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행함 “3” 가치관 훈련
본문: 야고보서 4:1-10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야고보서는 매우 실천적인 말씀입니다. 그 중에 오늘은 가치관 훈련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가치관은 좋음과 옳음과 바람직함을 판단하는 관점입니다. 이에 따라서 인생의 큰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가치관을 훈련할 필요는 성경적 가치관을 안다고 해서 정립되기 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서 나쁜 말과 나쁜 생각들이 계속되는 저변에는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두 마음은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의 마음, 즉 하나님과 세상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여전히 비교 우위를 얻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싸워서라도 내가 원하는 바를 달성해야 하는데, 이것이 정욕의 마음입니다.(1)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께 구해도 응답 받지 못합니다.(3)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할 때의 마음을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세상 중에 하나님을 자신 있게 선택하려면 성경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타락 이후의 세상은 인간의 무한한 탐욕과 죄성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의 세상은 깨어진 세상(The broken world)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망쳐 놓은 세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오셔서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고, 다시 오셔서 모든 창조세계를 에덴의 상태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중간기를 사는 현재의 세상은 깨어짐과 하나님의 통치가 혼재된 상태입니다. 만약, 우리 삶의 장소가 하나님의 통치가 통용되는 곳으로 바꾸면 그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 이 세상은 양쪽 어느 쪽으로든지 변화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확실하게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나가면 기독교인들도 혼동을 겪을 수 있습니다. 만약, 신앙인이 신앙을 버리고 세상적 가치관을 선택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 가운데 살게 한 것은 세상과 동화되라는 목적이 아닙니다. 세상의 깨짐을 보고 믿는 자로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준비했다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권위가 생기게 되면 그 때 내가 속한 사회를 바꿔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길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잘 믿는 목적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기 때문이신지요. 신앙과 성공의 상관관계는 매우 복잡한 다이내믹이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성경적 원칙을 살펴봅시다. 먼저, 하나님은 크리스쳔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복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다만, 성공을 주시는 목적이 우리의 호위 호식이나 어떤 보상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전파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쳔이 성공했을 때는 겸손해야 하고, 성공을 주신 진짜 이유를 알아서 그것을 이뤄야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성공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은 분명히 세상적 성공의 기준과는 다릅니다. 이것을 동일시하면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복신앙 혹은 번영신앙이 됩니다. 이런 부류의 가장 큰 문제는 성공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결국 하나님보다 성공을 더 우선순위에 두게 되는 데에 있습니다. 성공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요. 예수님조차 세상적 관점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삶을 사셨습니다. 신앙인이 추구해야 하는 성경적인 성공관을 함께 살펴봅시다. 첫째, 성공을 결과보다 과정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 받으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은 우리의 자세, 진실한 마음, 성실한 태도입니다. 이는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요셉이 옥중에서도 형통하였다고 평가받은 것은 그의 자세와 태도가 옳았기 때문이지, 결과적으로 총리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둘째, 성공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신 성공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돈이나 직위나 건강을 주셨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할 목적이 있으신 것입니다. 즉, 사명으로 성공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자세를 견지해서, 상황을 넘어 감사와 자족하는 마음, 비굴하지 않은 마음을 유지한 채 하늘의 상급을 소망해야 합니다. 성공이 사명이라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사명을 맡기기도 하십니다. 예를 들어, 누구에게는 십자가를 지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런 경우 세상적 성공은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광은 반드시 하늘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준비하실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고 다 풍족하거나 높이 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삶의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 삶에 적절한 은혜를 베푸시고 사명도 주셔서, 우리의 순종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세상의 성공을 어떻게 바라볼지, 내게 허락하신 일평생을 통해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지를 잘 정립하는 복된 주의 자녀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눔 질문 1. 성경이 말하는 세계관에 대해 여러분이 이해한 바를 함께 나눠보세요. 2. 오늘 말씀을 들으며 세상적 성공과 성경적 성공의 차이점을 이해한대로 나눠보세요. 3. 그렇다면 여러분의 성공관은 세상적인가요, 성경적인가요? 오늘 말씀을 듣고 변하기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포함해서 함께 나눠보세요. 4. 오늘 나눈 세계관, 성공관, 인생관이 정립된다면 나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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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함 “2” 마음 훈련
