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아담과 하와의 뒤를 잇는 2세대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입니다.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은 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농사 짓는 사람 답게 땅의 소산을 아벨을 양치기 사람 답게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벨과 가인의 제사를 차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차별로 인해 가인은 안색이 변하게 되고, 나중에는 동생을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은 것은 제물에 문제가 아니라 가인 자체가 문제임을 말해 줍니다. 가인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원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에는 아벨을 죽이는 큰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가인에게 동생이 어디 있냐고 묻지만 그는 자기의 아우를 지키는 자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은 두가지 형벌을 주십니다. 첫째는 땅은 노력라는 수고를 해도 그 소산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고, 둘째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 하나님은 가인을 보호하십니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형벌 속에서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인의 보여준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형벌을 받지만 그 안에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23-25)
창세기 2장의 후반부는 창조세계의 가장 기본단위인 부부관계와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중요한 원리가 담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부부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정립하고, 실제 삶에서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먼저, 18절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다 (not good)”는 표현이 나오는데, 다름아닌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창조하십니다. 18절과 20절의 “돕는 배필” (에제르) 이란 표현을 자칫 잘못 해석하면, 여성의 역할을 남성에 보조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것을 나타낼 때 많이 쓰였습니다. (예, 신 33:29) 따라서, “돕는 배필” 이란 표현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고, 일방적으로 돕기만 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틀린 해석입니다. 이렇듯 부부는 서로를 돕는 존재로서 만들어진 평등한 관계입니다.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살을 채워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창조주하나님께서는 하와의 창조에서도 전적인 주도권을 갖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갈빗대는 남자와 여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이자, 이들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아담의 갈빗대 없이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한 뿌리에서 난 존재임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또한, 갈비뼈는 우리 몸에 가장 중요한 장기들인 심장, 허파, 간, 췌장들을 보호하는 중추적인 뼈입니다. 갈비뼈는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뼈입니다. 아담의 그 뼈를 취하여 돕는 배필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는 하나님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완전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4절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여자가 부모의 집을 떠나 결혼을 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강조한 것은 물리적인 떠남 보다는 정신적, 정서적 독립을 강조한 것입니다. 왜냐면 결혼은 완전히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는 것이고, 보통 남자가 가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골든 웬함 (G. Wenham)은 이 말씀을 “결혼 전에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책임이 그의 부모에 대한 것이지만, 결혼 후에는 그의 아내에 대한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25절에서 배우는 부부의 의미는 ‘서로에게 가장 솔직한 관계, 서로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관계’ 입니다. 부부관계는 정직함과 솔직함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신뢰가 깨어지면 부부관계 자체가 흔들립니다. 또한, 부부관계는 서로의 부끄러움을 덮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품어주는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우리들도 부부간에 서로에게 이런 존재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저희에게 영혼의 동반자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부부가, 마치 교회를 사랑하신 예수님과 같이, 그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 교회와 같이 서로에게 신실하고 성숙한 존재들이 되도록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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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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