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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4일 청년부 주일예배

4/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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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차별하여 대하지 마라 본문: 야고보서 2:1-6
우리가 사는 미국 땅은 인종의 melting pot으로 불릴만큼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우리 한민족도 작은 부분을 차지하며 살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언어와 문화적 선호도에 따라 서로 벽이 있음을 느낍니다. 이러한 차별의 문제에 대해서 야고보는 어떻게 이야기하는 지 함께 살펴보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에도 차별의 문제가 여러 번 대두되었습니다. 그만큼 차별은 역사이래 항상 존재하는 문제였는데, 그 뿌리에는 비교의식과 교만의 죄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1절에서 우리가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이방인을 품으셨고, 사회에서 소외 받는 자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가장 먼저 차별을 극복해야 합니다. 교회가 본이 되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합니다. 
야고보는 당시 교회에 만연한 차별의 문제를 2-4절에서 문제 제기합니다. 회당에 두 사람이 들어오는데 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만약 교회가 이 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차별적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차별이란 단어의 뜻은 “얼굴을 받아들이다” 입니다. 즉, 외모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그 사람의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차별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므로 죄입니다. 부자를 필요 이상으로 높이는 것은 내게 이득이 올 것을 기대하는 것이며, 가난한 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남을 판단하여 업신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두가지가 다 악한 생각입니다. 
야고보는 이어서 이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하나님의 관점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다면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택하시지 않는 분이심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또한 이를 증거합니다 (삼상16:7, 행10:34-35).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받게 하셨기 때문입니다(5절). 주께서 상속해 주시기로 약속하신 천국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의하면 세상이 알 수조차 없는 영광이 넘치는 곳이요, 영생과 생명을 살리는 일이 가득한 곳이요, 밤과 눈물과 사망과 아픔과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가난한 자들에게 상속받게 하셨다는 말은 이 땅에서 가난한 자들이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부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들이 감히 가질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상속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우리들은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을 차별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종 차별은 온 인류 뿐 아니라 교회도 오랫동안 잘못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성경말씀을 자신의 입맛대로 적용해서 노예제도와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합리화했던 잘못된 해석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람을 인종으로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신 분이십니다(행17:2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8:19). 하나님의 구원과 제자의 대상은 이처럼 모든 민족, 즉 인류 전체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인종끼리는 형제, 자매로서 대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형제지간에도 경제적, 사회적 수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무시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집안이 아닙니다. 
성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별에 따라서 주된 기능과 역할은 다르게 창조하셨지만, 존재 가치, 능력면에서는 차별이 없이 만드셨습니다. 남과 여는 서로 존중하고 서로 화합하며 서로의 다름을 통해 부족함을 채우는 돕는 존재로 창조된 자들입니다. 이처럼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우리 주변에 실존하는 차별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차별 문제에 있어서 함께 고민해야 되는 것은, 차별은 양방향 모두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부족한 자들에 대한 차별의 마음은 죄입니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나보다 월등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에 대한 차별의 마음 또한 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야고보가 말한대로, 부자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푼 경우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만약, 우리 중에 특정 인종을 우리보다 우월한 인종으로 본다면 이에 해당됩니다. 이 죄는 좀 더 복잡한 죄입니다. 첫째, 이것은 내가 속한 그룹을 낮게 보는 것, 즉 나의 존재감을 비하하는 죄에 해당합니다. 둘째, 이런 사람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차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본인 스스로가 차별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차별을 극복하려면 야고보가 말한대로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고, 동시에 부자도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결국, 사람의 외적인 요소들이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믿는 신념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도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차별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기계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나는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성향은 없나요?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2. 하나님이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차별이 죄라는 것도 확신하십니까? 3. 혹시 내게 부자에게 과도히 친절을 베푸는 차별심은 없나요? 이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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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7일 청년부 주일예배

4/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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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들음과 행함
본문: 야고보서 1:21-25

