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 I
본문말씀: 고전 3:1-3 우리 모두는 성숙해지길 원합니다.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감성적으로, 영적으로 더욱 성숙한 존재들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숙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조금씩 거두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 오늘은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에 대해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여러가지로 미성숙한 모습들을 보인 이유를, 바울은 그들이 아직 ‘육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3). 그는 육에 속한 사람은 사람의 악한 본성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부연 설명합니다. 이와 반대로, 영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사람이며 (2:12),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 (2:16)이라고 그는 정의합니다. 먼저, 고린도 교회를 통해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우선, 무리 가운데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다 (3:4). 다음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2:14). 즉, 영적인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자들을 향하여 성경은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히 11:3). 마지막으로, 거룩이 무너진 모습입니다 (5:1). 육은 정욕을 따르는 본성이 있습니다. 거룩 (구별됨)은 육체의 본성을 제어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1서의 ‘세상의 3대 죄성’과 연계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시기와 다툼은 ‘이생의 자랑’ 때문이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안목의 정욕’ 때문이요, 거룩이 무너진 삶을 사는 것은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에 속한 사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첫째,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정체성). 얼마전 타개하신 세계적인 변증가 Rabi Zacharias는, 적어도 세계적 종교라 하면 4가지의 핵심원리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Origin, Destiny, Meaning of Life, Morality다 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중 앞의 두 가지, 즉,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에 굉장히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은 없으십니다. 그는 주로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I am” 시리즈를 통해 자신이 누구이신 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요 6:35, 8:12, 10:11, 11:25, 14:6, 15:1) 자동차 설계자가 자동차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듯, 우리를 창조하신 분만이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창세 이전에 이미 택함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엡 1:4). 하나님께로 와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또한,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성전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이 값을 치르고 사신 존재들입니다 (롬 8:16, 고전 3:16, 벧전 2:9, 고전 7:23) 이러한 정체성만 정확히 기억하고, 뿌리내린다면 신앙 생활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정도로 정체성 확립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둘째, 내 인생의 목적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알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양무리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 10:10). 그것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것도 예수님은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요 12:27). 예수님처럼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낸 사람은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에서는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The purpose of man is to glorify God and to enjoy Him forever)”이다. 성경도 같은 맥락에서 말씀합니다. (전 12:13, 미 6:8) 이 신앙고백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된다면 우리 삶의 모습과 방향은 굉장히 많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업을 구하는 기준도, 일상의 모습도 바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 되시길 소망합니다. 셋째, 영에 속한 사람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 입니다. 삶의 큰 목적을 하나님께 맞추어도 일상에서의 작은 결정들은 여전히 내 뜻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갈등하며 선택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삶의 본을 가장 잘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 심지어 말씀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삶을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의 순종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비록 고통스럽고 큰 희생이 따를 때조차 그 뜻을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막 14:36). 우리가 순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수 차례 기도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바쁜 사역 중에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여 수시로 기도하셨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었고, 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 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일의 내용뿐 아니라, 일하는 방법도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시며 하나님의 권능을 갖고 계셨지만,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철저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 사역하셨습니다 (요 5:19). 단 한 번도 예수님의 권능을 임의로 사용치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조차 이렇게 하셨다면, 우리는 더욱 철저히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힘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의 일관된 원리는, 사람의 약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강한줄 아는 자들을 겸손케 하시고,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전 1:27-29).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힘으로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영에 속한 사람은 그 삶의 중심이 하나님으로만 꽉 채워진 사람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Of the Father, By the Father, For the Father”인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영에 속한 사람으로 한 걸음씩 성숙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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