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의 꿈이 산산이 깨어진다.
곧 바로 학업의 부푼 꿈으로 가슴은 뛴다. 혹은 다음 달 신부를 맞을 준비로 설레이고 있다. 그 날 갑자기 그들의 행복은 공중 분해된다. 수 만리 집 떠나 이름조차 낯선 나라에서 꽃다운 청춘은 그렇게 잊혀진 이름이 된다. 그것이 고국에 바치는 희생이라면 서럽지는 않다. 그것이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것이라면 억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고귀한 피의 희생을 싸구려로 지워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나 잔인한 처사이다. 허공을 딛고 건설되는 명예나 나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평화는 소원을 따라서 찾아오지 않는다.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하는 과정이 길고도 멀다. 강력한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 자유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이다. 이름 없는 병사의 살과 머리까락은 눈 덮힌 산야에 뿌려지고 7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 상처 남은 유골로 그의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의 꿈은 벌써 그의 옛 동무들과 그리운 고향 언덕과 시냇가에 뛰놀고 있다. 그 흔적을 찾는다는 것은 국가의 임무이며 힘이다. 죽어 돌아오는 병사 는 영광스럽다. 그 앞에서 통치자도 고개를 숙인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잘 죽어야한다. 나라와 죽음 앞에 담대한 벗들을 생각하며 이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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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이 맘때는 보리 타작과 모내기가 한창이기도 하다.
보리는 작년 늦 가을에 땅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차가운 얼음과 눈 바람 속에서 성장을 멈추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그 대지를 떠나 먼 여행을 시작한다. 곧 이어 그 빈 자리는 시집 올 벼들을 위한 신방처럼 꾸며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작열하는 뙤약볕을 버티어 늦가을까지 버티어간다. 끝내 그 곳에서 잘리고 벗겨져 또 다른 여행을 이어간다. 보리는 땅을 만나야 살고 물 속에 있으면 죽는다. 벼는 물을 만나야 살고 마른 땅에서는 죽는다. 벼는 여성적이며 보리는 남성적이다. 물이 남성적이라면 땅은 여성적인가 싶다. 그 시절 보리 피리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는다. 벼 줄기는 속이 차있다. 그러나 보리 줄기는 속이 비어 있는 까닭에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정작 넘어지기 쉬운 것은 속이 비어있는 보리가 아니라 속이 차있는 벼가 아닌가. 보리는 매서운 겨울을 통과한다. 그 후에야 무더운 여름 양식이 된다. 벼는 늦 가을 끝까지 따가운 햇살을 먹고 무르익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따뜻한 겨울 양식이 된다. 다르지만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살아간다. 지난 추운 겨울 보리는 이 무더운 여름 밤의 희망이였다. 지금 이 무더운 여름 벼는 다가오는 혹한의 희망이다. 어두움 속에서 겨울 꿈을, 혹독한 아픔 속에서 여름 꿈을 품는 용감한 벗들을 생각하며, 이승태 벳새다 마을 들녁에서 5000명의 잔치가 베풀어진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 많은 음식을 제공하는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빚어낸 기적이 아닌가!. 그 임자를 제자들은 "우리에게"라고 말한다. 오직 한 사람만 "여기 한 아이" 의 것이라 전한다. 그러나 그 마저 그 아이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아람의 국방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린다. 그의 아내에게는 어린 여종이 하나 있다. 그는 이웃 나라에서 잡혀온 소녀이다. 고국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원수가 병든 것을 알 때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자기 고향의 선지자를 떠올린다. 주인이 그를 만나면 나을 것을 확신한다. 고국의 강에서 7번 몸을 씻고 그는 낫는다. 그런데 아쉽다 . 책은 그 아이의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름을 몰라도 괜찮을 인물은 알려지고 알려질 만한 사람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 사실이 궁금하다. 믿음의 사람들은 새로운 감동을 경험한 곳에 새로운 이름을 남긴다. 창조자는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은 그 생물에 이름을 붙인다. 창조자는 인간이 이름을 어떻게 부르나 귀를 기울이신다. 창조자는 오늘도 나를 보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읽어주지 못하면 어떠랴?. 스쳐지나가버리면 어떠랴? 보상이 없으면 어떠랴? 그래도 너는 내 앞에서 꽃으로 있는 것을 어쩌랴. 꽃이여 내가 너 이름을 모르면 어떠랴?. 네 위치와 모양과 빛깔의 까닭을 모르면 어떠랴. 지금 내가 너를 간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 이름을 모른다하여 네가 꽃이 아닌 것이 아닐진대. 내가 네게 이름을 붙여주면 될 것을. 오늘을 어제와 다른 이름으로 가꾸어가는 벗들을 생각하며 이승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