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신명기는 ‘모세의 고별 설교’라고 불립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을 향한 모세의 고별 설교이고, 마지막 31-34장은 모세의 고별의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고별 설교를 하는 모세의 마음은 마치 유언을 남기는 부모의 마음 같습니다. 모세는 아주 특별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그는 평생 가나안 땅 들어가기를 꿈꿨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울까요?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비록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갈 다음 세대를 위해 고별 설교를 합니다. 첫째, ‘기억하라’고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보다 율법(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환경(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환경)을 따라 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셋째, ‘기대하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말씀을 청종하며 사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상상 못할 축복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보호자, 공급자, 돕는 방패, 영광의 칼이 되시고, 이들을 존귀한 자들로 높이실 것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기억하고 지켜 행하고 기대함으로, 하나님이 인도하실 영적 가나안을 풍성히 누리는 AKPC 청년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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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믿음을 살아내기 (히 10:19-23)
신앙과 삶을 연결하는 것은 우리 크리스쳔이 평생에 걸쳐 풀어야 할 숙명과 같은 과제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순간적인 사건입니다만, 믿음을 삶에서 살아내는 것은 평생 걸리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왜냐면 내가 은혜 받았다고 해서 우리 일상이, 내가 속한 세계가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개념을 다소 치우치게 이해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먼저, 믿음을 “교회생활” 로만 한정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믿음생활을 더 잘 하기 위해서 점점 더 자기 삶을 교회생활로만 채워갑니다. 두번째는, 교회에서는 믿음으로 살고, 직장에서는 세상논리로 사는 겁니다. 반면, 직장생활의 목적 자체를 복음전파로만 생각해서, 다소 무리하게 전도에만 열정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생활도, 전도도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러한 관점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놓치고 있는데, 이는 내가 하는 직업, 일에 대한 영적 의미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일’을 주시고, 그것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완성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창조때부터 아담이 할 일을 남겨놓셨고, 그가 그 일들을 아름답게 완성하길 기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일을 통해서 우리 삶의 필요도 공급해 주십니다. 앞으로 8월 한 달 동안 일과 신앙의 문제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주제로 “믿음을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을 살아내는 삶의 첫번째 특징은, ‘하나님이 내 삶의 모든 영역을 인도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갖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 때부턴 우리 삶을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주관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 삶을 직접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가득한 이 세상 가운데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줄 너무나 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믿음을 방해하는 두 가지 우리의 잘못된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성공주의와 조급함입니다. 성공주의는 인생이 잘되고 계획대로 잘 풀리는 것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여기지만, 인생이 꼬이고 어려워지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공만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본다면 많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를 통해서도 가르치시고 성숙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조급함” 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의 때는 우리의 시간개념에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믿고 순종하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내가 생각한 때보다 늦어진다고 조급해하거나 지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믿음으로 사는 삶의 특징은 ‘매일 매일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삶’을 뜻합니다. 믿음을 인생의 큰 일들에만 적용하다보면 자칫 소소해 보이는 삶은 놓칠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진짜 신앙인은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를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내 하루 하루의 삶에 관심이 많으시다” 라는 것과, “오늘이 내 사역지요 영적 전쟁터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마 6:34) 여러분의 오늘은 일주일 중 5일은 직장에서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일터의 삶에서 승리하지 않고는 우리는 승리하는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오늘 하는 일에서 성경적 가치대로 살고, 신앙인 답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을 살아내는’ 기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 일상에서 어떻게 성경적 가치관을 적용해야 할 지를 놓고 매일 매일 기도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확신에 찬 믿음”과 “참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는 10장까지 예수님이 얼마나 뛰어나신 분이신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로 이어서, 이런 위대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한 첫번째가 “확신에 찬 믿음” 입니다. 이는 문맥의 정황상 “예수님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믿으란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부도덕하고,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관행들을 겪게 된다면,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냐면, 그 사회에 있는 한 그것이 너무 강력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있게 외칩니다. (불의한 소작농 비유)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우리가 성경의 가치로 세상의 논리와 싸울 때, 우리가 무모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우리들은 세상의 힘에 압도되어서 주눅들거나 혹은 회피하지만 말고, 성경이 말하는 가치,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가치를 자신있게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선택을 책임져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다음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강조하는 것은 “참된 마음” 입니다. ‘참된’의 원어적 뜻은 “진실된, 진정한, 구부러지지 않은” 이란 뜻입니다. 이 마음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경제 논리로만 일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경제 논리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 3:23) 또한, 기독교인들은 직장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임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일은 단순히 생계유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자세가 달라집니다. 일에서 의미를 찾고, 보람도 느끼고, 일의 즐거움도 즐기게 됩니다. 더 완전하게 일을 하기 위해 더더욱 노력합니다. 우리가 이런 존재들이 될 때, 오히려 세상조차 우리를 더욱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 주실 영원하신 승리를 바라보며, 하루 하루의 삶에서 믿음을 살아내는 짠맛내는 크리스챤 되시길 축복합니다. 나눔과 묵상을 위한 질문
룻기는 회복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가 텅 빔(emptiness)에서 채움(fullness)으로 회복되는 이야기입니다. 베들레헴에 양식이 있다는 은혜의 소식을 들은 나오미는 모압 땅을 떠나 고향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이 길에 며느리 룻(모압 여인)이 동행합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고 시어머니와 함께 낯선 땅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두 여인은 베들레헴에 도착하지만, 이들은 생계가 막막합니다. 그래서 룻은 추수하는 보리 밭에 가서 이삭 줍기를 합니다. 이삭 줍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추수하는 밭 주인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이삭 일부를 남겨두어야 하고, 가난한 자들은 남겨진 이삭을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습니다. 이삭 줍기를 하는 중에, 룻은 보아스를 만납니다. 그리고 이 만남은 보아스의 헤세드(hesed; 책임(의무) 이상의 사랑 or 과분한 은혜)를 낳게 되고, 보아스의 헤세드를 통해 나오미와 룻의 삶은 회복됩니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만남’에 대해 두 가지를 깨닫습니다. 먼저, 우연같은 만남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간 것, 마침 그 시간에 보아스가 밭에 나온 것, 그리하여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다음으로, 만남은 헤세드의 통로입니다. 만남을 통해 헤세드가 흘러갑니다. 보아스는 룻이 이방 여인이지만 그녀를 환대하고 축복합니다. 그녀에게 은혜 베풀기를 기뻐하고, 은혜를 베풀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결국, 만남을 통해 룻과 나오미는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만남을 통해 일하십니다. 만남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고 만남을 통해 사람을 회복하십니다. 오늘 목장 모임을 통해, 지금까지 내 삶에 주어진 만남의 은혜를 나누고 감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만남을 통해 헤세드를 나누는 AKPC 청년 공동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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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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