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사랑의 기초 위에서 신령한 것(은사)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사모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비교합니다. 방언은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고,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합니다. 하지만 예언은 그 대상이 사람이고, 사람에게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합니다. 방언과 예언 둘 다 덕을 세우지만,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다 방언하기를 원하지만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방언은 그 내용이 통역되지 않으면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은사의 목적입니다. 은사의 목적은 나의 은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피리나 거문고가 각기 고유의 소리를 내지 못하면 이 악기들은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만일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 군인들은 전투를 준비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소리가 있지만 그 중에 뜻 없는 소리가 없듯이, 교회의 성도 간에도 서로의 소리의 뜻이 통해야 합니다. 서로의 소리의 뜻이 통하지 않으면 피차에 외국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영적인 것을 사모하되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영적인 것) 풍성하기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을 위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2)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저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 또 저에게 주실 은사를 통해 믿음의 형제와 자매를 세우고, 교회의 덕을 세울 수 있게 하소서.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은사로 풍성하게 하시고, 이 풍성한 은사들이 서로를 위한, 공동체를 위한 사랑의 통로로, 섬김의 통로로 쓰임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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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영원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대조적으로 예언과 방언과 지식은 한시적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예언은 부분적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즉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은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깨닫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 지금의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버릴 것입니다. 지금은 구리로 만든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듯이 선명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지식이 부분적이지만, 그 때에는 주님이 나를 아시듯이 나의 지식도 온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의 많음으로 교만할 필요가 없고, 지식의 적음으로 답답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영원하지만, 그 중의 제일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이 올 때까지(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사랑으로 행하며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2)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3)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지금은 모든 것이 온전하지 않지만 주님 다시 오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온전해질 것이라는 말씀에 위로와 소망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마주 대하듯 뵈올 그 날을 사모합니다. 오늘의 불완전함에 낙심하지 말게 하시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며 사랑으로 섬기게 하소서.” 바울은 은사를 다루면서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교회 가운데 주어진 은사들은 마치 몸을 이루는 지체들처럼 그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사랑이 그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은사들은 그 가치를 상실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장에서 핵심은 4~7절의 말씀입니다. 사랑을 정의할 때 긍정적인 표현인 ‘오래 참고 온유하다’는 말과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딘다’는 말 사이에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표현들을 배치했습니다.. 성도가 서로 다름을 참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기, 자랑, 교만, 무례, 자기 유익만 구함, 분노, 악한 일을 생각함, 불의 등을 언급하는데 이는 고린도 교회의 악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은사가 더 크냐를 따지고 예배 때 자기의 신령한 은사를 뽐내지만, 너희의 방언이나 예언은 듣기 싫은 소음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형제의 다름을 참고 배려하지 않고, 시기하고 자랑하고, 교만한 자들에게는 신령한 은사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사도 바울은 권면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서로를 용납하고 참고 받아 주는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은사가 있더라도 사랑이 없다는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 줄 수 있는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치게 하여 주소서. 이 사랑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바울은 이제 고린도교회가 질문한 영적 은사에 대한 대답을 상당히 긴 분량으로 말해 줍니다(12~14장).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서로 경쟁하고 자신의 은사가 더 신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영적 은사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우상 종교에도 황홀경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2절). 바울은 이런 현상을 경계하면서 예수를 주로 고백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해 보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신비한 현상에만 집중하지 않기를 원했기에 성령, 성자, 성부의 순서로 교회에게 주어진 영적 선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같은 성령에 의해 다양한 은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은사를 열거합니다. 은사를 열거하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더 낫거나 못한 것이 있을 수 없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각 자에게 주신 것임을 깨닫고, 섬김의 자리에 나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은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각자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섬김의 자리에서 주님의 몸을 세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사를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섬김의 자리에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 믿음의 백성인 우리는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를 사함 받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 멸망할 존재들이 예수님으로 인하여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그저 개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셔서 한 믿음의 공동체, 한 믿음의 백성이 되게 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 안에 한 지체로 하나됨을 확정하여 주셨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으로 그 의미를 직접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이 성찬에 대해 기록하면서 성찬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에 대하여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27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절: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3절: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성찬은 십자가의 사건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찢기신 몸과 피를 기억하면서, 죄인 된 우리가 우리의 공로 하나 없이 오직 예수님로 인하여 죄씻음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는 죄 가운데 있던 아무 소망없던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먼저 자신를 살피지 않는다면 자신이 죄와 저주의 자리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의 몸과 피로 죄에서 거룩함을 입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한 몸 된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사실을 전하며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로 확증하여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닫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서로에게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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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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