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며
저는 어스틴을 꽤 좋아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저는 이 정도의 삶의 환경이라면 감사할 수 있는, 아니 감사해야 하는 쾌적한 환경을 주님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며 어스틴에서 사는 데 한 두가지 아쉬운 부분은 있어 왔는데, 그 중 하나가 멋진 가을 풍경을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을을 참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동네는 가을이면 은행잎이 흐드러지는 곳이었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쌓인 낙엽 속으로 뛰어 들어가 개구장이 짓 하며 보내던 아련한 추억이 제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저는 보통의 대학생과는 다르게 회색 정복을 입고 손에는 007 가방을 든 채 50년 이상 된 아름드리 플라타나스 길을 걷는 걸 좋아했습니다. 사관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빡빡한 통제감 속에서의 자유함을 저는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장년이 되어 스무 번 넘게 이사하는 동안 전국 방방 곳곳 왠만한 지역에 안 살아본 적 없는 떠돌이 삶을 살았지만, 그 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인만 아는 절경 포인트를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저의 最愛장소는 어김없이 가을 단풍 포인트였구요. 이런 제게 어스틴의 가을은 참 아쉬웠습니다. 잎들의 색이 바랜다 싶더니 곧 떨어져 가지만 앙상해지는 가을 모습은 뭔가 절정이 빠진 미완성의 가을 느낌이었습니다. 올 해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을의 늦 자락에서 단풍을 흠뻑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에 교회를 함께 섬기시는 목사님들과 함께, 교회라는 사역의 환경을 떠나 마치 어릴 적 소풍 가는 약간의 설레임을 갖고 버지니아를 방문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 저를 반겨 준 것은 도로가의 낙엽과 같은 가을 풍경이었습니다. 코 끝에 스치는 알싸한 늦가을 바람 느낌, 오고 가는 행인들의 옷 깃을 세운 차림새, 방치된 듯 자연스럽지만 나름 정리된 주변 가을 숲들의 느낌은 유난히 가을을 타는 저에겐 추억의 여행과도 같았습니다.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교회는 유난히 통유리가 많은 예쁜 교회였습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는 바깥의 완연한 가을 느낌도 이번 컨퍼런스의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멀리서 오신 목사님들 섬기시기 위해 유니폼까지 맞춰 입고 나와 주신 귀한 바리스타 팀원 분들이 직접 내린 갓 볶은 커피 한잔의 커피향을 느끼며, 나는 정말 오랜만에 가을의 정취에 깊이 젖어 들었습니다. 어느 덧 어스틴으로 복귀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비행기 시간 전에 반나절 정도 꿀 맛 같은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주변의 다른 어떤 관광명소보다도 단풍산을 가고 싶었습니다. 마침 함께 하신 목사님들도 그 마음을 잘 이해해 주셔서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운틴 쉐난도 국립공원을 들렸습니다. 그 곳은 능선길을 따라 약 110마일 정도를 차로 이동하며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길을 가다 보면 그림 같은 나무길도 지나고, 예쁜 바위들과 바위틈을 뚫고 나온 강인한 나무들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능선 아래로 펼쳐진 단풍진 나무숲을 보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번째 lookout을 들렸을 때쯤 문득 제게 옛 추억의 장면 하나가 떠 올랐습니다. 그것은 제가 장교가 되어 처음 부임했던 강원도 양구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양구의 산들, 대암산, 대우산, 고대산 풍경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입니다. 제가 매일 작전을 하던 그 곳,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산자락만 보며 답답함에 한 숨 쉬었던 그 곳, 사랑하는 여자 친구 (지금의 아내)와 저를 소양강과 국내 최장 꼬부랑 길인 오옴리 길로 갈라 놓은 것만 같은 야속한 그 땅의 모습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미국의 국립공원과 똑 같다니!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장교의 초임지는 참 중요합니다. 지역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보고 배우는 것도 큰 차이가 있어 누구든지 커리어의 시작을 가능하면 수도권에서 시작하고 싶어합니다. 첫 부임지로 모두가 회피하고 싶은 세 곳이 있는데, 인제, 원통, 양구였습니다. 하필 저는 그 곳으로 배치를 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이 십대의 젊은 저는 하나님이 야속했습니다. “하나님, 하필 이런 곳에요? 저는 곧 결혼도 해야 되는데요… 하나님, 저는 위탁교육도 받고 싶은데요….” 제 속에는 끝도 없는 불평과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곳에서의 삶이 제게 감사로 다가왔을 리가 없었습니다. 외박 나와서 상봉 터미널에서 여자 친구를 두고 혼자 버스로 복귀하는 길은 항상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길 같았고, 그 마음은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복귀할 때조차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서 약 삼 년 반을 채우고 나올 때는 마치 감옥 출소하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그 곳이 예쁘다는 생각을 평생 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생 오십이 넘어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에서, 그것도 버지니아의 유명한 국립공원에서 저는 지금 양구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한 소리가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들아, 니가 하도 가을을 좋아해서 내가 그 곳으로 보냈었단다.” 먹먹해진 제 가슴에선 그 동안 감사하지 못한 저의 모습과 함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럼 좀 알게 해 주시지… 전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가 날 미워하는 줄만 알았어요. 절 너무 강하게만 키우시려는 걸로 오해했어요.” 잠시 후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원망할 때 참 섭섭하셨겠어요.” 그 때 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행여나 주변 분들이 보실까 저는 조용히 숨겼습니다. 만약, 그 때 제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면 양구에서의 제 삼 년 반은, 아니 저의 커리어는 분명 굉장히 달랐을 것입니다. 험한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누렸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내 삶의 환경도 아버지가 나를 사랑해서 베푸신 것은 아닐까? 내가 그것을 깨닫는다면 이 곳에서의 삶도 달라지지 않을까? 훗날 비슷한 후회는 하지 않지 않을까? 하는 곳까지 생각이 발전하였습니다. 이 십년 후에는 이 시간을 돌아보며 좀 더 성숙한 아들로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단풍은 잎이 생명을 다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결국, 한 마디로 노화의 결과물입니다.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단풍의 그 영롱한 자태는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무성함을 지나야만 나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희노애락의 롤러코스터를 다 지난 후에야 단풍과 같은 아름다움이 자기도 모르게 발현됩니다. 그리고… 마치 낙엽이 떨어지듯, 삶이 끝나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훨훨 돌아가면 됩니다. 오십이 넘으니 저도 제 삶의 빛깔을 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생깁니다. 기왕이면 내장산 단풍처럼 영롱한 색감을 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격을 주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게도 적지 않은 삶의 격정과 폭풍우가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단풍잎과 같은 빛만 낼 수 있다면… 전 그것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 내게 허락하신 이 삶의 환경을 감사히 받아들이자고 제 자신에게 말해봅니다. 삼 십년 전 실패했던 그 일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이라는 시간도 내 인생의 단풍을 만드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요? 쉐난도의 영롱한 그 낙엽빛처럼…
0 Comments
Leave a Reply. |
"주일설교에 대한 질문을 작성해주세요."
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청년부 예배실) Archives
September 2024
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