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야고보서 1, 인내와 지혜
본문: 야보고서 1:1-8 예수님에게 육신의 동생들이 계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 태어난 동생들입니다. 그들 중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리더였으며 야고보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도 부모님의 좋은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을 것입니다. (눅2장) 그러나, 야고보는 자기 형 예수를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로 여기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가 비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구약성경이 예언한 메시아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후 야고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사건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친히 그를 찾아 가신 것입니다. (고전15:5-8)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부활의 주님을 개별적으로 만난 자들은 모두 부활의 증인이자 교회의 리더로 헌신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하신 모습을 만난 후에야 야고보는 형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에도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경험합니다. 그 이후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됩니다. 부활의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당시 그토록 중요한 인물이 남긴 야고보서는 오히려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야고보서에 담긴 신학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예로,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의 가르침이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신학과 대치한다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편견은 오해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핵심은, 바른 믿음은 반드시 바른 행함을 가져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결코 행함으로 구원받는다고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야고보서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건강한 실천적 믿음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마이클 크루거는, “바울이 율법주의와 싸웠다면, 야고보는 반율법주의와 싸웠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 중 하나는 믿음은 좋은데 행함이 약한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서를 통해 그 부분을 배워 나아가야 합니다. 야고보는 예수의 친동생이란 신분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예수의 종이라고 인사합니다(1절). 짧은 인사를 마친 야고보는 곧바로 첫 권면을 하는데 바로 시험에 관한 권면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 이 편지의 수신자인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많은 환란과 시험 가운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여러 가지 시험이 겹쳐서 오는 일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강조합니다(2절). 진짜 어려움은 항상 겹쳐서 옵니다. 이런 시련은 우연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힘들지만 그 일들을 다 통과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망하며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그 세부내용이 3절에 나옵니다.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시련의 원어적 뜻에는 ‘진정성을 시험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진짜 시험을 만나면 사람의 본심이 여과없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시련을 주실 땐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떠나지 말고, 내가 해결책을 찾으려 스스로 애쓰지도 말고, 인내하며 끝까지 이겨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내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 것입니다(4절). 이것이 인내의 목적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하기란 정말로 어려운데, 야고보는 어떻게 인내할 수 있는지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욥이었습니다(5:11) 그는 하루 아침에 자식과 재산, 아내와 건강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럴만한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이런 큰 시련도 믿음으로 잘 이겨낸 욥이었지만 세 친구의 지속되는 정죄함에 결국 무너져 “하나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제가 정직하게 살아온 것 아시잖아요? 하나님 정말 살아 계세요?” 라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동문서답 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하나님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의 넘을 수 없는 선을 묻고 계십니다.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려는 자들에게 ‘이해’가 아닌 ‘순복’을 요구하십니다. 순복이란 순종과 복종입니다. 이해가 되던 되지 않던 따르는 것입니다. 이해를 구한 욥에게 하나님은 “네가 나를 다 알 수 있느냐?”라고 되물으신 것입니다. 그 대답은 당연히 “아닙니다”이죠. 그래서 순복하려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선하심을 신뢰해야만 가능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순복을 잘 한 사람들입니다. 이어서 야고보는 지혜를 말합니다. 시련을 잘 인내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셔서 내가 받는 시련이 영적으로 해석이 되면 우리는 시련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회복과 축복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시련의 해석은 오직 여호와의 지혜가 임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됩니다. 우리가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십니다.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야고보는 구할 자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6). 시련을 통과할 때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그는 의심하는 자를 두 마음을 품은 자, 그래서 마음에 정함(고요함)이 없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구하면서 의심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험이나 복권으로 전락시키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얻을 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음은 자기 신념이 아닙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믿음으로 구한다는 뜻은, 내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인내도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하다가 넘어진 자녀를 일으켜 세우시고 새 힘을 주셔서 끝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인내도 불가능합니다. 인내도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앞에 닥친 시련을 ‘순복함’과 ‘인내’로 극복하여 주님 보시기에 온전한 자들로 바로 세움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야고보가 예수님을 믿기 어려웠던 것처럼 당신도 종교적 가정에서 자라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기 어렵지는 않았나요? 2. 여러분에게 겹겹이 어려움이 온 경우가 있었나요? 어떤 어려움이었는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나누어 보세요. 3. ‘시련을 기뻐하라’는 권면은 참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시련을 기뻐할 수 있을까요? 4. ‘순복’과 ‘인내’가 시련을 극복하는 열쇠인데, 이 중 내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며,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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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2
