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언약의 후손 (창 17:1-7, 15-16)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우리 한국인은 족보와 가족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따지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의 자손이면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 또한 상속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은 현대어로 하면 계약입니다. 즉, 양쪽이 동의해서 서로에게 해야 하는 의무조항을 약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 행하라’ 와 ‘완전하라’를 요구하셨습니다. 내 앞에 행하라는 원어적인 뜻은,‘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스스로 행하라.’ 라는 뜻입니다. 즉, ‘코람 데오’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완전하라는 ‘흠잡을 데 없는, 완전한, 나뉘지 않은’ 의 뜻입니다. 이것은 완벽한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이 단어가 많이 쓰인 흠없는 번제물을 생각해 봅시다. 각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먼 길을 이동한 번제물에는 흙과 먼지 등등 온갖 것들이 묻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 번제물의 온전함을 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큰 점이나 흠이 남겨져 있든지, 어느 한 부분에 찢기거나 부러지든지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우리가 죄된 행동과 생각을 잠시 동안 하더라도 곧 회개함으로 씻음 받으면 우리는 온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계속해서 마음에 품고, 계속 자라나게 방치하는 것은 내 영혼에 큰 점이나 흠이 남는 것입니다. *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이야기 또 하나는, 나뉜 마음입니다. 우리는 종종 한 마음은 하나님께, 한 마음은 세상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한계시록3장에서 이런 마음을 갖고 있던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은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책망하십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부분은 첫째,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크게 번성하게 하셔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상황을 잘 들여보면 이것은 정말 실현 불가능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십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걸맞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부르셨습니다. 이들의 영적 지경을 가정과 부족에서부터 전 열방으로 활짝 넓혀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 언약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 주신 놀라운 언약의 말씀은 내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 로렌 커닝햄 목사님 이야기 예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뛰게 만듭니까?하나님이 부어 주시기 원하시는 비전을 마음에 품고, 0 %에 가까운 가능성 가운데 믿음으로 뛰어드는 아브라함과 같은 청년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믿음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이 잘 받아들여 지십니까?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가요?이 언약이 내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3. 나의 영적 지경의 경계선은 어디인가요?하나님 안에서 더 큰 비전을 갖기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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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선한 목자 예수 (마14:22-33)
마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인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일화를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가르치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의 관점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자리가 아닌 사명의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기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영광의 자리를 마다하시고, 홀로 산에 올라가셔서 날이 저물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의 자리가 예수님의 사명에 맞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풍랑 만난 인생에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을 맞아 밤새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그들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 누가복음15장, 탕자의 아버지 예화, 사30:18,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셋째, 아주 특별한 케이스로, 때에 따라 주님은 특별한 계획을 갖고 우리가 고난을 끝까지 감수하도록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주님은 고난받는 자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부어주시고, 고난을 끝까지 감당할 힘도 주시고, 지치지 않도록 샘솟는 용기를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다 감당한 후에는 비교할 수 없이 특별한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넷째, 우리가 예수님 안에 확실히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가진단법은 ‘평안’ 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이 있으면, 난 지금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난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영광의 자리에 있기를 마다하시고, 사명의 자리를 찾아 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바라 본 나의 마음을 목원분들과 나눠보세요. 2.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났을 때, 주님이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신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시면 함께 나눠주세요. 3. 지금 나는 평안하신가요? 나의 평안을 훼방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그 일을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고 계신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말씀 : 감사 (열왕기하 2:6-12)
왕하 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여러분들이 가장 최근에 하나님께 감사했던 제목이 어떤 것이었나요? 우리의 감사의 조건에는 “비교의식” 함께 들어있지는 않은가요? “비교의식”은 우리의 감사를 망치는 마치 포도원의 여우와 같은 겁니다. 진정으로 삶의 감사를 회복하시려면 비교의식부터 우리가 극복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적 제자였고, 스승이 담당한 영적 소명과 권세를 그대로 물려받은 인물입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였나요? 첫째, 엘리사는 영적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스승인 엘리야가 간 힘든 길이 얼마나 가치있는 삶인지를 영적으로 분별하고, 이것에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둘째, 그는 감사할 줄 알고, 충직하며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승님께 대한 깊은 감사를 마음에 품고,엘리야를 끝까지 수발하고, 마지막 발걸음까지 수종 들었습니다. * 룻 이야기 예화 감사는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엘리사와 다른 제자들의 차이는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 눅17장, 10명의 나병환자 이야기 예화 나눔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은 이미 받은 9가지를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못 받은1가지에 더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까? 2.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이어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 데에는 그의 영적 분별력과 감사하고 충직한 성품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는 엘리사의 어떤 부분을 닮고 싶으신가요? 3. 감사는 영적 축복을 불러오는 촉매입니다.내 삶에 감사한 제목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시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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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청년부 예배실) Archives
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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