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엘리의 아들들이 심각한 죄를 짓는 모습과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무엘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여집니다. 사무엘의 본격적인 등장을 알리는 것입니다.
제사장이자 사사인 엘리의 아들들의 행실이 나빴다라고 평가를 받고 있으며, 더 나아가 본문에서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평가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제사장으로 주어지는 임무를 불성실하게 하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혈통에 따라 합법적으로 세워진 제사장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후계자로 사무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었습니다. 에봇은 원래 대제사장의 옷이지만, 이 옷을 본 따 만든 옷을 입었던 것으로 생각되어 집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막의 직무를 도왔음을 보여 줍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통해 하나님의 행하실 일들을 보여 주시는 시작입니다. 사무엘을 하나님께 맡긴 엘가나와 한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많은 자녀를 낳았음을 기록하면서 오늘 본문은 마무리됩니다. 믿음의 후손은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아들들을 버리시고, 사무엘을 선택하셔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서 있느냐가 바로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서게 하여 주소서. 다른 세대가 아닌 믿음의 다음세대를 일으켜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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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로 알려진 오늘 본문은 사실 <한나의 노래> 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한나의 찬송 시입니다. 한나의 ‘진짜’ 기도는 1장의 서원기도에 나타납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 나를 기억하사” (1:11). 아이를 낳지 못하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여인을 한나 즉, ‘은총을 입은 여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려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기억하시고 나를 붙드시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은혜입니다. 기억하시는 하나님 앞에 한나는 자신의 서원기도를 기억함으로 자신의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내어드립니다. 희생과 노래의 간극 사이에 존재하는 이 한나의 믿음을 통해 우리가 드려야 할 인생의 노래를 배우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의 믿음의 노래는 ‘듣는 신앙’을 요구합니다 (v. 3). 사무엘 의 뜻 (‘하나님을 듣다’ 혹은 ‘하나님께 구하다’) 처럼 나의 말을 줄이고 삼가며 청종함으로 살아내는 인생의 노래입니다. 둘째로, ‘힘을 빼는 신앙’ (vv. 4-8) 입니다. 4-8절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에 내 뜻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너의 힘을 빼라!’로 말하는 것이죠. 사막의 모래에 타이어가 깊숙이 박힌 자동차가 늪을 빠져 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마지막 남은 타이어의 바람까지 다 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스스로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빼시고 낮아지심으로 골고다 십자가의 길로 묵묵히 걸어가신 어린 양 예수님의 인생의 노래입니다. 그 믿음의 인생을 따라가는 우리는 따라서,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는 신앙’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vv. 9-10).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마지막 사사로, 첫번째 선지자로 왕을 내리고 세우는 사명을 감당한 사무엘의 인생이었으며, 그 구원의 계획을 이루실 하나님을 기뻐하며 감사의 찬송을 올려드리는 <한나의 노래>입니다. 왕이 있으나 없는 것 같이 살아가는 이 어두운 시대에 듣는 신앙, 힘을 빼는 신앙, 다시 오실 왕을 기다리는 신앙의 <인생노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AKPC 공동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고통 가운데 듣는 신앙, 힘을 빼는 신앙,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인생노래를 삶으로 살아내게 하소서” 영적으로 암흑시대였던 사사시대의 막을 내리게 하고, 이어서 사울과 다윗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를 새롭게 연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엘이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 한나의 신앙의 자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녀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고통가운데 눈물을 흘렸던 한나는 세상을 향해 그 화를 퍼붓지도 않고 세상에 기대며 위로를 받는 것 대신에, 하나님께 나와 통곡하며 기도로 도움을 구합니다.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고 사무엘이라는 사랑스런 아들을 직접 젖을 물리며 세살까지 키운 한나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성실하게 그리고 감사함으로 지켜 행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우리도 고통 속에서 주님을 찾고 도움을 구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우리의 삶이 평안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삶이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주님께 감사하며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19)
바울은 옥중서신인 빌립보서에서 기쁨과 감사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가 이처럼 환경을초월하는 믿음을 살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가중심이 된 신앙은 현실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신앙입니다. 빌립보서 묵상을 마치면서 우리도 바울과 같이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의 사람 되시길 소망합니다. 어제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이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바울이 더 이상 도움이 필요 없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도우시고공급하시겠지만, 그를 구제하고 돕는 일은 여전히 성도들의 거룩한 책무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재정적 도움을 준 것을 칭찬하는데 이는 단순히 자기 형편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15-16절을 보면 바울이 이 빌립보 교회에게 얼마나 깊이 감사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도움은 일회성이 아니라, 바울 사역 전반에 걸친 지속적인 도움이었습니다. 17-18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구제사역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영적 유익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들의 도움이 하나님 보시기에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사역을 위해, 또한 이웃을 위한 구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구제하는 손길들에 대해 우리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19) 이어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문안인사를 보내는데, 특히 22절 후반부에 보면 가이사의 집사람들 중 몇몇도 문안인사를 하고 있다고 나옵니다. 로마의 옥에 갇힌 바울을 통해 로마시저의 식솔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였기에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 환난 가운데 기뻐하고,복음을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며, 빌립보 교회와 같이 더 많은 이웃에게 베풂으로 하나님의베푸심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내 주변에 사랑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이웃은 없는지 돌아보고, 그들의 필요를 섬길수 있는 자들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바울과 같이 환경을 뛰어 넘는 신앙을 겸비하도록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빌립보서의 마지막 장인 4장에서 바울은 믿음의 공동체를 향하여 마지막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서신이라고 하지만,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이나 바울의 상황을 볼 때, 자주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네 장에 걸친 상당히 긴 편지를 기록하여 빌립보 교회에 전달한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지체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 말씀이 오늘 첫 구절인 8절에 “끝으로" 라는 말로 시작하여 길게 열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8절: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11-12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나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능력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비천에 처할 때는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풍요에 처할 때는 풍부하게 하신 예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비천할 때 불평하지 않았고 풍부할 때 교만하지 않았으며 예수님 한 분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고난과 풍요의 시간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도 고난과 풍요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채워가는 장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도 배우고 경험한 것을 통해 오히려 확고한 믿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닥쳐오는 세상이 때로는 거칠고 만만치 않더라도, 질그릇과 같이 깨어질 존재인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는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 한분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실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담대한 고백이 우리의 삶에서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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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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