잭과 로즈의 러브스토리를 아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90년대 말 전세계를 강타한 영화 타이타닉 이야기입니다. 어느덧 그 영화가 출시된 이후에 태어나신 청년들이 많아지다 보니 저 스스로도 타이타닉을 아는지 묻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어쨌든 당시 이 영화는 가히 전 세계인들을 열병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 사귀는 남녀라면 한번쯤 로즈의 십자가 포즈와 잭의 백허그를 따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셀린 디온이 부른 영화의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은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받은 노래들 중 하나가 되었고, 이 영화도 현재까지 가장 많이 본 영화 top five 안에 드는 대작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는 가히 끝이 없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제 마음에 깊이 남겨진 장면은 영화의 엔딩 부분입니다. 백발이 된 로즈가 그가 평생 가슴에 간직한 보물, 블루 다이아몬드를 잭이 희생된 그 바다에 던져 보내는 장면입니다. 그 보물은 The heart of the ocean이란 이름까지 있습니다. 보석공들에 의하면 만약 그 정도 크기의 블루 다이아가 실제였다면 현 시가로 약 $300 million을 넘는 고가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보석이 타이타닉호와 함께 수장되었다는 소식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기까지 했으니까요. 그 보석을 찾고 싶은 수중 탐험가들이 타이타닉호의 잔재를 수색하다가 생존자인 로즈를 인터뷰한 것이 영화의 배경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보석은 잭이 로즈에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약혼자인 돈 밖에 모르는 속물 귀족 칼레돈이 그녀의 사랑을 유혹하기 위해 준비한 결혼 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잭과 칼레돈의 추격전 과정에서 The heart of the ocean은 잭과 로즈에게로 우연히 넘어오게 되었고, 그녀는 이 다이아를 자신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잭의 사랑으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갑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로즈는 잭이 아니었으면 몇 번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를 겪습니다. 대서양한 복판에서 배가 침몰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잭은 자신의 기지를 발휘해서 자신과 로즈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그녀를 보호합니다. 특히, 뱃머리가 90도로 들렸을 때 그는 펜스 넘어로 그녀를 데리고 나가 팔 힘이 부족해 떨어지지 않도록 했고, 가장 마지막으로 죽음의 바다에 끌려 가도록 합니다. 바다에 빠졌을 때는 재빨리 배의 파편을 하나 찾아냅니다. 그런데 그 동체조각은 한 명만 태울 수 있는 공간밖에 없었습니다. 잭은 로즈를 그 위에 태우고 자신은 그녀 곁에서 죽음을 택합니다. 겨울의 대서양은 자비가 없었습니다. 빙점에 가까운 바다물은 잭의 살점을 마치 면도칼로 난도질하듯 찔러 댔습니다. 결국 저체온증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잭을 바라보던 로즈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잭은 그렇게 로즈의 곁에서 깊은 대서양으로 가라 앉고 맙니다. 한참을 더 기다렸던 로즈에게 구조의 손길이 도착합니다. 그녀는 거의 필사적으로 옆에 있던 선원의 시체에서 호루라기를 찾아내 자신의 위치를 알립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관객들은 그녀가 그렇게 살고자 한 이유를 느낍니다. 그녀의 삶은 이제 잭이 남겨준 선물이었습니다. 뉴욕항으로 구조된 이후 로즈는 우연치 않게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그 보석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함께 구조된 약혼자 칼레돈이 보석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과, 조용히 군중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는 그녀를 교차시킵니다. 로즈의 기지로 그녀는 칼레돈에게서 영원히 자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며 평범하고 행복한 일생을 살게 됩니다. 그녀의 손녀딸도 타이타닉 탐사팀의 한 명이 되죠. 남겨진 로즈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과연 그녀는 잭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녀는 평생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애쓴 것 같습니다. 결혼의 기쁨도 누리고, 자녀를 낳는 감격도 맛보며, 그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손자들을 보는 기쁨도 누리려 애쓴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잭이 원하는 것이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녀가 슬픔 가운데 머물기만 해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잭의 희생을 너무나 가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잘 안 사람이 로즈였습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 그 사랑이 얼마나 크던지 평생, 아니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이 둘의 사랑을 연결하는 것은 그녀의 가슴 속에 각인된 기억들과 The heart of the ocean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잭이 남겨 준 단 하나의 legacy를 평생 가슴으로 간직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의 이유이자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녀에게 그것은 $300 million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부도난 영국 귀족 출신으로 미국에서 혼자 살며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녀는 이 보석을 팔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순간 잭의 사랑과 희생은 수치화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간직한 그 보물을. 전혀 예상치 않은 기회를 통해 가슴 아픈 사고 현장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의 평생 사랑이 잠들어 있는 그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그 보물을 잭에게 바치는 로즈의 모습에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평생의 삶과 모든 감정이 녹아든 그 보물을 잭에게 다시 보냅니다. 흔한 한마디 ‘고마워’ 라도 했으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The heart of the ocean은 ocean 밑으로 사라집니다. 아니, 자기 자리를 찾아 갑니다. 나도 이런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의 가슴 속에 남겨진 십자가가 나의 The heart of the ocean인 걸 우리는 너무 잊고 살진 않은지요? 진부하게 비교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의미는 꼭 같습니다. 자신을 희생해서 누군가에게 생명을 준 그 사랑의 징표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전부입니다. 삶은 이제 남겨진 자의 몫입니다. 어떻게 살지.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지. 어떻게 재회를 준비할지. 저는 로즈만큼은 아니어도 적어도 기억은 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에, 나의 모든 삶의 장구한 기억과 감정을 모두 녹여내어 십자가에 담아 제 마음의 골고다에 돌려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딱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감사했다고.
