때 우리는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성도는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언행을 가다듬기 전에 하나님으로 내면을 채우는 노력을 우선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구별성입니다. 거룩은 구별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별됨이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구별해 놓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크리스쳔은 무엇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할까요? 죄된 세상과 그 문화와 행동 방식들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을 보면 두 가지를 강조하는 데,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우리가 거룩한 산 제물이 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만약, 이렇게 창조된 우리가 세상 방식대로 살면 그것이 혼용하는 것이요 구별됨과 거룩이 무너지는 것이 되고 맙니다. 먼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세상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면, 세상에서 말하는 삶의 목적은 성공, 번영,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면 위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목적대로 살면 하나님의 목적을 얻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갖고 계시는 뜻과 계획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우리가 가장 행복하고 번영할 수 있는 길입니다. 물론 그것이 세상 잣대로는 성공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영원한 심판장이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자면 최고의 성공이요 행복의 길인 것입니다. Havard’s Institute for Quantitative Social Science의 Human Flourishing Program Research Center 연구 결과를 보면 신앙과 좋은 공동체가 행복한 삶을 사는데 얼마나 중요한 영역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도록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방식 면에서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때론 악한 방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더더욱 그런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공정한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이 세상에 나가면 겪게 되는 가장 큰 갈등은 이미 관행화 된 부조리와 비리에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은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것은 ‘거룩한 분노’라고 표현합니다. 반대로,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는 것, 죄와 음행과 타락을 보고도 못본 채 하는 것은 죄를 방치하고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세상의 관행적 죄와 타협하기보단 과감히 맞서는 비느하스와 같은 청년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삶의 목적인 크리스쳔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셋째, 순결성입니다. 즉, 거룩은 자신을 순결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샤워하며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듯, 우리의 영적 순결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순결함의 기준을 예수님께 맞추라고 권면합니다 (벧전 1:15). 먼저, 말의 순결입니다. 에베소서 4장이 말하는 더러운 말의 속 뜻은 부도덕한 말, 남을 비난하는 투의 악의적인 말입니다. Cynicism은 세상 풍조에는 맞지만 크리스쳔 윤리에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남의 장점을 높여 덕을 세우고, 다른 사람이 은혜를 느끼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마음의 순결입니다. 세상은 드러나는 행동만 카운트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나의 생각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너무 중요합니다. 성적인 순결은 특히 젊은 청년의 시기에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성은 인류가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지만, 성경은 그 테두리를 혼인 관계 안으로 한정합니다. 성이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마치 한계를 벗어난 불이 모든 것을 삼키듯 모든 것을 태워버립니다. 금주도 청년의 때 가꿔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성경은 약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음주를 권하는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술은 사람을 넘어뜨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과 성령을 같은 레벨로 표현하고 양자 택일하라고까지 말합니다 (엡 5:18).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술 먹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화기애애한 모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화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러한 복된 공동체 문화를 키워가는 AKPC Psalm 공동체 되시길 축원합니다. 개인의 순결이 공동체로 확대된 것을 공동체의 거룩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교회에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엡 5장). 교회마다 갖는 문화와 특성이 다르고, 거룩함의 분위기가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깨닫고 공동체의 거룩을 이뤄가는 복된 교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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