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한 달 반의 기간이었습니다. 절망과 좌절, 분노와 슬픔이 우리들의 온 맘에 멍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영국의 런던타임스는 1952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열망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몇 주간, 수백만의 장미꽃이 피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참한 현실에서 기어이 꽃을 피우고야 마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은 ‘공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선량한 사람들이 치뤄야 하는 대가는 악인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남에게 해 안 끼치고 법 안 어기고 산다고 해서 착하게 사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존중 받지 못하고, 정의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되는 상황에서,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눈 감고 귀 닫고 입을 닫아 버리면, 그것이 곧 ‘악’을 돕는 일입니다. 이천년전 유대에 아리마대 출신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공회원이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도 내심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 공회원으로서 그는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아무 죄 없이 고난을 당하시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으시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그는 각성했습니다. 더 이상은 잠자코 있을 수 없어서 용감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신성모독의 죄로 이제 막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그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를 불이익을 생각하면 그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의 시신이 밤새 매달려 있는 것을 못 본 척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신을 처리하느라 부정해지면 안식일 의식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예수의 시신을 받아 정성껏 장례를 치뤘습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예수의 시신은 아무 공동 묘지에나 버려졌을 것입니다. 그는 선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 참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지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영광스런 직분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 간다면, 나의 삶은 세상이 악해지도록 돕는 것 외에는 어떤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선한 행동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데에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이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깨어나야 할 때라 믿습니다. - 허창도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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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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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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