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의 말에 욥이 답합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이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극심함으로 인해 자신의 말이 거칠었다고 합니다. 욥은 고난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자기에게 박혔고, 자신은 그 독을 마셨으며, 하나님의 공포가 엄습하여 자신을 친다고 말합니다. 들나귀도, 소도 이유가 있어서 울듯이(먹을 것이 부족해서), 욥 자신도 이유가 있어서 탄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바스의 조언은 소금없는 음식같고 역겨워서 만지기도 싫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의 소원, 곧 죽음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고 끊어 버리시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욥 자신에게 위로가 된다고 말합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음을 확신합니다. 이제 욥은 더 이상 고통을 견뎌낼 힘이 없습니다. 최종적으로 욥의 문제를 해결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4)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10)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13)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이유를 모르는 고난 속에서 탄식하는 이들의 아픔을 헤아리게 하소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따를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저를 항상 긍휼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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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return today to our study of the life of Job. In the first two chapters of this book, we are told about Job’s stellar character and great faith in God followed by Job’s great suffering and trials. And because Job is human, he expresses tremendous grief and sorrow for his pain and loss. It’s in Job’s most lonely and desperate times that Job’s three friends com tot visit him. They initially are quiet, extending more their empathy and care, but that doesn’t last long. Eliphaz begins sharing his thoughts and ideas on why Job is suffering, and in this passage he does it by talking about a vision he had about Job’s situation.
Eliphaz incorrectly applies truth to Job, not based on who God is and what he has said, but solely based on a “vision” he thought he had that was from God. But we must always keep in mind that anything that we think is of God has to be in agreement or in line with who God is, his promises, and the Word of God. What we find in the Bible is inspired – it is there to encourage us and to keep us from false teaching. But there are times when we are exposed to falsehood so that we can discern the truth. The temptation of Jesus is such an example. We find both false teaching and truth. Satan’s discourse is in the scripture – even though His teaching is false. There are many examples in the scripture where false teaching is presented. It is up to us to study the scripture so that we may learn where the truth lies. What happens to Eliphaz is a great reminder that personal experience alone is not to be our only source of authority. All of our experience must be held up to the Word of God. We know that the Bible is God’s established and authoritative Word. We know that it is trustworthy. Therefore we know that God is not going to tell someone something that will contradict what He has already said in His Word. Let’s make sure that we are indeed hearing from God and not ourselves based on our desires or wants. Prayer: Father God, thank you that you reveal yourself in so many ways. Please grant us wisdom to discern your will for us and that ultimately it would be grounded in who you are and in your Word. In Jesus’ name, amen 욥의 고난은 휘몰아 치는 폭풍과도 같이 욥을 덮쳐 왔습니다.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열 자녀들을 잃고, 이제는 뼈와 살을 치는 고난에 까지 이르자, 욥은 자신의 태어남을 저주했습니다. 고통으로 인하여, 욥인 줄 알아보기도 힘든 정도의 행색이 된 그의 모습 앞에, 욥의 세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세 친구들은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면서,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 더미를 뒤집어 쓰면서, 참담함을 표현했지만,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앉아 있다가 특별한 위로의 말없이 물러갔습니다. 욥의 그 하루 아침에 달라진 비참한 상황 가운데서, 누구라도 선뜻 입을 열기가 두려운 그런 때에, 세 친구들 가운데 엘리바스가 오늘 본문에서 입을 엽니다. 3-4절: ‘보라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7-8절: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욥의 칭찬으로 시작한 친구 엘리바스의 말은 처음에는 이치에 합당한 말인 것 같았지만, 점점 갈수록 욥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그의 발언은 뜻밖에 닥친 고통을 겪고 있는 욥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에는 사람의 말과 논리만 있을 뿐 친구를 위해 부르짖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엘리바스는 친구의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왜 욥의 고통을 마음 아파하며 위로하는 자가 없을까요... 왜 하나님 앞에 욥의 고통을 위해 탄원하는 자가 없을까요... 어려움 당한 이웃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 그들의 필요를 돕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선한 행동까지도 난도질 할 것이 아니라,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지지해 주는 긍휼의 마음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욥의 탄식이 보다 깊어집니다. ‘어찌하여’ 탄식어가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욥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어머니에게서 왜 사산아로 나오지 않았는지.. 왜 어머니의 무릎이 나를 받았는지.. 왜 내가 어머니의 젖을 빨았는지 탄식합니다. 욥은 죽음을 소망합니다. 만약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임금, 모사, 고관들과 함께 평안히 안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에게, 현재의 삶은 죽음보다 못한 장소이고, 죽음은 현재의 고난에서 쉼을 얻는 처소입니다. 욥은 자신의 처지가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다고 탄식합니다. 욥은 다시 한 번 죽음을 소망합니다. 그에게, 죽음의 세계는 악한 자들의 소동이 그치고, 삶에 지치고 피곤한 자들이 쉼을 얻으며, 온갖 차별과 폭력, 불의에서 해방되는 곳입니다. 욥이 죽음의 세계를 이상향처럼 그리는 이유는 그만큼 그의 고통이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욥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왜 고난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시고,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지 묻습니다. 이런 자에게는 죽음도 오지 않는다면서, 욥은 죽음이 보물보다 귀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울타리 되심이 이제는 고통의 빗장일 뿐입니다. 욥은 이제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오고, 그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욥에게 임합니다. 욥에게는 평화도, 고요도, 휴식도 없고, 오직 불안만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1)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25-26)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고난 속에서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평온과 안식은 하나님의 선하신 손에 있음을 믿고 주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주여, 제가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임을 고백하며 살게 하소서” 욥이 입을 엽니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엽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 자체도 견디기 힘들지만, 어쩌면 친구들에게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힘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욥은 자기 생일을 저주합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잉태한 날도 저주합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의 원인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만일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지 않았더라면”하고 탄식합니다. 욥은 하나님과 부모님을 직접 원망하거나 저주하지는 않지만, 수수께끼 같은 자신의 상황(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과 부모님에게 연결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기 생일과 잉태된 날이 흑암과 캄캄한 어둠에 사로잡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신데 -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시고, 죽음과 흑암에서 생명과 광명을 내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신데 - 욥은 오히려 역창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욥은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이런 탄식을 할까요.. 욥의 고통과 아픔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욥의 고통과 아픔은 우리 인생의 고통과 아픔입니다.) 하지만 욥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욥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이해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지만, 욥은 하나님이 사랑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1)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3-4)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10) 오늘의 기도 “사랑의 주님, 하루를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 인생의 고난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힘겨울 때 저를 기억하소서. 주님 앞에서 쏟아내는 저의 탄식과 눈물을 살펴주소서. 제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과 계획을 의심하지 않게 하소서. 주위의 고난받는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과 위로의 마음을 나누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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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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