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의 욥기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엘리바스를 언급하시면서 욥의 세친구를 꾸짖으십니다. 고통 당하는 자와 함께 울어 주는 것이 참 지혜이며,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라고 짐작해 상대방을 정죄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하나님은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던 세 친구를 용서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기도 후에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갑절의 재산을 주십니다. 욥이 잃은 것은 재산, 명예, 관계 그리고 자녀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자녀들도 다시 주십니다. 욥은 자녀 모두에게 재산을 물려줄 정도로 부유하게 되었고, 장수의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 평안히 생의 마지막을 맞는 복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고난을 경험하게 하실 수 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 더 큰 복으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고난 가운데 인내하며,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아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난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 처한 성도들이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오늘 하루의 삶이 하나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삶의 예배가 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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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과 의로움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욥은, 하나님께서 입을 여시자, 곧 잠잠해졌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으로, 우주의 섭리와 자연의 이치에 대해 언변을 펼치시니, 욥은 주님 앞에 그의 무지함을 내려놓고 겸손한 모습으로 기다렸습니다.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40:5) 하는 조심스러운 고백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며, 이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습니다. 욥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성찰은 그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입으로 고백하는 순간이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만난 욥의 결정적인 고백임을 알수 있습니다.
2절: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6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을 깨닫으면 깨닫을 수록 나 자신은 더욱 더 작은 존재임을 알게 되는 믿음의 원리일까요? 하나님의 존재 앞에 섰을때, 욥은 변명할 말도 행동도 아무 필요가 없고 그저 하나님의 영광 앞에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긴 연단의 시간을 통해 깨닫았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 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늘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인생에 고난이라는 어려운 작업으로 개입하셨고 그것을 통하여 욥에게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큰 영광을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는 깨닫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까? 그런 크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고 있습니까?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깊이 살펴보는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베헤못에 이어 리워야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리워야단은 고대 동방의 세계에 알려진 신화적 괴물입니다. 베헤못 이상의 위협적인 존재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리워야단은 바다를 혼란케 하는 괴물인데, 욥기의 묘사에 가장 가까운 현존 동물로는 악어를 들 수 있습니다. 리워야단에게는 욥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리워야단의 모습에(무시무시한 이빨, 눈, 코, 입에서 나오는 불꽃과 연기) 모두가 압도됩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리워야단을 포획할 수 없습니다. 리워야단 앞에서는 강한 용사도 도망할 수밖에 없고, 용사의 칼, 창, 화살도 무용지물입니다. 땅 위에서 리워야단과 비교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리워야단은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이고, 모든 높은 자와 교만한 자들 위에 왕처럼 군림합니다. 하지만 이런 리워야단조차 하나님께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리워야단을 통제할 수 있는 권능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리워야단을 통제하실 수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리워야단과 같은 세상의 악의 세력을 통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공의와 의의 통치를 의심했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질서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너는 밧줄로 그 코를 꿸 수 있겠느냐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꿸 수 있겠느냐” (1-2) “아무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10)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세상의 어떤 강한 자라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의 악의 세력 또한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깨닫습니다. 주여,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위대하신 통치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을 주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되고 겸손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하나님이 욥에게 두 번째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하나님 말씀이 피조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질서에 대한 묘사라면, 두 번째 말씀은 인간 세계의 정의에 관한 말씀입니다. 욥은 그동안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데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불의하게 행동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는지 물으십니다. 욥이 정의와 공의를 수행할 수 있는지 물으시며,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욥을 인정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베헤못을 언급하십니다. 베헤못은 소처럼 풀을 먹고 사는 초식 동물입니다. 하지만 억센 허리와 튼튼한 넓적다리, 강한 뼈대를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베헤못도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하에 있습니다. 큰 강물도, 요단강 물도 베헤못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고, 베헤못이 깨어있을 때는 어떤 사람도 감히 베헤못을 잡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베헤못을 통제하시고 제어하십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능력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천둥 소리를 내겠느냐” (8-9)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이 저에게 침묵하시고 외면하시는 것 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나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저 스스로 저를 구원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제 삶이, 이 땅의 모든 존재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있음을 믿고, 주님을 선하심을 신뢰하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은 욥에게 땅과 하늘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동물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욥에게 답변하실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트집 잡는 자, 논쟁하는 자로 부르시지만, 이것은 법정적 용어로 쌍방 간에 옳고 그름을 가리듯이 공정하게 따져 보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의 답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마지못해 대답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변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자기가 하나님께 말을 하면 하나님이 자신과 다투시지 못하고 오히려 들으실 것이라 변론했지만, 막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이 비천한 존재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린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전에 한 말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며 후회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욥이 고백처럼 성도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으며 소망하는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의 주관자되심을 찬양합니다. 연약한 인간의 삶 속에 개입하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입술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 불만, 원망을 쏟아 놓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며 겸손하게 주님 앞에서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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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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