우리는 야고보서를 통해서 실천적 신앙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살아있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마음 훈련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는 우리 마음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습니다. 하나는 땅에서 온 마음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에서 온 마음입니다. 땅에서 온 마음은 남을 시기하는 마음과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 스스로 높이는 마음입니다. 하늘에서 온 마음은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님이 내주하셔도 두 생각이 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의지적으로 땅의 생각은 버리고 하늘의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 마음 훈련의 핵심입니다. 먼저, 야고보는 땅의 생각이 들 때 말을 아낄 것을 강조합니다. (14) 일단, 나쁜 마음이 들었을 때 말만 안 해도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 이유가 남을 시기하고 나만 높이는 마음이 진리가 아니며, 악한 세력이 불어넣어준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진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는 그런 마음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쁜 마음을 제 때 비우지 않으면 그 생각이 반드시 좋지 않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16) 시기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비교의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교의식은 우리 마음에 평안과 관계성을 해치는 포도밭의 여우와 같습니다. 신앙이 성숙하려면 우리 안에 남과 비교하려는 마음부터 관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각자가 누리는 행복과 환란의 무게가 꼭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성 앞에서 보자면 그 차이는 미미합니다. 더구나 주께서 베푸실 영생의 축복과 천국에서 누릴 영광이 너무나 값지고 커서 이 땅에서의 작은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거지 나사로 이야기, 눅 16장) 성경은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나라이며, 이 땅은 잠시 왔다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말씀합니다. 잠시 머무는 곳과 영원히 거할 곳 중에서 어느 곳에 더 집중할 지를 아는 것은 지혜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3) 그 다음으로 하늘의 마음,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을 가꿔 나가야 합니다. 사실 몰라서 못 지키기 보다는 훈련이 안되었거나 선한 마음을 가질 동기부여가 적기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놀라운 축복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은 온유함과 인자함을 갖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믿음만큼이나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도 다툼 보다는 양보하고 평화를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과도, 압살롬과도 전쟁을 회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가롯 유다의 발을 씻기고, 자신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고치신 분이셨습니다. 즉, 성경은 “하늘의 마음을 실천하는 자가 진정으로 복된 자” 임을 반복적으로 말씀해 줍니다. 비록 세상의 관점으로 보자면 지는 것 같고 양보만 하는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믿음을 붙잡으면 선한 마음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준비해 주실 하늘의 상급이 큽니다. 그럼, 다른 사람이 시기심과 자기중심적 태도로 우리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성경적일까요? 이처럼 우리가 관계적 피해자일 때 성경은 할 수 있는 한 포용하라고 권면합니다. 특히나 교회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신앙과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성숙한 신앙인은 자기 본위적이기 때문에 ‘내 생각, 내 느낌, 내 감정이’ 너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들을 교회 공동체에게 맡겨 주셔서 성숙을 경험하게 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다른 공동체원들이 받는 부담감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런 사람을 포용하는 경험을 통해서 공동체가 한 차원 높은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가롯 유다를 끝까지 품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성숙을 닮아 가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 때문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것까지 죄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계속 머금고 있으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용서하고 품어 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내 마음에 불편함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영역이 도전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회피하는 것은 가장 좋지 못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곧 또 다른 지체를 보내실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품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때는 그리스도인의 말로 권면해야 합니다. 성경의 권면대로 먼저 개인적으로 만나서 사랑의 말, 온유의 말, 화평의 말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면까지 상대방이 듣지 않는다면 그 때는 가능한 그 사람과 관계를 멀리 하는 것이 지혜롭겠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가 더 성숙해지길 원하시지만, 이를 위해 우리 감정이 만신창이가 되는 걸 원하지는 않으십니다. 비록 지금은 다 품어내지 못했더라도 끝까지 겸손히 주님과 동행해 가면 언젠가 예전에 품지 못했던 사람도 품을 수 있는 그릇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이런 성숙한 신앙의 길을, 조금 힘들어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우리 마음을 지키는 훈련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2. 당신은 시기와 다툼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편이십니까? 최근 경험을 나눠보세요. 3. ‘시기와 다툼의 마음을 오래 머금고 있는 것은 죄’라는 말에 동의가 되십니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4. 성령님의 마음을 갖도록 훈련하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방법이 있다면 나눠보세요.
