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생의 전환기에
본문: 행 9:3-7 여러분이 지금껏 살면서 경험해 본 가장 큰 인생의 전환기는 언제였습니까? 한 사건의 before와 after가 거의 단절되는 수준의 큰 변화와, 심지어 내가 갖고 있는 세계관마저 변화되는 큰 사건을 언제 경험하셨습니까? 저도 몇 번의 큰 전환기를 경험했는데, 저도 이 전환기를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그 길로 인도하셨다는 큰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전환기가 올 때면 우리가 의심하지 않도록 분명한 싸인을 주시곤 하십니다. 그래서 전환기가 꽤나 힘들어도, 때론 의심이 생겨도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기 때문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래도 여전히 전환기는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입니다. 때론,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하는데, 하나님은 이 때 돕는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돕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힘겨운 전환기를 지나는 자녀들에게 돕는 손길을 보내주셔서 격려하고 힘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의 인생에 있어서 ‘대 전환점’이 된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말리엘이라는 랍비에게서 유대교의 율법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바리새인 중에도 핵심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적 의협심이 매우 강하였기에, 당시 예수를 믿는 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진해서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자가 됩니다. 이런 목적으로 그가 다메섹에 가던 길에서 그는 인생의 대 전환점이 된 사건을 경험합니다. 바로, 자기가 핍박하는 예수가 직접 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전능하고 전지하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사울 앞에 나타나셔서 자신이 메시아이자 곧 하나님이심을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예수님이 사울을 책망하시기 보다는 새로운 사명을 주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을 친히 자신의 사도로 불러 주셨습니다. 이 두 가지 메시지는 사울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변화와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이 때부터 사울에게는 그를 돕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처음에는 아나니아가 그를 도왔고, 이어서 바나바, 그의 제자들, 예루살렘의 형제들, 훗날 브리스길라 등등 그의 사역을 통해 그를 돕는 손길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특별히 아나니아에게는, 주님이 사울의 부르심의 사명을 밝혀 주셨고, 바울은 이를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행 9:15). 인생 최대의 전환기를 맞은 사울은 처음에는 큰 내적 혼란을 겪었지만, 곧 이 전환기를 잘 수용하고 극복해냅니다. 결국,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그는 교회의 최고 핍박자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그가 이렇게 인생의 전환기를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었던 그 비결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울은 겸허하고 겸손하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수용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었는데, 이는 ‘왕’에서 ‘작은 자’가 되겠다는 그의 의중이 담긴 것입니다. 실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항상 낮춰 불렀습니다(고전 15:8-9). 이전의 혈기왕성하고 사기등등한 사울이 겸손한 사람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의 실패 경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불러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가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껄끄러울 수 있는 관계들과도 겸손과 겸허함으로 잘 풀어나갔습니다. 이처럼, 전환기에는 무엇보다 먼저, 겸손해져야 합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도, 사람들도 모두 환영합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닫힌 문에 얽매이지 않고, 열린 문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과거의 잘못에 얽매여서 미래로 못 나가는 것은 소명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소명자는 때론 죄책감마저 소명의식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이는 그것이 소명을 주신 이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날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나도 날 포기하면 안되는 것입니다(고전 15:10). 이전에 갖고 있던 믿음과 확신도 그것이 틀렸다면 과감히 내려 놓아야 합니다. 바울은 유대교 율법주의를 과감히 버리고, 주님이 보여주신 새 믿음을 향해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자꾸만 옛 생각에 구속되는 완고함과 고집은 곧 우상숭배입니다(삼상 15:23). 하나님은 잘못된 옛 생각을 돌이킬 수 있는 자들을 최상의 그릇으로 빚어 가십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예견된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고난을 뚫고 묵묵히 나아갔습니다. 부르심의 순간부터 바울의 앞날에는 고난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이를 알았습니다(행 9: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을 전혀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난에 당당히 맞서며 소명을 향하여 묵묵히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죄인중에 괴수’인 자기를 사도로 불러주신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이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사명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전환기에 보여준 바울의 위대한 모습입니다. 여러분들도 분명 인생의 큰 전환기를 몇 번은 겪게 되실 것입니다. 그 때, 바울과 같이 겸손하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고난까지도 주님께 내어 맡기며 나아감으로써, 삶의 위기가 오히려 하나님의 소명이 되고, 인생의 역경이 도리어 성숙의 기회가 되는 ‘승리하는 삶’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인생’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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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여호와가 이루시는 회복과 부흥
