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사울을 놓고 슬퍼하는 사무엘의 인생과 자신이 버림받고도 슬퍼하지 않는 사울. 오늘 본문은 이 두 명의 인생을 대조함으로 그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도록 돕는 키워드가 바로 하나님의 ‘후회’라는 단어입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을 전해들은 사울은 ‘사람이 두려워 그랬습니다’ 라고 말하며, 회개같이 들리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사실 이것 또한 거짓이었습니다 (23-24절). 사무엘은 사울의 진짜 문제를 상기시켜줍니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26절). 우리의 신앙의 어려움과 갈등의 근본 문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는, 사울이 사무엘의 겉옷 자락을 붙잡고 떼를 쓰듯,하나님께 그렇게 떼를 쓸 때가 많습니다 (27절). 이에, 사무엘의 옷단 귀에 매어진 ‘술’이 “찢어집니다” (민수기 15:38. ‘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구별됨을 알리는 일종의 리마인더). 열왕기상 11장에 비슷한 그림이 나오듯, 선지자 사무엘의 ‘술’이 찢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사울에게서 “떼어” (28절. “찢어지니라”와 같은 히브리어 단어) 더 나은 “왕의 이웃” 즉, 다윗에게 넘어갈 것을 알리는 계시였습니다. 그 근거가 29절에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이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신다 (‘후회하지 않으신다’) 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러나 하나님 앞에 후회가 가득한 인생을 보여줍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30절)라는 말에 24절의 입술의 회개가 거짓임이 드러납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딤전 6:5) 사울의 모습이 보입니다. 참 이상하게도 사무엘은 이번에는 사울의 요청대로 그를 데리고 여호와께 경배하러 나아갑니다 (31절). 그곳에서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울이 보는 앞에서 처단합니다. 온전한 순종을 통해 죄의 근원을 찍어 쪼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함과 동시에, 사울의 불순종의 최후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사울의 운명, 바로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인생의 단면입니다. 사무엘은 버림받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합니다. 사울의 진정한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35절) 는 말이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29절)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나,첫째로, 우리는 인간의 제한된 생각과 이성과 느낌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하는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변개함이 없으시다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크신 계획에는 변함이 없으시나,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인간의 관점으로 보기에 그분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 2:17)는 말이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요 3:16)로 바뀐 사건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죄를 향한 슬픔과 근심과 후회로 인해, 내가 오늘 살아숨쉬고 있는 사건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후회하지 않으시는 인생, 즉 후회없는인생입니다. 적용점 두 가지: 1.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지 말고, 경건의 능력과 유익을 누리는 삶을 살라. 2.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함으로 마음의 회개에 이르라.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세상근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함으로 입술의 회개가 아닌 마음의 회개에 이르게 하소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지 않고, 경건의 유익과 능력을 누리게 하소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허락하신 마지막 기회인 아말렉 전투에서 조차 불순종함으로 결국 왕위에서 내려오라는 사무엘의 통보를 듣게 됩니다.
아말렉 전투에서 사울이 범한 불순종의 죄악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죄를 덮기 위해 그가 했던 잘못된 자세가 무엇인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 보고, 우리는 그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항상 하나님과 좋은 관계속에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35)”
블레셋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먼저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쳐서 시작이 되었으며, 요나단이 용맹스럽게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치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승리한 전쟁입니다. 따라서, 이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14:23), 그 중심에는 요나단의 믿음과 용맹함이 있었습니다. 반면, 사울은 이러한 영적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매우 우매한 결정을 연이어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그의 ‘금식령’ 또한 그의 영적 무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진영이 크게 동요하자, 적들을 추격할 것을 명령하면서 온 백성에게 금식하도록 지시했습니다. (24) 사울이 금식령을 내린 배경에는 그가 사무엘 선지자에게 들은 질책이 있었습니다. 그는 온 백성이 금식이라도 하면, 떠나간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금식령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고, 이 전쟁을 하나님의 명분있는 전쟁으로 보이도록 만드려는 사울의 즉흥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계산이 다분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이 금식령을 듣지 못하여 그만 꿀을 찍어 먹습니다. 그러자, 한 병사가 요나단에게 금식령 사실을 알려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금식령을 전해준 병사도,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금식령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도자의 어리석은 명령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법입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계속해서 20마일을 추격하며 블레셋 군대를 칩니다. 이미 지친 군사들에게 이는 거의 극한의 임무였습니다. 백성과 현장을 살피지 않는 사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군사들은 진군을 멈추자마자 전리품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웁니다. 그 때, 그들은 짐승을 피째 먹음으로 하나님의 도축명령인 코셔를 어깁니다. 생존본능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도록 만든 것이며, 지도자의 판단 미스가 백성들을 범죄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사울의 반응도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정상적이라면, 잘못한 자들을 처벌해야 했을 텐데 그런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제단을 상징하는 큰 돌을 가져다가, 그 위에서 짐승을 먹도록 공식화합니다. 이는 군사들이 범죄하여 소를 잡는 것을 마치 제단 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상황을 포장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즉, 사울은 자신의 실수도, 부하들의 실수도 모두 덮으려고만 하고 있고, 오로지 오늘의 승리를 하나님의 역사로 보이게 하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의 승리는 사울을 따라 임한 것이 아니라, 요나단을 따라 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도 때론 사울과 같은 모습이 있음으로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요나단과 같은 주님의 백성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주님 앞에서 투명하고 정직하며, 주님을 전심으로 바라고 사랑하는 자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요나단의 용기있는 믿음의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서로 전투에서 대치를 하고 있던중 요나단은 큰 믿음을 드러냅니다.
요나단은 자기 부하를 데리고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갑니다. 이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해변의 모래와 같이 가득하고 그들은 막강한 병거와 마병들이 전쟁을 하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었습니다. 6절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분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두려운 상황속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두려워 하지않고 그 분을 믿는자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리 두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순종하며 살아갈때 구원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요나단처럼 용기있는 믿음을 주세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굿모닝! 말씀 산책매일 개인묵상을 위한 말씀입니다. 아카이브
April 2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