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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리아의 헌신 (요 12:1~8)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예수님께서 크게 기뻐하신 장면들이 사실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떠오르는 것들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사건, 로마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을 들으신 일, 그리고 오늘 본문말씀인 마리아의 옥합을 깨는 헌신의 사건 정도가 있습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곧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 베다니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그 마을에 오시자 마을에는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얼마전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 옥합을 가져와 그것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씻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너무 귀하게 여기시며 칭찬하셨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파되어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이 곳에서만 사용하신 귀한 칭찬과 축복의 표현입니다. 한편, 가롯유다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왜 이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낭비하냐?”고 마리아를 나무랐습니다. 참고로 300데나리온은 대략 오늘날 가치로 보자면 5-7만불 정도의 가치였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꽤 큰 돈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광경을 직접 보셨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예수님처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가롯유다처럼 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 중에도 ‘이건 좀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왜 이렇게 큰 헌신을 하였는지 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리아는 얼마전 죽은 그녀의 오빠를 예수님께서 살려주신 것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또한, 성경학자들은 마리아의 형부, 즉 마르다의 남편이 나병 환자 시몬이었을 것이고, 예수께서 그 병을 고쳐 주셨을 것으로 많이 해석합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오빠와 형부를 예수님께서 놀라운 초자연적 능력으로 살리신 경험을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녀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또한,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게 심각한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비천한 자신들을 돌아보신 그 은혜를 마리아는 가슴 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은혜,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대속과 성육신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마리아는 진실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향유는 당시 결혼 지참금이었습니다. 이를 헌신한다는 것은 결혼을 포기한다는 뜻이며, 이는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무엇이 가롯유다와 마리아의 반응의 차이를 만들었나요? 바로, 믿음입니다. 가롯유다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여전히 예수가 메시아인지 확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데 아까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가롯유다는 자기 눈 앞의 예수님이 하나님은 커녕, 메시아인지도 확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리아의 헌신이 돈 낭비라고 느껴졌던 것입니다. 제가 수년 전에 제자훈련을 받을 때, 참 인상깊게 배웠던 과목 중 하나가 ‘한국 선교’라는 과목이었습니다. 그 과목을 통해 하나님께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기간동안 얼마나 놀랍게 대한민국에 주님의 복음을 전파해 주셨는지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시 먼저 조선에 왔던 선교사님들은 조선이 막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로 하자, 다급하게 조국 교회들에게 선교사들을 보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보냅니다. (George Knox 선교사님 등) 이 부르심에 미국, 영국, 호주 등의 젊은 신학생들과 목사님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그 분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접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조선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오셨습니다. 그 분들 대부분은 조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죽어도 조선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셨고, 그 소원대로 서울 양화진에 묻혀 계십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조선 땅의 복음화를 위해 뼈를 묻으신 분들입니다. 그 분들 대부분은 사랑하는 아내 혹은 어린 자녀들을 풍토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본인들도 풍토병으로 사망하신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선교의 불씨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뿌리가 되었고, 2018년 현재 한국은 약 28,000명의 선교사님들을 171개국에 파송하여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리아의 헌신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요 12:7처럼, 그녀의 나드 향유는 바로 존귀하신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귀한 예물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이를 알고 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만, 그녀의 헌신을 예수님께서 이렇게 귀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값진 300데나리온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순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억하며 우리도 금식하고 절제하며 삶에서 작은 실천을 하는 기간입니다. 마리아의 향유는 사순절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를 묵상하며 내 안의 예수님이 어떤 의미로 자리잡혀 있는지 돌아보고, 나는 예수님께 어떻게 헌신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삶에서 실천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헌신을 통해서도 마리아의 나드 향유와 같이 놀랍게 영광받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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