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사울이 올 때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시고 사무엘과 만남을 계획하셨습니다.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 하나님은 먼저 사무엘에게 사울이 찾아올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재적으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진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이미 사무엘에게 사울을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를 찾아 줄 선견자를 찾았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사울을 만났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가 하나님이 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미리 초청해 놓은 손님들 가운데서도 오직 사울에게 상석을 내어 주고 요리인을 통해 미리 준비한 음식을 정성껏 대접합니다. 잔치가 끝난 후 사무엘은 사울과 함께 성읍으로 들어가 지붕 위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와 초대 왕이 담소를 나눈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계시대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미리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우는 치밀함을 보여 주십니다. 사울에게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편에서는 계획하심을 분명하게 알게 하십니다. 또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왕을 세우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우연처럼 보여지는 일들이 있지만, 그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앞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여전히 우리 삶 가운데 있음을 감사하며,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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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해 그들의 뜻대로 왕을 세우시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상 8장), 그리고 오늘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 사울.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섭리일 뿐입니다. 비슷한 일들이 세가지 사건을 통해 나타납니다. 첫번째 우연은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린 사건입니다. 당시 부와 존귀의 상징인 암나귀를 잃어버리자, 기스는 사울을 사환과 함께 보내어 두루 다녀 찾아보게 합니다. 약 40km 이상 긴 여행을 한 후에도 찾지 못하자 시간이 많이 지연됩니다. 두번째 우연은 그들이 숩 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숩은 베냐민 지파의 땅 라마, 곧 사무엘의 집이 있는 곳과 아주 가까운 지역입니다. 결국,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체되어 이 곳에 도착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죠. 문제는,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지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으나” (삼상 3:20) 불과 5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사무엘은 정작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버지께 충성하는 효성스러운 아들이었으나,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기 자신 안에 갇힌 사람임을 말해줍니다. 이런 사울의 이중적인 모습은 우연이 아닙니다. 사울은 그의 이름의 뜻 (“구하다, 요청하다”) 대로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구하고 요청하는 삶을 살았으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우연같은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었지만, 우연같은 섭리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죠. 세번째 우연은 라마 성읍 입구에서 소녀들을 만난 것입니다. 사울의 훤칠한 외모에 마음이 뺏긴 소녀들의 긴 담화로 인해 시간이 더 지체가 되고, 14절 말씀은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이것이 절대 우연이 아님을 15절이 말해 줍니다: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한가지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이끌어 가십니다. 사울이 아닌 다윗의 자손 예수를 이 땅에 보내고자 하시는 구원의 목적입니다. 이런 <우연같은 섭리>에 이끌림 당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씀 앞에 겸손과 순종입니다. 사울과 같이 보이는 것에 집착하여 세상의 일로 근심하기 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근심하는 AKPC공동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순종함으로 우연같은 섭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님께 이끌림 바 되는 삶 살게 하소서!”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이스라엘의 땅에는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과 은혜가 가득한 평화의 시기를 보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사무엘상 8장에 들어오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주변의 국가들을 향해 그들의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나라들은 백성들을 위해 앞장 서서 싸우고 있는 왕이 있는데, 자신들은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왕을 세워 달라는 요구를 하나님께서 들어주면, 그들이 앞으로 받게 될 고통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처럼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경고하며 설득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강히 왕정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20절에서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며 다시 한번 강력하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왕으로 누구를 섬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세상의 명예, 부귀, 권력, 높은 사회적 지위를 왕으로 삼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우리의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것들을 우리의 인생의 최우선 자리에 놓고 살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고 묵상하는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 없이는 우리가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이미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참된 만왕의 왕이 되어 주신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충성된 삶을 살게 됨으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세상에 눈을 돌리지 않고 우리의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과 앞으로 우리를 위해 하실 일들을 생각하며 찬양을 올려드리는 하루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3)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이스라엘에게 다시 반한되었던 여호와의 궤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아비나답의 집에 정착되게 됩니다. 사람들은 엘리아살을 거룩히 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지키는 역할을 하게 합니다. 이 법궤는 훗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옮기기까지 약 70년동안 이곳에 머물게 됩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궤, 더 나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구별’된 자에 의해, ‘구별’된 방법으로 보관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정착되고 나자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2). 이처럼 성막, 즉 예배가 우리 삶 가운데 제 자리를 찾게 될 때, 영적 삶이 안정을 찾고 회복과 부흥도 오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새 지도자 사무엘이 아주 훌륭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영적 지도자는 백성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야 합니다(3). 회개의 핵심은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즉, 그의 메시지는 “제거하고! 그만 섬기라!” 였습니다. 그 결과 4절을 보면 백성들이 그 마음에서 이방신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게 되었습니다. 둘째, 영적지도자는 백성들을 위해 중보 하는 사람입니다(5, 9). 영적 지도자 한 명의 진실된 기도는 모든 백성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원리는 모세때부터 예수님에게까지 일관되게 적용되는 영적 원리입니다. 셋째, 영적 리더는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9). 사무엘은 중보하기 전에 온전한 번제를 드렸습니다. ‘어린양의 희생’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합니다. 이처럼, 온전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 되심을 바로 정립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이런 온전한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드려지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놀랍게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보다 강한 블레셋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미스바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뭔가를 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레를 발해 이스라엘이 이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를 ‘줍기’만 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런 승리를 ‘전략적 승리, 작전적 승리’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전략적 승리를 주시는 분은 우리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이 이겨놓은 승리를 순종함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블레셋은 무엇인가요? 오늘 미스바에서의 영적 원리를 기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제거하고, 오직 주님만 섬기며,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되겠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승리를 저희의 삶에서 경험하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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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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