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본문: 행 19:4-12, 20 바울은 아테네를 거쳐 고린도에서 사역을 정리한 후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합니다. 그가 안디옥으로 돌아온 지 채 1년도 안되어서 그는 다시 3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그는 먼저 1,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방 교회들을 방문하여 제자들을 굳건히 세우고 에베소로 가게 됩니다. 에베소는 확장된 바울의 사역지의 지리적 중간지점에 위치하였으며, 로마 최대의 상업과 교통의 중심 도시 중 하나로서 문화 예술과 철학이 꽃 피운도시였습니다. 이 곳에 세워진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 지역의 중심 교회로 성장합니다.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교회의 맏형 격인 교회요, 골로새 교회의 모교회가 됩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이 어떤 특징이 있었길래 그 곳이 이렇게 크게 부흥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의 에베소 사역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성령세례, 두란노 말씀사역, 성령사역입니다. 첫째, 바울의 “성령 세례” 강조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만난 영접자들에게 성령을 받았는지 가장 먼저 묻습니다. 이들은 성령이 계신 것 조차 듣지 못한 무지한 상태였습니다. 이들에게 바울은 요한의 세례 (회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불과 성령 세례)의 차이를 설명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합니다 (5). 그러자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성령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자들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생긴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이것을 성령 세례라고 부릅니다. 성령 세례는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받으며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면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십니다. 체험적 신앙은 삶의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할 확신과 위로를 줍니다. 이것이 에베소 사역의 첫 특징입니다. 둘째, 두란노 사원에서 말씀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도 처음에는 여전히 회당에서 변론하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마음이 악한 자들이 훼방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에는 이런 경우 바울은 다른 도시로 이동해서 사역을 했겠지만 에베소에서는 달랐습니다. 그는 훼방꾼을 피해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거기서 강론을 이어갑니다. 두란노 서원은 티란누스라는 에베소 출신의 유명한 철학자가 세운 개인 학당이었는데 바울이 그 장소를 빌려 사용한 것입니다. 두란노에서 바울은 앞에서 세웠던 제자들을 모아 본격적인 성경 강론을 약 3년간 이어갑니다.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하루 약 5시간씩 강론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두란노 말씀사역은 사역의 대상이 피전도자에서 제자들로, 내용이 복음전파에서 말씀 강론과 전도 및 훈련으로, 그 환경이 회당에서 헬라 철학 학원으로 변경됨을 의미합니다. 보다 개방성과 안전성이 확보된 곳에서 준비된 자들을 대상으로 보다 깊은 말씀 사역을 진행하자 그 파급효과는 굉장했습니다. 성경은 아시아의 모든 유대인과 헬라인이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두란노 사역을 통해 에베소 교회는 말씀으로 훈련 받은 제자들이 든든한 밑받침이 되어주는 튼튼한 교회로 거듭납니다. 셋째, 표적과 이적의 성령 사역이 활발히 일어납니다.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으면 그 병이 났고, 악귀가 쫓겨 나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이적들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도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의 주체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성령의 표적을 보면 현상과 그 일을 베푸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표적의 현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표적과 이적을 주시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으십니다. 당시는 기록된 말씀이 희귀하고, 예수 복음을 생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많은 상태였기 때문에 성령의 표적들은 로마의 억압 속에서 복음에 귀 기울이고 초대 교회가 성장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사역이 왕성하게 일어나자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20).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의 방향성을 전략적으로 바꿨던 것이고, 그 전략은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과연 그는 어디서 이러한 영감을 얻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울과 예수님의 parallel로 가득합니다. 바울이 강조한 성령 세례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세례였습니다; 바울이 성령 세례를 주고 세운 제자가 열 두 제자였는데 이는 예수님이 세우신 제자와 같은 수였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왕 되시는 나라이자, 예수님의 공생애 중 최초로 선포한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열 두 제자를 세우고 삼 년간 강론한 것은 예수께서 삼 년 공생애 기간 중 열 두 제자를 가르치신 것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바울이 행한 병고침과 축사의 표적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주 사역이었습니다. 흔히 예수님의 3대 사역을 preaching, teaching, healing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이 3대 사역을 그대로 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 다시 훼방꾼들을 만났을 때,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을 만났을 때, ‘예수님’만 집중하고예수님에게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이 하신 대로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역의 방향성을 전격적으로 바꿨을 때 에베소에는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악귀가 고백하는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바울은 마귀까지도 예수님 다음으로 인정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예수님 한 분으로 충만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 삶의 넘지 못할 벽은 무엇입니까? 예수가 답입니다! “예수님 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말씀 부여잡고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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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레니즘의 심장부에서 헤브라이즘의 진수를 전파하다
