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사랑으로 권면하는 공동체 (살전 5:12-23)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로, 신약에서는 교회 공동체로 주님의 언약백성을 부르셨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님이 완전한 하나됨의 연합을 이루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언약 백성인 우리들도 그 완전한 연합 가운데로 초청하십니다. (요 17:11) 그래서 우리 또한 완전한 연합의 공동체로 성숙시켜 가는 것이 부름 받은 자들이 마땅히 할 바입니다. 이러다보니,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다양성이 존재합니다. 각자가 성장한 환경과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배경이 다릅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각각 다른 신앙의 단계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제 막 주님을 영접한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주님께 깊은 헌신의 삶을 살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으시고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가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분명한 연합성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주님을 믿어 한 아버지를 공유하고 있는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다양성의 장벽들은 다 무너질 것입니다. (엡 2:21-22) 그럼, 주 안에서 한 공동체로 부름받은 우리는 어떻게 성숙한 연합을 이뤄갈 수 있을까요? 가장 으뜸되는 황금률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 13:34) 우리가 경험하는 공동체의 갈등 대부분은 ‘사랑이 부족해서’ 생겨납니다. 고린도전서 13:4-7의 사랑의 특성을 우리가 이번 한 주 동안 함께 계속해서 묵상하기 원합니다. 그 다음 황금률은 서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사랑하라’가 이루어졌을 때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권면은 사랑의 전제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한 권면입니다. 그는 여기서 몇 가지 권면에 대한 중요한 지혜들을 나눕니다. 첫째, 바울은 공동체를 섬기는 리더십들을 귀하게 여길 것을 강조합니다. (12-13절) 공동체는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분들을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바로 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운 권위의 원칙입니다. 따라서, 섬기는 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당하고, 섬김을 받는 자들은 이들을 귀히 여기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연약한 자들을 도우라고 강조합니다. (14절) 공동체에는 다양한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있습니다. 특별히 공동체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이기도 합니다. 연약한 자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 곁에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이 강한 자들이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도 연약한 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때로는, 진정어린 권면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권면하는 자는 기도하면서 사랑으로 권면하고, 권면을 받는 사람은 겸허하게 이를 받아들일 때 공동체가 성숙하게 됩니다. 특별히, 바울은 연약한 자들을 도울 때 오래 인내할 것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첫 특성과 끝 특성이 모두 인내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인내한다는 것은 그 영혼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셋째, 공동체가 함께 악을 대적하라고 강조합니다. (15, 22절) 이 부분이 신앙공동체에만 있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삶’을 함께 추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레 11:45) 공동체가 악을 함께 대적할 때 굉장히 큰 힘을 받습니다. 혼자서는 싸우기 힘든 유혹에 대해서도 용기있게 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 AKPC 청년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 공동체가 체면을 중시하기 보단, 솔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공동체가 되려면, 다른 사람의 약점을 판단하지 않고, 가십거리로 만들지 않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한 지체가 자신의 약점을 꺼내 놓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요, 공동체를 신뢰하기에 한 것입니다. 공동체는 이를 잘 지켜주어야 합니다. 또한, 이런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비밀유지가 확실하고, 서로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기도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넷째, 거룩한 삶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성도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16-21절) 매일 매일의 삶에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자들이 늘어나면, 온 공동체가 선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경건의 삶을 스스로 훈련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우리 공동체 모두가 영적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랑 안에서 이루어질 때만 의미가 있는 것임을 잊지 말고, 사랑 안에서 서로 권면하는 귀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나눔과 묵상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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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창 15:8-17)
오늘은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언약이란 개념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꼭 잘 알아야 하는 핵심단어 중 하나입니다. (언약 vs. 계약)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도하셔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창 12장, 15장)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언약 관계를 맺으십니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게 된 것이요,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갈 3:6-7) 하나님은 친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고후 6:16) 그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이 언약은 어떤 것인가요? (언약의 주체) 언약은 혼자 맺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함께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존재들입니다. 이는 우리의 가치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존귀하게 보시는 지를 반증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주의 자녀들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신 32:10)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주체라는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사역의 동역자로 보고 계심을 상징합니다. 마치 아담, 노아,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언약의 근거) 이 언약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식 모습을 보면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지만, 그 언약을 지키실 책무는 하나님 혼자 스스로 지셨음을 보게 됩니다. (창 15:12, 17)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은 그 언약을 완벽히 지킬 수도, 그 언약이 파기된 결과인 죽음을 완전히 감당할 수도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잠든 아브라함을 두신 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식을 완성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신실함 위에 맺어졌기 때문이다. (언약의 내용) 하나님과 언약 백성간에 맺은 언약에는 양쪽에게 요구되고 약속한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언약백성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떠나가라! 