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닷의 말에 욥이 대답하는 내용입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력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권능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절대 권능의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왜 빼앗으셨냐고 감히 항의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복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파괴적 힘과 능력은 라합(악한 괴물)을 돕는 자들에까지도 미칩니다. 그러면서, 욥은 자신이 의로울지라도 감히 하나님께 대답(대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단지 심판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는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힘 없는 피조물이 절대 권능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모습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까닭 없이’ 자신을 치고 괴롭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욥은 숨쉴 틈도 없이 고난을 당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할 기회조차 없이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온전한(순전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온전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하지 않고 멸망시킨다고 말하면서,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간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2)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7-18)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이 까닭 없이 나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신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나의 의로움은 가려지고, 하나님은 나의 사정을(나의 진심을) 헤아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을 만져주소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랑하심을 믿게 하소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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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just responded to the unhelpful accusations of Eliphaz, and now it was friend #2’s turn, Bildad. In the previous chapter, Job shared his tremendous grief and seeking clarify and comfort during his most painful season of his life. But Bildad, approaches Job and his situation, not with grace, not with compassion, not with mercy, but with a wrong theology of God and what was happening to Job.
Like Bildad, we mean well when we try to explain God’s purposes and what he might be doing in our midst, but these things must align with who God is and what the Scriptures say about God and not based on our own assumptions and thoughts. Unfortunately, this is what Bildad and Job’s friens were doing. These verses show that Bildad's did not have a favorable opinion of Job's character. If God is a God of justice and cannot pervert justice Job and his children must have done something that was deserving of everything he was going through. But of course, we know, or should know that extraordinary afflictions, pain, and trials are not always the punishment or consequence of extraordinary sins, sometimes they are the trials of extraordinary graces. In giving counsel and trying to comfort those that might be in similar situations as Job and his family, we must not approach people in the seat of a judge making declarations and judgments, but instead, we should extend God’s grace and mercy because in the end that is what all of us need. Job’s account teaches us that yes, even the upright will experience sorrow. While Bildad’s theology was correct, God is just, his application of that theology was wrong. Bildad was looking at only one aspect of God’s nature and had forgotten His love, mercy, and goodness. Yes, God is light but don’t forget that God is love as well. His love is a holy love, and His holiness is exercised in love, even when He judges sin. Prayer: Father God, thank you for being a God of justice, but also a God of love and grace as well. May we appreciate both without minimizing the other. Grant us wisdom to know you more fully and to share of your love more completely to others as well. In Jesus’ name, amen. 욥의 변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다가도, 수 개월째 계속되는 고통에 지치고 힘들어서, 이제 그의 생명마저도 놓아 달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절망하다가 또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업치락 뒤치락 하듯 탄식하면서, 인생의 의미와 고난의 의미를 질문하던 욥은, 그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변하기 시작합니다.
11절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5절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7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20절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는 고통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실 때, 우리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분명 그 고통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고통이 고통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비극일 것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망일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면 그것이야 말로 인생의 절망 중의 절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독생자를 내어주실 만큼 소중한 존재입 니다.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기뻐하시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시고, 우리를 늘 사랑의 눈으로 지켜 보호하시며 감찰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자신의 삶을 종과 품꾼과 비교하며 탄식합니다. 인생이란 힘든 노동 또는 품꾼의 날과 같은데, 종이나 품꾼의 경우 저녁의 휴식과 그 날의 품삯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이런 소박한 소망조차 누릴 수 없습니다. 욥에게 밤은 고통과 번민의 시간입니다. 욥의 살은 상처의 딱지로 덮였고, 그의 피부는 아물고 곪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욥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지나갑니다. 욥은 자신의 생명이 한낱 바람같고, 사라질 구름같다고 표현합니다. 욥에게 인생은 의미 없고 희망 없는 하루하루일 뿐입니다. 이것이 고난 당하는 욥의 실상이고, 탄식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3)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6)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8)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고통 속에서 밤을 지샐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주님을 기억하며, 그 밤에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아무리 깊은 어두움이라도 주님이 함께 계시면 새벽의 아침이 올 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게 하소서. 오 주님, 주님만이 나의 진정한 평안과 쉼입니다.” 욥은 엘리바스와 친구들을 향한 자신의 실망을 표현합니다. 이들이 정말 자신의 친구라면, 설령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최소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사막의 계절천(와디)처럼 욥에게 실망스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욥은 친구들이 욥의 고난을 바라보면서(해석하면서) 그들이 가진 편견과 기존의 가치체계(고난에 대한 행위화복의 세계관)가 무너질까 두려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욥은 자신이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은 재물이나 원수의 손에서의 큰 구원이 아닌, 단지 이해와 동정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말이 옳은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은 욥의 말을 절망한 자의 말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친구들이 비난을 멈추고, 욥에게로 돌이키기를 원합니다. 욥을 이해해주고 욥의 말을 신뢰해주기를 원합니다. 욥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욥이 무죄한 것을 인정해주기를 소망합니다. 욥은 자신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14-15)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28)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고난 당하는 친구에게 비난과 책망이 아닌 이해와 동정으로 다가가게 하소서. 인생을 바라볼 때, 나의 생각이나 편견, 선입관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눈을 허락하소서. 죄인을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은혜의 눈빛을 저의 가슴에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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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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