본문: 행 17:16-18, 32-34 바울은 트로이에서 성령의 강권적 인도하심을 따라 에게해를 건너 유럽의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그는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거쳐 헬레니즘의 중심지인 아테네에 도착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바울은 거의 쫓기다시피 왔으며, 특히 베뢰아에서는 너무 급한 나머지 실라와 디모데는 남아 있고 바울과 누가만 먼저 이동하였습니다. 이렇게 도착한 아테네를 돌아본 바울의 첫 반응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 신전들과 유대인 회당과 장터를 돌아본 후 온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수많은 우상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 마치 주인행세를 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영적으로 억압하고 구속하는 모습을 보고 격분했을 것입니다. 우상의 본질은 자기가 만든 신입니다. 우상숭배란 자기가 만든 신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사2:8-9). 굉장히 비이성적인 것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이토록 터무니없는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은 창조주와 영적 연합이 깨지면 불안과 두려움과 공허감으로 고통받습니다. 사탄은 이러한 인간의 두려움을 가장 잘 이용하는 존재입니다. 동시에 사탄은 인간의 탐욕도 가장 잘 이용하는 존재입니다. 결국, 모든 우상은 인간의 두려움과 탐욕을 이용한 사탄의 속임수이며, 그 근본적 원인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마귀의 역사를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중재하셔서 연합을 회복하심으로 인간이 두려움과 탐욕을 극복하여 더 이상 우상에게 속지 않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시 아테네에는 수많은 신들과 신상,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우상들은 아테네 사람들의 영과 혼을 위협하고, 속여서 그들의 심령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격분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회당과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예수의 부활’을 변론한 것입니다. 이성, 과학, 사변으로 대변되는 헬레니즘의 심장부 아테네에서 종교와 윤리를 강조하는 헤브라이즘의 진수인 예수 복음, 예수의 부활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은 문명의 충돌이요, 사상적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들은 당대 최대의 지식층인 아테네 사람들은 도대체 그의 말이 뭔 말인지 어리둥절해서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 법정으로 데려가 그의 주장을 들어봅니다. 그들이 가장 듣고 싶은 부분은 바로 ‘예수의 부활’ 부분이었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은 소위 지식인들에게 가장 걸림이 되는 영역입니다. 부활사건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만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바울이 설교한 부분이 22절에서 31까지 이어지는데, 이 설교는 헤브라이즘의 진수인 복음을 헬레니즘의 프레임에 맞춰 설명한 명설교입니다. 바울은 이 설교를 통해 세 가지를 강조합니다: 1) 하나님은 누구신가? 2) 인간은 누구인가? 3)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아테네인들의 넘치는 종교심을 언급함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이는 정죄하기 보다 상대 문화를 존중하는 그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종교심은 예수 복음과의 접점이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 우주 만물의 주관자, 한 분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는 그리스의 다신론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동시에 인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던 그들의 신관을 완전히 수정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신전을 화려하게 짓고, 신들을 잘 섬기는 행위가 정작 하나님께는 허사와 같음을 집어주었습니다. 우주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결정으로만 거처를 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인간의 섬김도 필요 없으신 분이십니다. 둘째, 인간은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지음받은 존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으시고, 우리 안에 종교심이 많은 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이며, 이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종교심은 올바른 신앙심으로 연결될 때만 유의미한 것입니다. 바울은 청중의 높은 종교심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을 소개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멋지게 헬레니즘의 이성을 활용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예수는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시키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인간이 창조주의 창조원리를 저버리고 하나님은 찾지 않는 것은 단절 가운데 머무는 것이며,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이 죄를 간과하셨으나 이제는 모든 족속, 모든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고 선포합니다. 죄인이 죄사함을 받고 창조주와 연합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 바로 예수이십니다. 그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자임을 온 인류에게 증거로 보이신 것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그것이 헬레니즘이 진정으로 찾아야 하는 그 신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의 설교에 대해 어떤 자들은 조롱하였지만, 일부는 회심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자가 아레오바고의 관리 디오누시오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디오누시오는 훗날 아테네 교회와 고린도 교회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맡으며 초대교회의 중요한 리더가 됩니다. 아테네 사역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진행된 첫 복음 전파로서 예수 복음이 유대사회를 넘어 범세계적 커뮤니티에 전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그의 설교는 ‘복음의 본질은 양보하지 않으면서, 복음의 포장은 유연하게 접근한 가장 모범적 설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훗날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에서 헬레니즘의 시구와 문장을 종종 인용합니다. 쫓기듯 내려간 아테네에서 그는 주님의 마음으로 그 도시와 시민들을 보았고, 그 결과 놀라운 열매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가 그 심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바울을 닮는 저와 여러분, Psalm 공동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질문
