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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과 친구로 살아가기
본문: 요한복음 15:9-17 세상에는 세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꽃과 같은 친구, 저울과 같은 친구, 산과 같은 친구. 꽃과 같은 친구는 마치 꽃이 피면 화려하지만 꽃이 지면 아무도 쳐다보지 않듯, 내가 잘 되면 내 주변에 항상 있을 것 같이 있지만 내가 떨어지면 곧 사라질 친구입니다. 저울과 같은 친구는 저울을 재어보듯 내게 유익이 되면 친구이고, 내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친구 관계를 끊는 친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산과 같은 친구는 언제 가도 똑같은 모습으로 정답게 나를 맞아주는 친구입니다. 나무그늘 아래의 쉼과 시원한 바람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 개념으로 봐도 이 초청은 센세이셔널합니다. 원래 우리에게 익숙한 관계는 주종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되시고 우리는 종이 된다는 말입니다. 당시 헬라 문화권에 사는 유대인듣도 이러한 관계에 익숙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선언은 매우 놀라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우리를 친구로 불러 주셨을까요? 세 가지 측면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첫째,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산과 같은 친구가 되셔서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은 줄 수 없는 놀라운 동행의 약속입니다. 때로 우리 곁에 예수님이 안계시다고 느껴지십니까? 이 약속을 기억하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 그 자리에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친구는 친구가 부를 때 반응합니다. 친구되신 예수님은 우리가 부르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이것이 친구되신 주님의 첫번째 의미입니다. 둘째, 우리와 인격적 관계를 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더 이상 우리를 종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은 주인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15). 종과 친구의 가장 큰 차이는 속마음, 비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종은 주인을 잘 섬기지만, 친구는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런 수준의 친밀한 관계로 초청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하나님도 특정한 인물들을 친구와 같이 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초청하십니다. 친구의 또 하나의 특징은 서로 비밀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불러주신 가장 큰 이유는 천국의 비밀을 우리에게 다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찬과 세족의 의미,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내주하심을 통해 예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실 것, 가지가 나무에 건강히 붙어있으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은 비밀들입니다. 이것들을 예수님은 새 계명, 즉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천국비밀을 알고 지키면 예수님의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14). 이것이 친구 되신 예수님의 두번째 의미입니다. 셋째, 우리를 위해 가장 숭고한 생명을 내어 주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시기 전 먼저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제 그 시간이 하루도 남지 않았습니다. 마치 생의 마지막을 감지한 사람이 유언을 남기듯, 주께서는 이 고백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다는 말씀은 우리를 친구로 삼고, 그 친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시겠다는 선포인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 줄 깨닫고, 성찬을 통해 그 사랑을 기억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친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 (16).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잘 깨닫는 우리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최근 리더 수련회에서 각자가 만난 예수님을 나누었습니다. 거기서 모든 사람을 친히 찾아 가셔서 만나 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마음만 활짝 열면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아무에게나 불러주지 않는 단어인 친구. 주님은 우리를 그런 존재로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속 깊은 마음 다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 예수님의 사랑을 말 안해도 깊이 느낄 줄 아는 그런 친구, 나를 찾아오셔서 나와 친구 되어 주신 그 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그런 친구, 이런 친구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 질문 1. 여러분 머리 속에 있는 친구라는 개념을 놓고 봤을 때 예수님이 우리를 친구로 초청해 주신 것이 평범한 것일까요? 2. 친구되신 예수님의 세 가지 의미 (항상 함께 계심, 인격적 관계, 생명을 내어주심) 중 내게 가장 와 닿는 부분은 무엇이고, 왜 그런지 묵상해 봅시다. 3. 예수님이 나를 친구로 택하셔서 오신 것이 왜 내게 은혜인지 생각해 봅시다. 4. 나는 예수님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친구로 살아가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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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매 맺는 삶
본문: 요한복음 15:1-7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포도원 주인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가지를 평가할 때 포도나무와 얼마나 붙어 있느냐를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것은 성경적 배경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특히 타락한 이스라엘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시편 기자는 타락한 포도나무를 회복시키시도록 인자(Son of Man)을 세워달라고 간구합니다. 인자로 오신 주께서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참 포도나무이심을 상징하는 말씀이십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 원리는 참 간단합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제대로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이 말씀을 주께서는 짧은 본문 가운데 세 번이나 강조하십니다. (4절, 5절, 7절) 이처럼 예수님과 가지가 서로 거주하는 것을 상호 거주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역할입니다. 그 방법은 앞선 14장에서 반복해서 강조하셨듯이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또한, 15장에서는 말씀을 통해서 거하신다고 강조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분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것입니다. 이 역사는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신 때부터 이미 완성되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하는데, 이것은 나의 역할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다음 세 단어로 설명하겠습니다: 묵상, 순복, 순종. 묵상은 주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계속해서 읊조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이 다른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나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에 맞추는 것을 순복이라고 부릅니다. 