제목: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지난 한달간 우리는 다윗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다윗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A man after God’s heart’에 대해서 묵상함으로써 다윗 시리즈를 마감하려 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실 때 선지자 사무엘에게 다윗을 표현한 표현이요 (삼상 13:14), 훗날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중에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면서 다시금 사용한 표현 (행13:22)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의 뜻을 다윗을 통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다윗에게서 메시아를 세우시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약속대로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에서 예수를 세우셨습니다. 메시아의 직계 조상이 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오직 다윗에게만 부여된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다윗은 이렇게 인류 중 단 한명에게만 주어진 축복을 받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은 이전부터 많은 신학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믿음을 주된 이유로 뽑았습니다. 실로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하게 주님을 신뢰한 믿음의 사람 맞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다윗 외에도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셨을 때, 자기가 그를 제물로 바쳐도 하나님께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히11:19) 그의 믿음은 죽음을 초월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소위 믿음장으로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의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다윗은 그 이름만 살짝 언급되었을 뿐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는 다윗의 특징은 겸손과 순종입니다. 그는 기본 성품 자체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묻고, 순종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겸손과 순종이라면 모세도 빠지지 않습니다. 민수기는 모세의 겸손이 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다고 증언합니다. (민 12:3) 모세의 순종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와 광야 40년을 지날 동안 한결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너무나 귀히 여기셨지만 다윗언약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의 용맹함과 강직함을 듭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가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듣고 참지 못하는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십대때부터 3미터가 넘는 골리앗 앞에서도, 사자와 곰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용맹함이라 하면 여호수아는 어떻습니까? 삼손은 어떻습니까? 바울은 어떻습니까? 다윗의 용맹함이 대단하지만 그것이 다윗만 갖고 있는 독특한 영성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의 합은 아닐까요? 믿음도 좋고, 겸손하고, 순종하고, 용맹하고, 강직한 다윗을 하나님은 마음에 합한 자라고 여기시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만, 앞서 언급된 아브라함, 모세, 바울 등등 우리가 존경하는 믿음의 선조들은 대부분 이런 성품들을 종합적으로 갖추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정말로 주목하고 우리가 가장 닮고 싶은 다윗의 영성의 특징은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자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 어떤 것보다 하나님 안에 머물고 동행하는 것을 최고로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84편에서는 가장 화려한 곳에서의 천 날보다 하나님 문지기의 하루가 더 좋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과 너무나도 친밀했던 사람. 이것이 다윗을 특징지어주는 설명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싶은 마음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 누리는 부귀 영화와 권세도 그리 중요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잃어도 그는 상관이 없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는 것은 그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과 함께 있고, 그 분을 묵상하다가 찬양하는 것이 그냥 너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본모습은 왕도 아니요 장수도 아니요, 목자요 예배자요 묵상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가끔씩 리더의 외로운 마음을 헤아리는 아랫사람이 있습니다. 리더들은 그런 사람을 만나면 감격하고 심지어 존경하기까지 합니다. 다윗은 온 인류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점점 그의 생각과 관점이 하나님을 닮아갔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 사울이 죽었을 때도, 불효자 압살롬이 죽었을 때도 그가 슬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각이 하나님의 시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눈만 뜨면 하나님만 생각하니까 그의 눈에 하나님의 법궤가 아직 텐트에 있는 것이 불편해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약궤를 위해 성전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세상 누구도 나를 걱정하는 자가 없는데 다윗은 나를 걱정한다며 그 마음을 기뻐 받으셨습니다. 메시아 언약은 이 때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볼 때 실수가 많았던 자였습니다. 그는 형과 아버지와 원만한 사랑의 관계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식들을 키우는데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실수가 많았기에 그의 인생에 굴곡도 많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은 변치 않았습니다. 그는 좋은 집안출신도 아니요, 외적으로는 훤칠한 형 엘리압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독교 몇 대 손일 필요도 없습니다. 달변가일 필요도 없습니다. 찬양에 꼭 은사가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비리그 나와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그저 다윗처럼만 하나님을 뜨겁고 진실되게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에서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이 오버랩핑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받고 싶으십니까? 하나님 사랑하십시요. 그것이 다윗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런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나눔질문 1. 지난 한달 동안 묵상한 다윗의 인생 가운데 가장 여러분의 마음을 터치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너무나 좋아했고,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사랑하셨다는 메시지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도전과 어떤 용기를 줍니까? 3. 지금 나와 하나님의 친밀감의 상태를 1-10으로 스스로 점수를 매겨 보십시요.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고 싶으싶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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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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