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변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다가도, 수 개월째 계속되는 고통에 지치고 힘들어서, 이제 그의 생명마저도 놓아 달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절망하다가 또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업치락 뒤치락 하듯 탄식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고난의 의미를 질문하던 욥은, 그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합니다.
11절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5절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7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20절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는 고통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실 때, 우리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분명 그 고통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비극일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망일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면 그것이야 말로 인생의 절망 중의 절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실 만큼 소중한 존재입 니다.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시고, 우리를 늘 사랑의 눈으로 지켜 보호하시며 감찰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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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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