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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 있는 사람
시편1편은 시편 23편과 함께 많은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는 참 아름답고 귀한 시입니다. 저도 여러분과 같은 젊은 나이에 이 시편을 묵상하면서 받았던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시편1편을 통해 성경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복 있는 사람이 될 지 묵상하는 의미있는 시간 되시길 소망합니다. 먼저,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가장 먼저 악을 떠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1절)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는 표현은 점층적으로 악으로 치닫는 모습을 잘 나타내 줍니다. 죄를 따르는 길은 처음에는 호기심에 미혹되다가 결국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자리에 주저 앉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시편은 분명히 악인들에게도 꾀가 있고, 죄인들이 가는 길도 따로 있으며, 오만한 자가 앉는 자리도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그 자리를 피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이 즐거워지면 세상이 말하는 꾀나 지혜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묵상하는 것은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입을 떠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기자는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고, 복 있는 사람이 묵상한다고 표현합니다. 즉, 그 순서는 복받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말씀을 묵상한다는 뜻입니다. 그 내면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 성령 충만한 상태가 복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물과 햇빛을 통해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 생명력을 유지하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는 열매 맺을 때가 되었을 때 맺는 것입니다. 그것을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열매 맺기 위한 기다림도 있고, 험궂은 날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때가 되면 어김없이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말씀합니다. 형통과 성공은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성경은 요셉이 종으로 있을 때, 옥에 갇혔을 때도 형통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처한 상황이 어떻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철을 따라 선한 열매들을 맺는 삶이 곧 성경이 말하는 형통한 삶입니다. 이제 시편기자는 반대로 악인을 묘사하는 데, ‘바람에 나는 겨’로 비유합니다. (4절) 겨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반대 개념입니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뿌리에 있습니다. 뿌리가 냇가에 있으면 생명력 있는 나무가 되고, 뿌리가 없으면 말라버린 겨가 됩니다. 시편 1편의 시냇가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말씀(logos)을 상징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주야로 율법을 읊조린 것처럼 하나님이 그 속에 있느냐가 시냇가의 나무와 바람에 나는 겨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이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고 그 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는지, 구원받은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즉, 존재와 생명에 관한 기반을 닦아줍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깨달은 자는 시냇가의 나무처럼 삶과 가치관의 뿌리가 든든히 내려집니다. 겨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바람 부는 대로 이리 저리 흩날리는 존재가 됩니다. 마치 유행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이는 세상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겨가 더 형통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안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겨와 생명 나무가 확연히 구분되는 때는 심판의 때입니다. (5절) 심판 때에는 생명력이 없는 겨들은 사그러 들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겨도 존재합니다. 예수님도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심판 이전까지는 세상에 알곡과 함께 가라지도 있음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은 오직 의인의 길뿐입니다. (6절)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반대로, 주께서 카운트하지 않는 삶을 살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 때는 후회해도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눅16장) 예수께서 요한복음 15장에서 하신 포도나무 비유를 시편 1편과 같은 맥락에서 보는 것은 의미있는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죄를 떠나고,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가장 훌륭한 시냇가의 나무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를 그 분의 가지로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바로 그 삶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삶이요, 신구약이 공통으로 말하는 복 있는 삶입니다. 이런 삶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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