입니다. (창 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먼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는 안전과 공급에 대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며, 정착한 땅에서 누리는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뜻입니다. 둘째, 할례를 받으라! (창 17:10) 입니다. 할례는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이를 보면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집트 왕국에서 성장한 모세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알게 된 비결도 바로 할례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할례는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은밀하고, 유혹이 많고, 생명과 창조명령과 직접 연관된 곳에 할례 (sealing)을 받음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 동기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 마음의 할례로 전환됩니다. (롬 2:28-29) 셋째, 언약 가운데 거하라! (창 15:6) 입니다. 이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언약을 끝까지 신뢰하고, 그 가운데서 떠나지 말고 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25년간의 기나긴 기다림을 경험했습니다. 중간에 힘들어서 하나님께 원망 섞인 반응도 보이기도 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때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도, 막상 정 반대의 일만 지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도 우리는 언약을 신뢰하고, 언약 가운데 항상 거해야 합니다. 왜냐면, 언약의 기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기에 그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언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언약적 책임을 다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데, 특별히 세 가지를 약속해 주십니다. 첫째, 약속의 땅을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언약 백성들의 삶의 터전을 주시고, 삶의 기본적 필요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취업의 문도 여시고, 때론 기적적인 공급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자녀들을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둘째, 그 후손을 왕성하게 하십니다. 이는 혈통적 후손과 영적 후손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후손에서 언약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남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이라는 축복이 흘러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온 세상의 축복의 통로로 만드십니다. 아담 이후 온 인류의 죄로 인해 어그러진 세상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통한 승리의 구속사역을 완성하는 최고의 가치있고 중대한 사역에 우리를 사용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언약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깨닫고, 이 언약에 사로잡혀서,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감사히 헌신하는 주님 닮은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말씀 : 믿음과 행위 (엡 2:8-9, 약 2:14-17)
믿음과 행위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한 쪽만 지나치게 강조해서 다른 쪽을 간과하지 않는 균형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은 생명에 관한 것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생명의 값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거듭남, 즉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이는 거듭남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 예수의 십자가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뜻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경계해야 할 것은, 이 믿음조차도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전 12:3, 시편 139:13, 16) 결국, 구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달리 고백할 방법이 없습니다. 선한 행위는 이렇게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인 것입니다. 자격없는 나를 위해 존귀한 희생을 감수하신 예수님을 깊이 느끼며,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삶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깊이 체험하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분들은 그렇게 확실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구원도 동일한 하나님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완전한 선물입니다. 내 느낌과 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변치않는 하나님의 약속이신 말씀에 기초한 선물입니다. 이렇게 조용한 구원을 받으신 분들은 어떻게 확신의 단계로 나갈 수 있을까요?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두 가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첫째, 은혜의 도구 (Means of Grace) 입니다. 말씀묵상, 기도, 예배, 성찬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긍휼의 행위 (Works of Mercy) 입니다. 선행, 이웃사랑과 같은 실천입니다. 비록 처음 예수를 고백했을 때는 특별한 느낌이 없을지라도, 계속해서 경건 생활을 노력하면, 예수께서 나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셨음을 내적으로 확신하게 됩니다. 구원은 순간적 역사이지만, 구원에 대한 내적 확신은 더 오래 걸릴 수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심지어, 신비로운 체험을 하신 분들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은 체험이 아니라,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얻어지게 됩니다. 확신으로 나아가는 다른 하나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웃의 기초적인 필요들을 채우려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노력들을 할 때, 가장 큰 영적 유익은 사실 우리 자신이 받습니다. 우리가 선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내면 가운데 깊이 뿌리내립니다. 이와 같이, 행위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의 첫 단계인 칭의 (Justification)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그것을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행위가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다음 단계인 성화 (Sanctification)에서는 우리의 경건과 착한 행실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처럼 구원을 우리가 완성해 가는 데에는 믿음과 함께 행위도 분명 따라야 하는데, 이것이 민감한 부분이어서, 때론 혼돈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와 관해 두 가지를 특별히 경계하고자 합니다. 첫째, 현대적 율법주의입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행위가 너무 중요해진 경우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나의 행위 때문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게 됩니다. 나만큼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판단의 잣대로 바라봅니다. 현대적 율법주의에 빠지면 하나님의 은혜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한 번 받고 졸업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두번째, 은혜제일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렀지만, 그 이후에 힘써야 하는 경건의 삶과 선한 행실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개인 구원의 문제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으로 보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이런 신앙은 아무런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깊은 맛을 느끼며, 구원받은 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서 믿음과 행위를 함께 성숙시켜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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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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