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가나안에서 광야처럼 살기
신 8:11-18 웨이코 쪽에서 목회하시는 이진희 목사님이 쓰신 책들 중 광야 시리즈가 있습니다. ‘광야를 읽다’, 그 후속편 ‘광야를 살다’, 그리고 광야 시리즈 완결편인 ‘가나안에 거하다’ 입니다. 광야의 마지막은 가나안에 거한다는 아이디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산을 오르는 등산의 과정과 광야를 통과하는 광야길을 비교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정상을 향해 가는 등산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목사님은 인생은 철저히 과정도, 목적지도 알 수 없는 광야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광야는 인생의 자연스런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광야를 죄에 대한 징계로만 여기는 것은 인생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사실 광야는 가나안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훈련의 도장입니다. 그래서 광야 학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곳에서는 먼저 의식주 훈련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함 받기 훈련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하여 인내하고 주만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모호하던 신앙의 영역이 광야에서는 굉장히 실제적이 됩니다. 광야에서는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주신 목적이 달성되어야 만 광야를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우리 마음판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광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광야보다 가나안에 사는 시간이 훨씬 더 긴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사님도 광야시리즈의 완결판을 ‘가나안에 거하다’ 라고 쓰신 것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생활은 광야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유목생활과 정착생활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그 날부터 만나가 그쳤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나온 소출을 먹어야 했습니다. 가나안에서는 집도 짓고, 부의 증식도 생기게 됩니다. 미래를 대비하기도 해야 하며, 위험을 위해 보험도 들어야 합니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모세가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 백성들이 이제 들어가면 지금까지 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대감으로 충만했을 지 모르지만, 사실 모세는 그들을 경고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즉, 가나안에 들어가면 너희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가나안에는 광야와는 전혀 다른 위기가 있습니다. 치열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는 아니지만, 우리 영혼을 고갈시킬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위기들입니다. 우선, 가나안의 위기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가나안에서는 내 소산, 내 재산, 내 능력으로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함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릴 필요가 적어지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두번째 위기는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땅의 소출이 과연 내 노력의 결과인지, 하나님의 축복인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거둘 땅의 소산을 내가 농사지어 얻은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받는 월급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가나안의 세번째 위기는 ‘우상 숭배’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니 재산 증식이 너무 중요해졌습니다. 바알신은 다른 대단한 우상이 아니라, 풍년 기원의 신입니다. 세상에는 재산 증식의 원리들이 있습니다.(주식, 부동산 투자 비결 등)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깃했던 바알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다 그 방향으로 갈 때, 우리만 그것을 터부시하며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정도가 심각해지면 그것이 우상 숭배가 되기 대단히 쉽다는 점입니다. 결국, 가나안에서 이런 패턴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다시 광야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가나안의 위험성을 마음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야를 극복한 사람들보다 가나안을 극복한 사람이 더 적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나안에서 광야처럼 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이 땅에 정착하는 삶이, ‘이 곳이 좋사오니~’로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순례자의 정신을 유지하며 사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생각해 봅시다. 우선, 우리 삶을 단순화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많은 일로 근심하지 말고, 한 가지만이라도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직장, 교회, 소셜, 취미, 가정 다 챙기면서 깊은 영성 누리긴 쉽지 않습니다. 최 우선순위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 다른 부분들을 조정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또한, 가나안에서는 나의 창고와 재산을 너무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우상으로 탈바꿈시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땅에 완전히 정착한 이스라엘에게, 너희 보물을 하늘 창고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땅에서의 자산 증식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은 그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재산 증식에 너무 몰두하면, 우리 마음은 재산과, 그 재산이 있는 이 땅에 묶이게 됩니다. 이것이 재산이 바알이 되는 분기점입니다. 다음으로, 가나안에서 광야의 영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려놓는 기도란 쉽게 생각하면 광야에서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내려놓을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 기준으로 우리에게 지금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을 살펴보면 너무 많은 것들이 그 대상이 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광야 영성은 갈망하는 영성이요, 부르짖는 영성입니다. 간절함이 차이가 납니다. 이런 영성을 가나안에서도 유지해야 합니다. 가나안에서 광야훈련을 하는 것은 이러한 영성을 유지하는데 매우 큰 유익을 줍니다. 가나안에서 마치 광야처럼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훈련,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혼자보다는 팀을 이뤄서 함께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든 광야의 영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나안에서 광야처럼 사는 방법입니다. 가나안의 위기를 광야 영성으로 극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질문 1. 나는 지금 광야에 있습니까? 가나안에 있습니까? 2. 1번 질문과 연계해서, 나에게 가장 큰 영적 위기는 어떤 것입니까? 3. 가나안에서 광야의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더 노력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서로 나눠보세요.
