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베드로의 권면 2
베드로는 자기 자신도 로마에서 지내며 혹독한 핍박을 받는 중에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핍박 받는 기독교인들에게 권면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 받는 핍박은 종말에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인내하고 믿음으로 극복하기를 권면합니다. 지난주는 교회 공동체에게 주는 메시지였다면, 이번주 말씀은 성도 개개인들에게 해당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이제 곧 네로 황제의 처참한 핍박이 몰려올 텐데 이 때 성도들은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고 강하게 명령합니다. 근신하라는 맑은 정신 가운데 있으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 것에 너무 깊이 빠져 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환란이 다가올 때는 죄를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죄는 아니지만 우리 생각을 지배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깨어라’는 뜻은 영적인 잠에 빠져 있지 말고, 나태해지거나 게으르지 말며 경각심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전날 밤 육군본부에 모인 장성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3일만에 한강선까지 밀렸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을 보면 전쟁 발발 때 깨어 있지 못한 것을 평생토록 후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겟세마네에서 ‘깨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다가 십자가 지실 때 그를 세 번 부인하는 인생의 과오를 범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를 얼마나 많이 후회했을 지 생각한다면, 그가 하는 권면은 그의 인생 교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귀라는 이름의 뜻은 중상모략자(Slanderer), 등 뒤를 무는 자(backbiter)입니다. 욥을 순전함을 비난한 것처럼 마귀는 빌미를 찾으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남을 비방하고 등에 칼을 꽂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면 그것이 마귀의 행동인지 깨달아야 하고, 우리 스스로도 마귀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마귀가 이런 치사한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예수님과 정면 대결하면 이길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귀는 삼킬 자를 찾는데, 혼자 떨어져 있거나 어린 가축만 공격하는 사자와 같이 영적으로 약한 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들을 공격할 때는 완전히 압도해서 삼켜 버립니다. 근신하고 깨어 있지 못하면 이렇게 지고 마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서 베드로는 마귀가 공격할 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대장되신 예수님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해야 합니다. 그는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이름 위에 계신 뛰어난 이름을 가진 믿음직한 장수입니다. 그를 믿으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믿음을 굳게하라’는 다른 뜻은 믿음을 꾸준하게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영적 전쟁을 겪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믿음을 흔드는 공격이 있는데 이를 대적하고 쳐 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귀는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면 그가 우리를 피할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약4:7) 이렇게 고난을 견뎌 낸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10절 말씀입니다. 즉, 그 고난은 잠깐이고, 고난을 통해 우리를 온전하고 굳건하고 강하게 세우실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터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란 약속의 말씀입니다. 당시 베드로가 상대해야 하는 마귀의 도구는 로마 황제였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베드로는 황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로와 베드로의 싸움은 로마와 교회의 싸움이었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으로 보이지만 결국 교회의 터는 든든히 세워졌고, 로마의 터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를 포함한 많은 역사학자들은 로마의 몰락의 이유를 교회로 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이 권면의 편지를 쓸 당시 베드로는 로마가 이렇게 멸망하게 될 줄 알았을 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으로 승리할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11절의 그의 심령에서 터져 나오는 찬양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감격의 찬양, 승리의 찬양으로 권면의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베드로의 권면을 세 마디로 요약하면,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하라!’입니다. 이렇게 할 때, 로마 전역을 뒤덮었던 압제 속에서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대장되신 예수님의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 뒤에 있는 천군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현실에 쪼그라든 심령이 확 펴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주께서 이런 자들의 터를 견고하게 세워 가실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0 Comments
제목: 베드로의 권면 1
벧전 5:1-7 2024년 첫 주일을 맞아 진심으로 주님의 평강을 전합니다. 올 한해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두 주간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묵상하겠습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베드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면이 많은 미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비겁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인생 후반기에는 겸손과 복종을 강조하고, 온유와 순종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과 함께 성품과 인격까지 성숙하게 빚어진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두 편의 편지를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지방에 흩어져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썼습니다. 당시 그들은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핍박을 받고 있었는데, 사실은 베드로가 있었던 로마가 그 박해의 정도가 훨씬 더 심한 상태였습니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곧 온 로마 통치지역으로 퍼질 것을 예견하고, 다가올 박해의 때를 경고하는 글을 쓴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주를 진실되게 섬겨도 고난과 연단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고난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우리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5장에서 그는 교회와 성도가 이런 영광을 받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권면합니다. 첫번째는 장로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신약시대에 장로란 교회의 리더들을 가리킵니다. 우리 청년부에 적용한다면 청년부 리더들에게 하는 권면, 특별히 목장사역의 리더들에게 하는 권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베드로가 강조한 목양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그는 주님을 부인하고 극심한 실패감에 좌절했던 자신을 찾아와 사랑으로 세워주신 예수님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주변에 그가 목양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양무리라면,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들도 사랑한다는 것이 그가 강조한 목양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을 예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도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예수님이 저 사람을 사랑하시는 줄 안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 보면 낙심 될 때가 있지만, 예수님 바라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섬김 사역을 절대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고 강조합니다. 교회 섬김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예수께서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귀하게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 마음으로 자원하여 섬기는 것이 주님 앞에서 가장 향기나는 제물입니다. 이어서, 교회 리더들에게 던지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나옵니다. 3절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주장하는 자세’의 원어적 의미는 통치하고, 힘으로 다스리며, 억압적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것도 리더십의 한 방법으로 여깁니다만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는 비록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아무리 오래 걸리고 힘이 든다 할지라도 억압적으로 이끌면 안됩니다. 대신, 무리에게 본을 보임으로써 이끄는 것이 교회 리더십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리더십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배신할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분이십니다. 자원함이 기반인 교회에서 리더가 강압적으로 이끌면 반드시 무리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4절) 고 약속합니다. 