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기독교인의 안식 (창 2:1~3)
안식은 현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챤, 특히 한국인 크리스챤이 그 중요성을 많이 간과하는 분야 중하나인데, 사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분야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일의 성취를굉장히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그 결과 안식의 참된 개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은 일상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분리해서 영이신 하나님 안에서 잠잠히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치유함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실 때도 그 넷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명령입니다. 그럼, 안식일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원칙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지정하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이 필요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에게는 피로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이 안식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해서였습니다. 현대 문명과 기술의 발전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혜로 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 때문에 우리 인간의 영적 세계가 더더욱 외면받고,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애브러험 헤셀,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적 견해’ 이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안식의 첫번째 개념은 바쁜 일상, 현대 문명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그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것입니다. * 에이레네(헬), 메누하(히) = 평안(peace), 고요함(stillness), 연합(harmony)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이러한 시간이 없어지면, 우리 영혼이 파괴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그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됩니까? (3절) 하나님께서 이 날을 구별하시고, 그 날에 복을 부어주시고, 거룩케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물질적인 복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거룩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거룩은 구별됨의 의미합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의 영원하신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직접 우리를 책임지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존재로 구별하여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안식일은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안식하지 못할 때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예, 자동차 이야기) 하나님은 우리 영혼, 육신, 감정, 생각 모두를 디자인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안식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안식을 잃으면 반드시 어딘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을까요? 첫째, 내 삶의 리듬 속에서 나만의 안식일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도사님 사례) 둘째,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에 속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스마트폰) 셋째, 정적감과 느려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주변을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호흡, 산책, 자연) ‘안식하며 살 것인가? 바쁘게 속으며 살 것인가?’ 는 우리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창조원리에 맞는 안식과 쉼을 누리는 복된 자녀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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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교회, 제자삼는 공동체 (마 16:24)
마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교회는 제자 삼는 공동체입니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함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이 명령에 근거해서 교회는 제자 삼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공동체인 것입니다. 그럼, 제자란 누구입니까? 첫째, 제자는 배우는 자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관점을 배워가는 자입니다. 둘째, 제자는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동양식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따르다”는 “포기하다”와 동의어입니다. 즉, 제자는 내 기존 가치관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제자는 보냄받은 자이다. 죄된 세상에서 부름받아, 다시 죄된 세상으로 보냄받은 자입니다. 제자는 ‘약간의 부족함과, 약간의 피로함과 약간의 미안함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럼, 왜 제자로 살아야 합니까? 우선, 그것이 예수님의 부르심 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지, 신자를 삼으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제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둘째, 제자로 부름받은 선진들이 그렇게 본을 보였기 때문이다. (예, 사도 바울, 고후 11:21-27) 셋째, 제자로 헌신한 삶의 열매가 감히 세상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영광과 기쁨과 감격과 환희가 가득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생명의 면류관 딤후 4:7-8) 그래서, 제자의 삶은 비록 희생이 따르지만, 그만큼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는 특권입니다. 그럼, 누가 제자가 됩니까? 부르심에 반응한 자가 제자가 됩니다.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또한,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 부르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가치를 잘 압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마 13장) 마지막으로, 부르심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의사 선교사 이야기) 따라서, 부르심에 순종하려면 삶이 simple해야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것, 내가 쌓아 온 것, 내 주변에 챙겨야 하는 것이 너무 많으면 부르심에 반응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이 제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 눅 8:2) 현대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은 ‘쉬운 신앙’입니다. 적당주의, 달래기, 스스로 기준을 낮추기가 교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기준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제자로 살 수 있습니까? 제자로 살려면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합니다. Christ-centered life는 아예 새로운 도화지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의 틀을 버리고, 예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운동; 성경 묵상의 필요성) 두번째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신 분이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우리는 능히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행 1:8; 기도는 성령충만의 출입문) 또한, 제자됨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나의 모습에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긴 안목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겠노라는 마음만 유지하고실천하면, 우리도 주의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 제자가 되어가는데 교회의 역할을 무엇입니까? 제자는 혼자 살 때보다 공동체 가운데서 더 잘 만들어집니다. (전 4:12, 삼겹줄) 교회는 함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힘을 얻고 격려하고, 때론 권면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제자도의 좋은 스승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좋은 제자는 좋은 스승에게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제자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도 특별한 은혜가 있는 복된 길입니다. 바라옵기는, 주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반응하며 나아가는 귀한 청년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제목: 교회, 교제하는 공동체 (히 10:24a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교회는 교제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면서 기대하는 것은 따뜻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낍니다. 공동체가 내 삶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때 그 공동체는 내게 유익이 되는 귀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되고 성경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교회의 교제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방향성을 잘 유지하는 교회는 공동체를 통해서 구성원들이 큰 유익을 받는 귀한 공동체가 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귀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본이 되는 공동체의 첫번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좋은 교회는 위로와 격려가 풍성한 교회입니다. 본문말씀인 히브리서 기자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고 말씀합니다. 먼저, 서로 돌아보는 것은 관심을 의미합니다. 교제의 시작은 남에 대한 관심입니다. 주변의 형제, 자매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남을 관심있게 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굉장한 힘과 위로를 받습니다. 누군가가 내 사정을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역할을 교회가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친밀감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리더와 공동체원 모두가 함께 같은 마음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신뢰를 쌓아 가기 위해서는 자꾸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합니다. 특히, 이야기하는 데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해서, 모두가 함께 속 이야기를 깊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해 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멤버 중 누군가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에서는 속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구나” 라는 마음이 들어야 모두가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과 선행은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닮아 가기 위해 살면서 겪게 되는 갈등 속에서, 신앙인 답게 행동하도록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 나의 공동체 이야기, 데살로니가 교회 이야기 두번째 교회 교제의 본질은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바로잡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조금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교회의 교제는 오히려 권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었습니다. 그 만큼 권면이 영적으로 귀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크리스챤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잘못된 길로 가는 형제 자매들에게 무관심하지 않고, 찾아가서 사랑으로 권면하는 공동체가 되야 합니다. 또, 나 스스로도 이러한 권면에 대해서 고깝게 듣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여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기독교 공동체가 서로 권면해야 하는 이유는, 나쁜 행동이 궁극적으로 공동체 전체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누룩’ 비유, 바이러스 비유, 고린도 교회 사례 권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이 아닌정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약간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는 차라리 권면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권면해야 한다면, 먼저 고전 13장을 깊이 묵상하기 바랍니다. 그 후에 사랑으로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 사례 (요 21장)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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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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