1내형제들아너희는선생된우리가더큰심판을받을줄알고선생이많이되지말라2우리가 다실수가많으니만일말에실수가없는자라면곧온전한사람이라능히온몸도굴레씌우리라 3우리가말들의입에재갈물리는것은우리에게순종하게하려고그온몸을제어하는것이라4 또배를보라그렇게크고광풍에밀려가는것들을지극히작은키로써사공의뜻대로운행하나니 5이와같이혀도작은지체로되큰것을자랑하도다보라얼마나작은불이얼마나많은나무를 태우는가6혀는곧불이요불의의세계라혀는우리지체중에서온몸을더럽히고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오늘은 우리가 하는 말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예화) 이처럼 말은 그 내용보다도 전달방법, 서로 간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일찌감치 인식하고 강조해 왔습니다. ‘바바라 호버멘 레바인’이란 분이 쓴 『병을 부르는 말, 건강을 부르는 말』이란 책을 보면 어떤 말은 병을 악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말은 병을 호전시키기도 한다고 합니다.저자는우리의말을우리몸이듣고그말에따라우리의면역체계와세포까지반응을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만큼 우리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용기가 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에도 우리가 하는 말에 관한 지혜의 말씀이 굉장히 많습니다. 야고보도 오늘 말씀에서 이를 강조합니다. 그는 앞 장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면서, 이어지는 행함의 첫번째주제로서말실수를줄이라고말씀합니다.먼저그는가급적선생이되지말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선생에게는 심판 때 더 높은 잣대가 주어질 것인데, 선생이 되면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면 실수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에 대해 주시는 우선적인 교훈은, 말을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잠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정말로 지혜 있는 사람은 결국 입술을 제어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말씀들은 우리의 말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날카롭게 경고합니다. (시140:3, 시120:2-4, 잠16:27) 하나님의 창조물인 혀가 왜 이렇게 악독과 불이 가득한 존재가 되었을까요? 그 해답은 창세기3장의 인간의 타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인간의 모든 영역이 타락하였는데, 그 중에도 말이 가장 먼저 타락했습니다. 그가 범죄하기 전과 후에 자기 아내에 대한 말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창2:23a, 창3:12) 타락은 타락을 불러옵니다. 그러자 하와의 말도 타락합니다. (창3:13b) 그들의 첫 아들 가인의 말도 역시 타락합니다. (창4:9b) 이처럼, 말의 타락은 인류가 타락하면서 함께 온 결과입니다. 말은 내 생각과 마음이 드러나는 창구입니다. 근데, 인간이 타락하면서 그 생각하는 것이 다 악해지다 보니, 악한 것들이 입으로 나오기 때문에 말도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7- 8절에서 인간이 다른 모든 생물은 다스려도, 혀는 못 다스린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다 하면 사람을 불태워 버릴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는 것과, 말을 통제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한 말에 대해서 언젠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12:36-37) 그래서, 우리가 혀를 다스려야 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 상처주지 않으려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언젠가 그 말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권면대로 우리 입술을 통제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말들(horses)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큰 배에 키를 잡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그만큼 혀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기관인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의 가장 큰 특징은 ‘말을 조심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언어 훈련을 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41편에서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말이 나오려 할 때 그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인지, 공동체를 살리는 말인지 살펴보고 맞으면 나가게 하고, 아니면 멈추게 하는 역할을 파수꾼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껏 살면서 말 하고나서 후회한 적 다 있었을 겁니다. 파수꾼이 우리 입술을 닫는 축복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잠언18:21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고 강조합니다. 즉, 말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살리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6:45) 그래서, 우리의 말을 바꾸려면 말만 바꿔서는 불가능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내면과, 생각과, 심령이 새로워져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언어 훈련은 언어만 훈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선한 것을 채우는 영성 훈련도 함께 병행되어야만 됩니다. 예수님의 말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말은 생명의 살리는 (life- giving)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걸린 여인에게 주께서 하신 말씀은 완전히 자포자기한 그녀를 다시금 살게 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지혜의 근원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서 풍성하게 역사하시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셋째, 생명의 말씀으로 나를 채워야 합니다. 결국은 언어 훈련의 끝은 말씀 묵상으로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다윗은 시편 19편에서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에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말이 변하려면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매일 묵상하고 암송한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상황이 되면 우리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덧 우리 입에서 남에게 상처 주고, 남을 깎아내리고, 자기 중심적인 말들이 사라지고, 남을 세우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 중심적인 말들이 우리 입에서 나오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난다면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놀라운 도구인 우리 입술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귀한 축복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Psalm 공동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 질문 1. 나의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면 나의 언어가 어떻게 변하리라고 예상되나요? 그러기 원하시나요? 2. 나의 말이 변하기 위해선 나의 내면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시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3.생명의말씀이내안에충만해서내입에서다른사람의영혼을살리는말을해본경험을 함께 나눠보세요. 4. 오늘 말씀을 통해 앞으로 삶에서 실천하기로 결심한 부분이 있다면 나눠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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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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