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마1:16-23 오늘은 약 2천년전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여러분은 이 신비로운 사건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시나요? 하나님이 인간이 된 이 사건은 가히 온 인류역사에 가장 중요한 바로 그 사건입니다. 구약성경 전체는 이 사건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를 마태복음 1-2장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는 복음서의 시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총 40명의 계보를 언급합니다. 이를 14대씩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계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준비하셨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지은 에덴에서부터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상태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곧 지구 종말이 올 것 같이 느껴지는 분 계십니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신뢰하시고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구약에서 메시아 예언은 수십, 수백가지나 되지만, 그 메시아가 어떤 분으로 오실 지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과 동등한 위격의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내시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신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개념이 너무나 놀라운 것은 신으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방법을 택하셨을까요? 구원은 인간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메시아가 인간 중 한 명이라면 그는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결국 메시아는 하나님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죄사함도, 에덴에서 누렸던 하나님과의 연합도, 영원한 구원의 은혜도 인류에게는 없었습니다. 오직 율법과 예언을 통한 모형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복음도, 진리도, 은혜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요1:17, 막1:1) 이런 존귀한 분의 탄생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겸손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택하신 가정은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이 둘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말씀대로 살며, 헌신과 순종의 모습을 갖춘 좋은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요셉은 왕족 출신에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고향을 떠나 오지 갈릴리에 살며, 화려한 숙소는 엄두도 못 내는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은 메시아의 부모로 택하신 것을 보며,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탄생이 제시하는 진정한 가치는 성공과 자랑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됨으로써 인류의 원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은 처녀의 잉태 사건을 메시아의 징조로서 인류에게 알리시겠다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임마누엘은 예수의 존재론적 이름이요, 예수라는 이름은 역할론적 이름입니다. 이 둘은 교차사용이 가능합니다. 그가 태어난 장소 베들레헴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임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다윗 언약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됩니다. (삼하 7:12-13) 베들레헴은 예루살렘과 가깝지만 매우 낙후된 양치는 시골 동네입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은 작은 여관의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분의 겸손이 묵직하게 와닿는 부분입니다. 예수님 스스로는 이토록 낮고 낮은 곳을 향하셨지만, 여전히 그의 탄생에는 왕의 권세와 영광이 후광처럼 찬란히 비춥니다. 그것은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과 박사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왕의 권세를 가진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셨고, 이미 일찍이 하나님이 택하신 계보로 오셨으며, 동방을 포함한 온 인류에게 경배 받으실 존재로 오셨습니다. 그의 겸손이 그의 권위를 가리우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왕의 탄생이 헤롯의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었다는 점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온 인류의 전형으로 오신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누릴 특권을 버리시고, 실제 세상의 악과 위협에 그대로 노출됨으로써 비로서 모든 인류가 그를 따를 수 있는 전형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위협 가운데 보호하심을 받았다면 우리도 사망의 위협에서 보호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네 단어로 정리됩니다: 섭리, 겸손, 영광, 표본. 이 놀라우신 분이 이 천년 전 오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의 오심이 얼마나 존귀한 사건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그 분의 탄생이 보여준 가치관을 삶에서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입니다. 모든 청년분들! Merry Christmas! 묵상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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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하나님은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눅 15장의 비유로 소개됩니 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나선 목자이십니다. 목자는 99마리 양을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다닙니다. 이 목자는 또한 집을 나간 아들을 맞아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아들은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모두 탕 진했습니다. 그 후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품에 안으십니다. 눅 15장의 목자요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잃어버린 한 영혼, 죄인 한 사람 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하 는 독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그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 지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이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는 그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 상에 있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 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의 잃어버린 한 영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금년 2023 년이얼마남지않은12월에,우리주변의한영혼을주님께인도하기위해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섬기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청년부에서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소중합니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여러 섬김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몸 은 아름답게 세워질 겁니다. ‘한 사람’은 우리 예수님이 몸소 보이시고 실천하신 하나 님 나라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공생애 3년 동안 12명 제자를 세우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12명 제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불과 12명의 소수를 위해 예수님은 마음과 시간과 열 정을 쏟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방법은 참으로 탁월한 것이었습니다. 12명 제 자한사람한사람이또다른제자를낳고,그제자들은또다른제자를낳고,이러면 서 지난 2천 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오 늘도주님은한사람을통해일하십니다.한사람을통해주님의놀라운뜻과계획을 이루십니다. 청년부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의 한 사람’으로 쓰임받고, 하나님의 마음 으로 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한 사람 AKPC 공동체’, ‘Psalm 청년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 Amen!