순종은 순복한 것을 끝까지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묵상 – 순복 – 순종을 통해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이 상호 거주하면 가지는 열매를 맺습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아버지께서는 열매 맺는 가지가 더 잘 맺도록 가지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2). 이 단어의 원어적 의미에는 ‘잔가지를 치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지(剪枝) 작업이라고 부릅니다. 가지를 칠 때는 다음 세 종류의 가지를 친다고 합니다. 도장지(徒長枝), 세력지 (勢力枝), 겹침지입니다. 우리 신앙에도 도장지, 세력지, 겹침지와 같은 가지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 좋은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려면 이러한 가지들을 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지를 치는 방법은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와 폭풍우 훈련을 보내셔서 하나씩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지나치게 큰 자의식, 옛 습관, 마음속의 우상과 같은 가지들을 제거해 가십니다. 그러면 더 좋은 열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당시에는 쓰지만 우리 인격과 삶에 참다운 성화의 모습이 나타나게 하는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놓치면 안 되는 영적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데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2). “어떻게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있는가?” 의심이 갈 수도 있지만 안타깝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도 그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가지는 겉으로는 믿음이 있어 보이나, 형식적인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적 변화도, 삶의 열매도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가지들을 아버지께서 제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꽃만 무성하게 피우는 가지와 열매까지 맺는 가지가 있습니다. 꽃만 피우는 신앙은 화려하고, 주목받고, 한때는 왕성하나 곧 시드는 신앙입니다. 반면, 열매맺는 신앙은 꽃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끝까지 섬김과 인내함으로 결국 자신과 주변이 살고 열매맺는 신앙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열매를 맺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열매는 크게 내적 열매와 외적 열매가 있습니다. 내적 열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같이 인격의 변화를 말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나는 것입니다. 내적 열매가 맺으면 외적 열매도 함께 맺혀 갑니다. 그것은 삶의 열매들입니다. 신앙인을 통해서 가정이 열매 맺기도 하고, 소속된 교회가 열매 맺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열매 중의 열매는 영혼구원의 열매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이 가장 값진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이 열매를 최고로 인정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습을 통해 주변이 예수님께 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자리가 열매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웃리치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아웃리치를 나가봐야 예수님의 시각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경험하면 세상 여행보다 아웃리치가 훨씬 더 재밌고 유익한 여행이 되서, 일년 내내 아웃리치만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들을 영혼 구원의 현장 아웃리치로 초청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건강하고 탐스런 열매가 풍성히 맺히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나눔 질문 1. 포도나무 비유에서 알 수 있는 예수님-하나님-우리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요 15:1-2) 2. 예수님과 신자의 상호 거주는 무엇인가요? (요 15:4,5,7) 3. 예수님과 신자가 상호 거주하여 열매를 맺을 때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아버지는 무엇을 하십니까? (2절) 4. 예수님께 붙어 있지만 열매맺지 않는 가지 (꽃만 피는 가지)와 열매 맺는 가지 중 나는 어떤 모습에 가깝습니까? 5. 내가 내적 열매(성품), 삶의 열매, 영혼 구원의 열매 중 좀 더 맺기 원하시는 열매는 무엇이며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
주일설교 산책 (바울의 기도 권면)
샬롬! 신앙 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해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삶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바울의 마지막 권면으로 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권면합니다. 첫째, 기도에 힘쓰는 것은 깨어 있기 위함입니다. 깨어 있다는 의미는 영적으로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골로새 교회에 성도들을 처해 있는 상황(잘못된 사상, 철학, 속임 수, 이단)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도에 힘쓰며, 영적으로 살아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영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무뎌 질 때 우리는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지고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굳건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바울은 기도에 힘쓰고, 깨어 있어야함을 강조합니다. 둘째, 기도할 때 감사하라고 권면합니다. 때로는 간구에 몰두하다 보면 감사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기도를 보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송축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그 감사가 기도에 풍성해야 할 것을 바울은 권면합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입니다. 3~4절 바울은 자신과 같이 복음 전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들의 안위, 형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 전도사, 선교사를 의미합니다. 그들을 말씀과 사역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바울은 권면합니다. 또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서 교회와 옆에 있는 청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복음과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어려움에 있는 청년들, 목장의 목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바울의 권면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기도 권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무더운 여름, 영적 민감함과 분별력을 위해 우리는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하며, 염려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하며, 또한 기도를 필요로 하는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AKPC 귀한 청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Amen! 나눔 질문 얼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는지 개인의 기도생활을 점검해 보고, 오늘 말씀을 듣고 결단한 것을 나눠봅시다. 응답 찬양 – 우리 함께 기도해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긍휼 베푸시는 주 하늘을 향해 두 손 들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빗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 마침내 주 오셔서 의의 빗줄기 우리 위에 부으시도록 |
"주일설교에 대한 질문을 작성해주세요."
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1층 본당) Archives
Januar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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