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부터 시작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해, 오늘 본문은 첫언약의 예법과 세상의 성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1~5절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시대의 성막을 묘사합니다. 첫 장막에는 촛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는 성소라고, 그리고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낱낱이 설명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미 알고 있기도 하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긴 내용이기에 저자는 간략하게 손으로 지은 성막을 설명합니다. 구약의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에 따라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6~10절을 통해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로 한계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제한된 접근입니다. 제한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제사장 한 사람이었고, 그것도 고작 1년에 한 번 들어가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보여 주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일반 백성은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그 길을 열었습니다. 길, 진리, 생명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제한된 용서입니다. 제사는 계속 반복되는 것으로 죄의 근원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의 뿌리인 양심과 마음에 온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물과 제사는 마음의 가장 심각하게 고통받는 부분을 해결하 수 없고, 육체의 예법으로 지상의 것이며, 그림자일뿐입니다. 옛언약의 분명한 한계를 강조하면서 온전한 회복과 접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오늘 하루 믿음의 주요 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길과 진리, 생명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동행하게 하소서”
0 Comments
아론의 반차, 곧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참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레위 지파가 아닌,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신 것이 이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규정과 기존의 제사장 직분과는 다른 한 제사장(another priest)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에 얽매이지 않고, 불멸의 생명의 능력으로 섬기십니다. 율법의 계명(규정)은 연약하고 무익해서 폐해지고(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할 수 없기에), 이제는 ‘더 좋은 소망’이 주어져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끕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맹세 없이 계승되는 레위 제사장직과 달리, 예수님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약속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 – 이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드리고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6-17)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2)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저의 참 제사장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불완전한 제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그 크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더 좋은 소망을 가슴에 품고, 제 의를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도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승리의 하루를 살게 하소서” <정답은 안에 있다>
로마제국의 물리적 핍박과 유대인들의 영적인 유혹 (배교) 에 있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단단히 붙잡아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멜기세덱을 예로 듭니다. 구약에 단 두 곳에만 언급이 되는 멜기세덱은 객관적 정보가 부족하지만, 당시 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신구약 중간기 ‘쿰란 공동체’의 영향으로) 연구자료가 많았기에 상당히 익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아는 것 같은데 모르겠으며, 사람인데 사람보다 높고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존재의 모호함’을 ‘역발상적으로’ 이용하여 멜기세덱이 어떻게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지 변증합니다. 또한 유대인에게 가장 걸림돌이 된 그리스도의 혈통의 문제를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십의 일조를 바친 기록 (창세기 14장)을 통해 설명합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10절). 이 말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드릴 때 생물학적으로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던 레위도 [따라서, 레위의 허리에 있었던 아론도] 결국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논리가 됩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인 ‘대표성의 원리’를 말합니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이미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 첫째 아담 안에 우리는 모두 죽은 자가 되었지만, 이는 사실 둘째 아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를 묶으심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단번에 제물로 드려 지심으로 이 땅의 모든 죄를 소멸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하실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열매가 있다는 말은 그 다음 열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정답은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삶의 현장으로 나가며 우리는 또 다시 물리적 압박과 영적 유혹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는 정답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충만히 누리시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매일의 환난과 유혹 가운데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누리게 하소서!” |
굿모닝! 말씀 산책매일 개인묵상을 위한 말씀입니다. 아카이브
September 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