즉, 섬김과 본의 리더십은 양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목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어서 양들에게 하는 권면이 나옵니다.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교회의 팔로우십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순종’입니다. 겸손하게 리더들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순종이란 덕목이 갈수록 매력을 잃어가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순종은 성경적 가치관입니다. 앞에서, 리더에게는 좋지 않은 양들에게도 억압적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면, 양들에게는 비록 리더가 순종할 만하지 못할지라도 겸손히 순종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종종 이 가르침이 반대로 될 때 문제가 됩니다. 서로 간에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리더는 리더의 역할과 자세를 잘 유지하고, 양들은 양들의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한 쪽은 잘 하는데 다른 한 쪽이 문제입니까? 그 관계의 최종 판단은 결국은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우리는 우리가 처한 위치에 맞는 자세를 잘 하는 것이 성숙한 교인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리더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겸손하지 못해서입니다. (5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겸손하라는 권면은 양들을 위한 권면인 것입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겸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젊은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리더에게 겸손과 순종의 자세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주께서 높이시겠다고 말씀합니다. (6절) 우리가 염려하는 것도 결국은 겸손하지 못해서입니다. 이 상황을 내가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지 않는다고 착각하니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목장모임을 개학하는 날입니다. 여러 관계 속에서 리더는 사랑으로, 양들은 겸손과 순종으로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교회에 많은 염려가 있으십니까? 그 염려가 나의 교만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주님을 신뢰함으로 겸손히 인내합시다. 그것이 우리 공동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지혜의 말씀입니다. 나눔 질문
제목: 한 해의 끝자락에서
골 3:15 2023년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보통 교회에서는 송구영신예배가 있어 한 해를 보내며 새 해를 맞이하는 것을 함께 기념하는데, 올 해처럼 마지막 날이 주일인 경우만 온전히 지난 한 해를 오롯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23년을 돌아보면서 청년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인가요? 기쁘고 감사한 일들도 많았고, 아쉽고 가슴 아픈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들을 돌아보며 진정으로 감사하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우리 중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만으로는 덮어지지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들이 캘린더 주기에 맞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분들은 연말이라고 감사하자고 하면 마치 감사를 강요당하는 부담감이 들기도 합니다. 올 해는 저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 속에서 한 해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이라도 그 삶의 무게가 크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우리는 모두 힘들어집니다. 때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나고 싶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그랬습니다. 민수기 11장에서 그는 “내가 이 백성을 낳았습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라며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답하실 것입니다: “그 자리를 지켜라.” 성경에서도, 제 삶의 경험을 통해서도 깨달은 한 가지 진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은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까지 뜨지 않는 거란 사실’입니다. 이 지혜를 경험한 주의 자녀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에 던지시는 화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평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은 나를 bother 하는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평안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스도를 신뢰함이 해결 안된 문제와 상황을 초월하여 마음이 평안해진 상태를 평강으로 가르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우리는 상황을 초월한 평안을 평생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이 그 상황을 다스리시고, 가장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실 것을 그냥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마치 해결된 것과 같은 평강이 나의 근심과 염려를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대출이 미래의 내 자산을 현재에 가져다 쓰듯, 그리스도의 평강은 미래의 평강을 현재에 누리는 것입니다. 평강의 대출인 것이죠. 이것을 그리스도의 평강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기록한 편지입니다. 옥중서신이 특별히 더 감동을 주는 이유는 죽음 앞에 선 바울이 누리는 평강이 놀랍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히려 그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평강을 권면하기까지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누린 그리스도의 평강의 비결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도 그 평강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우리 의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우리의 시각을 문제에서 그리스도께로 옮기라는 명령입니다. 적극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 눈을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포커스를 돌리는 것, 이것이 그의 평강의 비밀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리스도가 그 상황을 주관하시고, 친히 해결하실 것을 내 영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바울의 평강의 두 번째 비결은 그가 개인의 평강을 교회적 평강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평강을 위해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전쟁터에는 ‘공포의 확산’이란 것이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평강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확산됩니다. 우리 중에 한 두사람이 삶의 환경을 뛰어 넘는 평강을 누리면 그 영향력이 공동체 전체로 퍼져갑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감옥에 있는 자신부터 평강을 누리고, 다른 교회들도 자신처럼 평강을 누리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교회의 영적 리더란 공동체에게 이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목자들, 팀장들, 섬김이들이 먼저 자신부터 평강하고 다른 지체들을 평강으로 초청하면 그 공동체 모두는 엄청난 긍정적 영향력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밝힌 평강의 두 번째 비밀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한 발 더 나아가 감사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것을 말씀합니다. 감사에는 주신 것을 감사하는 과거형이 있고, 앞으로 주실 것을 감사하는 미래형 감사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특별히 미래형 감사를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미래의 평강을 미리 누리듯, 미래의 일을 미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주께서 나의 기도와 고백을 들어 주셨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다면 그 기도는 이미 응답된 것입니다. (창25:21, 창16:11) 이를 보면 골3:15절의 바울의 권면이 데살로니가전서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면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평강을 누리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 문제는 해결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래의 일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자면 대단히 비이성적이지만 믿음 안에선 놀라울 것도 없는 진리입니다.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요게벳이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보낼 때 마음을 기억합시다. 그녀는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를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능하신 손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배를 띄워 보냈습니다. 바로 이것이 2023년을 보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내 삶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요게벳처럼 주님께 띄워 보내면, 새 해를 맞고 어느 순간인가 그 문제가 가장 아름답게 해결될 것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2024년의 평강과 감사를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적 평강과 감사를 삶에서 경험하는 우리 공동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질문
|
"주일설교에 대한 질문을 작성해주세요."
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청년부 예배실) Archives
September 2024
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