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욥의 이야기 2 (욥 3~37장)
욥기 3장에서 37장까지는 욥과 세 친구가 서로 변론하는 부분입니다. 총 42장으로 구성된 욥기에서 이 부분이 35장이나 차지합니다. 오늘은 왜 이 부분이 이렇게까지 긴지, 또 이 부분이 왜 욥기 안에 있어야 하는지, 친구들과 반복적으로 변론하는 이 부분 안에는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러면서, 상처받은 영혼을 싸매시고, 홀로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시는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이 자리에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Nicholas Wolterstorff (예일대학교 신학교수)가 쓴 Lament for a son 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사고로 잃게 되면서 겪은 그의 슬픔에 관한 것입니다.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아들의 죽음에 직면하게 되자, 이 부부는 어떻게 이 슬픔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결정해야 했습니다. 평소 그들의 신념대로 이 상황을 굉장히 이성적으로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감당조차 되지 않는 이 슬픔을 그냥 온 몸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선택이었습니다.이 부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끝도 없는 슬픔의 계곡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오랜 시간 그는 이 슬픔의 계곡에서 절규했고, 원망했고, 그 슬픔을 토설했습니다. 수년간의 길고 긴 슬픔이 어느 정도 지나간 무렵, 평소 너무 잘 알던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마 5:4) 다음으로 그의 눈에, 고난받는 예수님을 묵묵히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렇지. 하나님도 나와 같이 아들을 잃으셨지!” 평생 신학자였던 그가 처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아주 희미하게나마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소망을 절대 과장하지 않습니다. 즉, 소망이 생긴 후로 슬픔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의 마음은 여전하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어쩌면 그는 이 슬픔을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게 아니라, 이 슬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 가야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저자 Wolterstorff가 부활의 소망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긴 슬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1-2장에서 한 신앙고백은 사실 머리의 고백입니다. 그는 아직 제대로 슬픔을 느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욥기 3-37장에서 그의 상한 감정을 만지십니다. 욥은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과 변론하면서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토설합니다. 슬픔의 절정에서 터져나오는 우리의 절망과 원망의 절규를 하나님이 싫어하지 않으시고, 절대 외면하시지 않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John Dickie, ‘하나님은 슬픔에서 터져나오는 우리의 토설을 믿음없는 행위로 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가 그 분을 비난하도록 허용해 주시는 분이다.’ Walter Brueggemann, “우리의 절규는 우리의 슬픔에 대해 하나님의 눈과 귀를 즉각적으로 주목시키는 효과가 있다.” 욥기의 이 부분이 긴 것은, 우리의 감정의 치유가 굉장히 오래 걸리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슬픔이 찾아오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을 직면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나아오고,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갈 용기를 갖는 것은 평생 걸립니다. 혹 우리 중에 이런 고난과 상처가 계신 분들께,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꼭 기억하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슬픔을 온 몸으로 맞아들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못참겠으면 주님께 원망도 하고, 투정도해도 좋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조금씩 소망의 씨앗이 움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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