제목: 빌립보 교회의 시초, 한 사람
본문: 행 16:12-15 지난주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이 소아시아로 가려는 행보를 막으시고 강권적으로 유럽으로 이끄신 성령님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바울 일행에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합류합니다. (주어가 ‘우리’로 변경됨)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에게해를 건너 네압볼리를 거쳐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자 로마의 식민지로서 퇴역 군인들이 사는 상당히 보수적인 지역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바울은 중요한 세 만남을 갖습니다. 첫 만남은 루디아라는 여인과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바울 일행이 첫 안식일을 맞아 기도할 곳을 찾아 강가에 나갔을 때 이뤄집니다. 그 곳에 온 루디아는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를 믿은 자였습니다. 그는 최고급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과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잘 몰랐다가,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 때 주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자 루디아는 복음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녀는 곧 바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그 곳에 유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녀와 그 집 모두가 세례를 받게 됩니다. 두 번째 만남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인과의 만남입니다. 이 일은 바울 일행이 루디아 집에 머물며 빌립보 사역을 이어가던 중 우연히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 그들을 보고는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언뜻 들으면 좋은 말로 들리는 이 말은 사실은 듣는 이로 하여금 혼란과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말로서 바울 일행의 복음전파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말입니다. 참다 못한 바울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축사하자, 그가 즉시 그녀에게서 나옵니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점치는 여종이 주인에게 그동안 많은 수익을 주었었는데, 이제는 점을 칠 수 없게 되자 주인이 화가 나서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료들에게 데려가서 고발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주인이 고발한 죄목은 ‘소란죄, 선동죄’였습니다. 그러자 빌립보의 상관들이 굉장히 잘못된 조치를 합니다. 즉, 고발한 자의 말만 듣고 자초지종도 살피지 않고 그들을 심하게 매질을 하고 깊은 옥에 가둔 후 차꼬를 발에 채웠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입장에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이 곳에 왔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초를 당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입에서 불평이 나올 법도 한데, 그들은 놀랍게도 불평 대신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위대한 면모입니다. 동시에,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적 개입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때,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며, 차꼬가 다 벗겨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로마의 상관들은 불의하게 이들을 처벌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들에게 공의를 베푸신 것입니다. 세번째 만남은 간수와의 만남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간수가 자다가 깨어나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여 자결하려 합니다. 아마도 당시 로마는 간수들이 자기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매우 잔혹하게 처리했던 모양입니다. 이 때, 바울이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간수는 등불을 들고 들어가 그들이 여전히 옥 안에 머무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간수와 바울의 처지는 완전히 역전됩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신앙인이 정말로 신앙을 올바로 가지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자가 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그랬고, 십자가 상의 예수님이 그랬으며, 나치와 일제의 억압 속에서 신앙의 정조를 지킨 믿음의 선조들이 그랬습니다. 이 간수는 바울 일행을 보며 벌벌 떨며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질문을 합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 간수는 바울의 담대함을 보고 그가 구원받은 자임을 한 눈에 알아본 것입니다. 살아 있는 크리스쳔의 모습을 보면 이런 진정한 영적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간결하게 간수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미 예수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의 진수로 바로 들어갑니다. 이처럼 복음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또 다른 복음의 비밀은 가정을 통해 구원 사역이 펼쳐지는 점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기본 단위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한 사람이 믿으면, 그 가정이 구원을 받는 것을 성경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간수가 예수를 영접하자 루디아와 똑 같이 바울 일행을 집으로 초대하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그의 상관들이 간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아주라고 명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처분을 분명하게 집고 넘어감으로써 사회적 부정의를 간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상관들이 바울에게 찾아와 예의를 갖추고 떠날 것을 청하자, 바울은 루디아를 한 번 더 격려한 후 빌립보를 떠납니다. 결국, 바울이 빌립보에 심은 자는 루디아 가정과 간수 가정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두 가정이 빌립보 교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교회가 됩니다. 그들은 바울이 사역하는 내내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과 일꾼도 보내며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한 사람은 곧 교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 사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 그러한 한 사람이 되겠노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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