제목: 동행의 영성
시편 139편 성경인물 중에서 ‘동행’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에녹과 다윗입니다. 이들은 평생 일관되게 하나님과 동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고 징계를 받는 가운데에도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만큼은 생명과 같이 여겼습니다. 그가 기록한 시편 139편을 보면 다윗은 동행과 관련한 세 가지 확신과 믿음이 확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동행의 영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 다윗은 주께서 자신을 완벽하게 아시는 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아시기 위해 나를 살펴보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뜻은 하나님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동도 중요하게 보시지만 그 의도와 속 마음을 매우 중요하게 바라보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면 선한 동기를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 바라보시기에 옳지 않겠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멈추는 자가 지혜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살펴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앉고 일어서고 눕는 것, 그가 가는 모든 길, 그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완벽하게 다 아시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안다’라는 뜻의 원어에는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서 부부가 서로를 아는 것처럼 친밀하게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아내와 28년을 함께 살았습니다만 여전히 아내에 대해서 잘 모르겠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 또한 아내가 제 속마음을 몰라주면 서운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부 사이가 서로를 잘 이해하지만, 부부로 평생을 살아도 하나님처럼 상대방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행동과 속마음까지 다 아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그 분이 나를 직접 조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내장을 지으시고, 형질을 만드셔서 모태에서 자신을 조성하신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뇌 과학자들은 뇌의 어느 부분은 이성을, 어느 부분은 논리를, 어느 부분은 감정을 느끼는 곳이 있음과, 특정 홀몬이 뇌세포와 화학 작용을 하면 우리 감정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메커니즘을 우리가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은 이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어떤 대목에서 왜 화가 나는지, 혹은 슬픈지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동행의 영성의 첫 단계입니다. 둘째, 나와 항상, 어디든 동행하신다. 다윗은 자신이 하늘로 가도, 스올에 가도, 바다 끝에 가도, 그 외에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어느 곳을 가도 하나님은 자신과 함께 하시고, 자신을 인도하시고 붙드시는 분이심을 확신있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의 얼굴을 피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구상에 가장 인적이 드문 외지를 가서 기도하고 예배 드려 보십시요. 그러면 이 곳과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가 느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이 이 시를 대적들에게 쫓김 받으며 썼다는 점입니다. 19절 이후를 보면 그는 피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들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이 여호와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때에도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인들을 멸하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때론 주님이 나와 함께하지 않으신다고 느끼십니까? 다윗의 고백을 들으십시요. 하나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내게 베푸신다. 나를 아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동행하는 자에게 가장 복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차를 사면 매뉴얼을 다 읽습니다. 시간 낭비 같지만 그 한 시간이 그 차를 타는 10년간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매뉴얼이 그 차를 디자인하고 만들고 시험해 본 사람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모태에서 조성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내가 가치있고 행복한 삶을 사는 매뉴얼입니다. 그 매뉴얼대로 사는 사람은 반드시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준비하신 생각들이 너무나 놀라웠던 경험을 많이 하였습니다. 바둑이나 체스 고수는 이미 몇 수 앞을 훤히 꿰뚫어 봅니다. 사람도 그렇다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나의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을 얼마나 더 잘 아실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 상황을 해결할 수가 얼마나 많으실까요? 그래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해결책은 우리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다윗이 평생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주께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와 항상 어디나 동행하시며, 내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신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동행의 영성입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를 내면화하여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는 삶,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복된 인생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하나님께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고 느끼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서로 나눠 보세요. 2. 내 인생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훗날 돌아봐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었나요? 3.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것이 처음에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이 최선의 것이었음을 깨달은 경험이 있나요? 4. 내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무엇을 더 노력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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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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