제목: 환난 날을 지날 때
시 107:23-32 시편은 총 15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크게 5권으로 분류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 107편은 그 중 5권을 시작하는시편입니다. 5권은 특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가적 시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그 시작인 107편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저자는 인생의 광풍을 만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는 바다에서 배를 타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23-24). 그래서 그는 인생을 배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모든 어부들이 그렇듯, 그도 평온한 날씨를 기대하며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바램과는 정반대로 광풍이 일어 바다에 큰 물결이 일어납니다. 이렇듯,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첫번째 묵상 포인트가 나오는데요, 즉, 광풍의 근원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시편 저자는 명확하게 광풍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25). 인생의 풍랑은 기본적으로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욥의 경우에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시련도 보게 됩니다. 그의 시련은 사탄에게서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해야만 주의 백성에 대해 사탄이 시험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정하신 한계 내에서만 가능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하나님과 사탄이 공모한 것으로 보는 것은 얕은 해석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셨지만, 같은 방법 (테스트)을 통해 그것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이처럼 환란은 하나님 외에도 사탄, 세상, 악한 사람, 사람의 실수, 자연법칙과 우연 등을 통해서도 올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모르시는 환란이 주의 자녀에게 올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 환란으로 우리를 치실 때는 무섭게 치십니다. 저자는 이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욥이 받은 시련이 가장좋은 예입니다(욥1장). 그 정도 시련이 오면 그것은 진짜로 인생의 풍파이며, 하나님의 통제권 외에서는 이런 일이 올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광풍이 일 때 우리가 여호와께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르짖는 것” 입니다(28절). 꼭 기억하십시요. 환난 날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께 부르짖는 기도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뒤바뀐 우선순위를 바로잡아 줍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모든 것이 됩니다. 또한, 부르짖는 기도는 흐트러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로잡아줍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던 다른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돌이킬 때, 비로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부모-자녀 관계로 바로 세워집니다. 이처럼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내 부모임을 상기시켜주고 확인시켜주는 놀라운 영적 효과가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위급한 상황에서 꾸미지 않고 그 마음을 그대로 쏟아 붓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다시금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추가로, 부르짖는 기도는 잊혀진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켜 줍니다. 환란날에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서 해 주셨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속을 부여잡고 드리는 기도는 위기 상황에서 아버지의 눈과 귀를 우리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약속을 부여잡고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반드시 들으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으로 맺어진 언약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됩니다. 저자가 풍랑 속에서 주께 부르짖자 드디어 주께서 응답하십니다. 꼭 기억하십시요. 환란 날에 자녀들의 부르짖음에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결국, 주님은 광풍을 고요케 하시고, 평온한 마음과 기쁨을 회복시키시며,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환란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풍랑을 통해 바로잡으시기 원하신 부분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이후에 주님은 다시금 은혜와 긍휼이 가득하신 모습으로 그들을 대해 주시고,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풍랑을 일으키시는 아버지 마음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해야 환란의 뜻을 알고, 환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자녀에게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세상과 인간이 타락하여 죄가 만연하다보니,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죄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우리가 정결해져야 합니다. 환란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 죄를 자복하고 인정하게 하는 하나님의 최후의 방법입니다. 이를 C.S. Lewis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고 표현합니다. 욥의 경우에는 그가 죄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의 믿음을 시험해보고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켜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그에게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때론, 하나님은 예방적 차원에서 우리 마음이 교만해져서 죄로 치닫지 않도록 미리 환란을 주시기도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환란을 주시는지 그 목적을 다 알 수는 없으며, 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항상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환난 때에 불평 불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 펼쳐진 쓰나미와 같은 문제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되,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이 말은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란을 주신 목적만 이루어지면 다시금 우리에게 자비하시고 사랑 넘치시는 모습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르짖어라” 입니다. 바로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 나의 ‘영적 정렬’이 맞춰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환란의 목적입니다. 환란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고, 비록 많이 힘들지만, 환란을 성숙의 기회로 바라볼 줄 아는 AKPC 공동체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눔 질문 1. 내게 있는 환란에 대해 나는 하나님의 통제권 안에서 이루어진 일로 바라보고 있는지요? 2. 환란의 때를 지나며 나는 충분히, 솔직하게, 내 마음을 주님께 쏟아 붓고 계신가요? 그랬다면, 이를 통해 얻은 영적 유익은 있으셨나요? 3. 설교 말씀에서 제시한 모든 것을 다 적용해도 역시 환란은 힘듭니다. 어떻게 하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을 지 서로의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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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청년부 예배실) Archives
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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