슥 1:1-21 (봉독: 7-17) 스가랴서의 배경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 (BC 521-486) 때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때, 페르시아의 영광은 최고조에달했습니다. 반면, 예루살렘은 주전 586에 바벨론에게 무너져 포로로 끌려가서 약 70년간 힘겨운 노역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그 동안 바벨론이 다시 페르시아에게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와 다리오 왕의 마음을 움직이사,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무너진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에 복귀한 무리를 1차 귀환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들의 바램과 달리 예루살렘 성전재건은 주변 민족들의 끈질긴 방해로 중단되고 장장 16년간이나 방치되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에게 멈춰진 성전 재건을 속개할 것을 강조한 두 선지자가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학개가 눈에 보이는 성전 건축을 강조했다면, 스가랴는 ‘성전된 우리들’의 영적 회복과 부흥, 즉, 영적인 성전 건축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스가랴서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한 민족 (한 개인)을 회복, 부흥시키시는 지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예언서입니다. 그 중, 1장은 회복과 부흥의 큰 원리들을 볼 수 있는 장으로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번째 말씀은 1-6절까지인데, 하나님은 “회복을 위한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은 이들이 징계받았던 이유가 이들의 불순종이었음을 명확히 하십니다. 하나님은 340년간이나 이들의 불순종을 참으시며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를 거절한 이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징계를 하나님이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바로잡으십니다 (6). 그러나, 이것이 메시지의 핵심은 아닙니다. 정작 하나님이 하실 말씀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 하나님은 백성들이 죄로 타락한 이전 상태로 돌아오라 (슈브)고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당신께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처럼 회복은 은혜인데, 조건적 은혜입니다. 우리의 회개가 필요한 조건적 은혜입니다. 돌이킴은 우리의 의지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 행위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온전한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이러한 회개, 슈브의 마음이 솟구치길 소망합니다. 첫 메시지가 임한지 석 달정도 지났을 때, 두 번째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는데, 이번에는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7-17) 이 때, 굉장히 중요한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붉은 말을 탄 한 사람(8) 입니다. 성경은 그를 ‘여호와의 천사’라고 말합니다(11). 그런데, 그냥 천사가 아닙니다. 그는 온 땅에 대한 통치권을 갖고 있고(11), 친히 하나님께 세상을 변호하고 중보하는 존재입니다(12). 누가 온 세상의 진정한 왕이요, 누가 하나님께 중보하는 자입니까? 바로, 성자 예수님입니다. 그가 타고 있는 붉은 말은 피와 심판을 상징하며, 그가 골짜기에 있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이 쉽지 않은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다 이해하시고, 그 문제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분 뒤에 붉은 말, 갈색 말, 흰 말들이 있었는데, 11절에서 그들이 주님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그들 위에 천사들이 타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께서 모든 천사들을 다스리시는 대장이 되시고, 천사들은 주님의 명을 받들어 온 땅을 두루 살피는 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온 땅을 두루 살핀 후 주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땅에 돌아다녀 봤더니 온 땅이 조용하고 평안했습니다(11).” 이는 외적 상황이나 정치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 내면 상태를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그들은 첫 번째 메시지, “내게 돌아오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이 회복과 부흥에 맞도록 준비가 되자, 우리 주님이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서는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여러 성읍들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렵니까? 주께서 이들을 노여워하신 지 벌써 70년입니다(12).”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변해 주시는, 재판장이시면서 동시에 변호사이십니다. 이 분을 붙잡아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 5:24).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은혜의 말씀, 위로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예루살렘과 시온을 무척 사랑한다.” 2절에서 여호와는 몹시 화가 나셨었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바꾸셨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딸바보, 아들바보가 되십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더 놀라운 일들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자비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 그곳에 내 성전이 세워질 것이다. 예루살렘에 집을 짓기 위해 측량줄을 칠 것이다(16).” 여기서 성전은 1차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요, 더 나아가 성전된 우리들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될거란 영적 의미도 함께 포함합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직접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에 부흥이 임할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돌아오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자연 발생적으로 생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면 이들에게 임할 회복과 부흥은 전 인격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회복과 부흥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주도권을 갖고 하시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일 영적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땅에, 특히 우리 교회에, 더더구나 우리 청년부에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의 물결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 수련회가 그 중심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부흥의 물결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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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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