저도 한 설교자로서 갖고 있는 고민이 있습니다. 과연 설교가 사람을 바꾸는가 라는 근원적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모든 설교자의 영원한 고민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설교자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자신이 없는 답변을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바뀌는 것이 설교가만의 책임이 아니고 회중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좋은 설교는 마치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성도들의 신앙관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변화된 신앙관은 언젠가 삶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소망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일까요? 흔히들 사람들은 마음에 감동이 오는 설교를 좋은 설교라고 합니다. 하지만 감동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유희적(柳僖的) 감동입니다. 이것은 지적 깨달음을 통해 이해되지 않던 것이 해석될 때, 혹은 언어적, 사상적 아름다움이나 구성의 완전성을 통해 감동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이성과 감정과 약간의 영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감동이라고 부릅니다. 만약 이것이 설교의 목적이라면 전 좋은 설교자보다 유명한 대중 연설가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감동은 변혁적(變革的) 감동입니다. 이것은 그 자리에서 다 소화하기 힘든 묵직한 감동이며, 며칠 동안 두고 두고 곱씹어 본 후에 그 속 뜻이 느껴지는 감동입니다. 보통 이런 감동은 사람의 신념과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결국 삶의 변화까지 유도합니다. 좋은 설교란 여기까지 가야 한다는 게 저의 믿음입니다. 결국 그 핵심을 찾고 찾아가면 딱 하나로 집중됩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기만 하느냐, 행함까지 나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바로 이 포인트가 야고보가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야고보서는 만일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고, 말하기만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는 말씀을 씨앗으로 비유합니다(21). 씨앗이 열매 맺기 위해서는 씨앗이 중요할까요 밭이 중요할까요? 예수님의 씨앗 비유가 그에 대한 답을 줍니다(막 4장). 예수님은 친히 이 비유를 해석하시면서 씨가 말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씨의 조건은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생명력은 진리의 말씀에 기초해야 하는 것입니다.  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는데 있어서 씨앗도 중요하지만 땅이 더 중요함을 이 비유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좋은 땅, 옥토가 되기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먼저, 더러운 것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더러움은 우리의 죄의 결과입니다(사59:3).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대하기 전에는 반드시 진정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야고보는 넘치는 악을 내버리라고 합니다. 악은 악한 의도, 닫힌 마음, 반발 심리와 같은 상태입니다. 설교가 아무리 좋아도 회중이 이런 마음의 상태라면 절대로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 설교자와 회중의 신뢰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상호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으라고 가르칩니다. 온유함은 겸손과 인내로도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항상 이러한 온유함을 가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자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 (옥토)을 기업으로 받는 자일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 세 가지 마음만 갖추면 씨앗(말씀)이 능히 우리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선포합니다.

이어서,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것을 강하게 경고합니다(22-24). 그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자요(22), 거울로 자신을 보는 자(23)라고 말합니다. 이 두 표현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자, 즉, Self-awareness가 매우 낮은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의 진리를 겨우 지적으로 알고 있는 상태인데, 스스로는 그 진리를 실제 삶에 살아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좋은 설교가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목사님의 설교 수준이 자기 삶의 수준으로 착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Self-awareness가 매우 낮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러한 신앙을 경고합니다. 

야고보가 생각하는 진짜 신앙은 그의 행함에 달려있습니다. 왜냐면 제대로 씨앗이 심기웠다면 반드시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행함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길가, 돌밭, 가시밭). 우리는 이 기준으로 스스로를 냉철히 돌아봐야 합니다. 이처럼 행함은 우리 신앙이 건강한지, 제대로 열매 맺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하면 많은 축복이 있다고 강조합니다(25). 먼저, 그는 율법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말씀합니다. 흔히 율법이 우리를 구속한다고 보는데, 사실 진리의 말씀은 속박이 아니라 자유를 줍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는 공기역학이란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함이 있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요, 그 믿음은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야고보는 강조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모두가 삶의 진리입니다. D. L. Moody는 “성경은 지식을 증가시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위해 주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모두가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이에 반하는 어떠한 거짓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경을 상식의 틀에 가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의 가르침을 더더욱 다양한 삶의 영역에 적용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놀라운 열매를 맺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을 침노하는 신앙” 입니다(마11:12). 내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 이런 삶의 예배를 드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나는 말씀을 대할 때 야고보가 말씀한 세 가지 태도(더러움과 악을 버림, 온유함)중 어떤 부분을 더 갖춰야 할까요?
2. 나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까? 혹시 말씀을 아는 것 (익숙한 것)을 행하고 있다고 착각하진 않나요?
3. 내가 성경의 진리를 내 삶에 더욱 더 접목하고 싶은 영역 (장래일, 직업, 목표, 재정 등)이 있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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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청년부 주일예배

4/1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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