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에서 다윗과 아비새는 사울의 진영에 들어가 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후 다윗은 건너편 산꼭대기로 가서 아브넬을 부릅니다. 다윗은 아브넬에게 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실패한 것을 책망합니다.
지금 다윗은 참 지혜롭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그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아브넬에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말을 사울도 듣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다윗은 사울에게 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아브넬을 통해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왕의 안위를 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보호하지 못하였다고 책망합니다. 이는 그가 왕의 신변 안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자신을 위하는 다윗을 죽이고자 추격해 온 자신의 행동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다윗에게 고마운 마음과 동시에 두려운 마음까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내 아들 다윗’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엔게디 사건때도 똑같이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어서 다윗은 자신과 사울의 관계를 만군의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금 사울은 사람을 보고 있고, 다윗은 하나님을 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울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 눈치’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반면, 다윗은 목숨이 달린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 보고 있습니다. 그가 사울을 죽이지 않았던 것도, 그가 아브넬을 책망한 이유도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원수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용서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도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용서는 인격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이 자신을 낮추고 왕은 높이는 지혜로운 말을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사울 왕이 마음을 돌이킨 것입니다. 다윗의 지혜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다윗이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그를 죽이려는 원수조차 그를 축복하는 말을 하며 본문은 끝이 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사람을 바라 보느냐’의 차이가 이처럼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삶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지혜로운 자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저희 눈과 귀를 주님께만 향하겠습니다. 당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습니다.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인 것을 제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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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4장에서, 엔게디 광야의 동굴에서 생명을 보존받은 사울이, 다윗에게 큰 감동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선언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잠시 감동을 받고 참회하는듯 했지만, 십 지역의 사람들이 사울에게로 와서 다윗의 거취를 고발하자, 즉시 그의 부대를 이끌고 십 광야로 출전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했던 결단은 금새 무너져서, 다시 다윗의 뒤를 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윗은 이 때에 참 불안한 삶의 연속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윗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람은 직접적으로는 사울이었지만, 사울의 추격을 피해야 하는 다윗은, 온갖 백성들의 눈도 피해야 했습니다. 다윗은 이전보다 더욱 침착하게 행동하면서 사울을 정탐하려고 밤에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의 진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울과 모든 그의 군사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 무방비 상태로 누워자고 있는 사울에 대해서 아비새의 말처럼 생명을 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다시 한번 사울을 친히 죽여 복수해서는 안될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9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다윗은 오히려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셔서 함께 동행하시며 보호하시고 범죄하지 않게 하시는 증거로 삼습니다. 사울을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적군 모두가 잠들어 있는 이 상황을 통하여 다윗의 편에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을 죽여야만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이 반복되는 사건들에서 하나님의 손이 다윗과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심으로써, 승리는 이미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시간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을 때, 다윗과 같이 고난중에서도 담대하며 인내의 열매를 거둘수 있을 줄 믿습니다.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현실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반면, 그의 남편 나발 (뜻: 미련한, 짐승과 같은, 동물과 같이 고집스러운) 은 현실을 통해 미래를 점치는 부유한 인생을 살았을지 몰라도, 미래의 약속을 통해 현실을 보는 지혜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종과 아내 모두 그를 “불량한 사람” 즉, 무익한/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아비가일의 <약속을 통해 현실을 보는 지혜>를 통해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할 세가지 레슨:
성도 여러분,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된 삶 사시기 바랍니다. 무가치해 보이는 것의 무한한 가치로 인해, 세상 속에서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배설물로 여길 줄 아는 삶 사시기 바랍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 여러분의 삶으로 살아 내시는 믿음을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오늘 나의 인생을 마주하며, 그 지혜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시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언약의 하나님, 영원한 약속을 통해 나의 현실을 볼 줄 아는 지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등장하는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통해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위급 상황을 잘 모면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평상시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입을 무겁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아비가일의 준비된 지혜의 자세가 모든 남자가 죽게 되어 가문의 대가 끊기게 되는 참담한 결과를 막아내는 놀라운 힘을 위기의 순간에 발휘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오늘의 본문을 통해 꼭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지혜의 사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바로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한 하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기쁨과 슬픔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평상시에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견은 입을 굳게닫고 오직 진리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지체하지 않고 열심을 다해 전함으로 우리를 통해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이 땅 어스틴과 우리가 기도하며 가슴으로 품고 있는 남아프리카 위에 불 같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
굿모닝! 말씀 산책매일 개인묵상을 위한 말씀입니다. 아카이브
March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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