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랴 감옥에 갇힌 바울이 베스도 총독 앞에서 4차 재판을 받은 후, 마침 가이사랴를 방문한 아그립바 왕 장면을 처음 대면하게 됩니다. 4차 재판과 내일 (행 26)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받게 될 5차 재판까지 그 결과는 사실 동일합니다. 바울은 죄가 없으며 이 사람은 ‘별 일 아닌 것’ 혹은 ‘하찮은 것’ 으로 고소/고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헬: 에피칼레오마이)” (행 25:11) 말한 순간부터 이 모든 이야기의 흐름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가이사에게 상소한 자는 반드시 로마까지 호송하여 황제의 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혐의가 기각되거나 불기소 처분 되어도 그 결정이 기각되며 반드시 끝까지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가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5차 재판 (행 26) 을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라는 말로 맺으며, 바울이 아그립바 왕을 대면하는 사건의 시작과 끝에 ‘에피칼레오마이’ 라는 헬라어를 기록해 놓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상소하다'로 번역된 ‘에피칼레오마이’ 는 그 어원이 ‘출정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전쟁을 앞두고 출정식을 하거나, 어떤 국가적인 중대한 일이 시작됨을 알리는 일을 뜻합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하찮은 복음”에 목숨을 걸었던 바울의 “하찮은 인생” 으로 말미암아, 오늘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시점을 기준으로 약 300년이 흘러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됩니다. 또한, 그로부터 약 2000년 후, 오늘 우리가 복음을 믿고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생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되고, 우리의 인생이 모여 인류의 역사가 됩니다. 로마의 권력 아래 하찮게 보인 죄수 바울의 인생과 하찮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에피칼레오마이’ 함으로써 로마와 전 세계 역사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듯, 오늘 하루 세상이 하찮다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안과 복음의 능력을 충만히 누리시는 AKPC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복음에 목숨 걸 때 성령의 권능 충만히 경험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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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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