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소명을 감당하는 삶(2): 소망의 회복
눅 24:27-3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친히 찾아와 주셔서 그들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제자들의 무너진 신앙의 영역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슬픔 가운데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를 찾아가셔서 그들의 빛바랜 소망을 밝혀 주신 내용입니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 중 한 명은 글로바입니다. 교회 전승은 그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동생이었다고 이해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예수의 삼촌이 됩니다. 함께 가던 다른 제자는 성경이 누구였는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여러 정황을 보았을 때 글로바의 부인이었던 마리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두 부부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엠마오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었고, 가까운 가족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곁에 머물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십자가 사건까지 모두 현장에서 목격하였습니다. 특히, 예수께서 십자가 지실 때는 마리아 곁에서 그녀와 슬픔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 그들은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았고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그 후 두 제자가 직접 달려가 빈 무덤을 확인했던 내용도 전해 들었습니다. 즉, 그들은 부활의 간접 증거들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가 죽으신 십자가 사건의 슬픔 가운데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너무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야 말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분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21). 즉, 권능의 메시아를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권능의 메시아를 원합니다. 그래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예수님께 환호성을 보냈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식민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는 올바른 시대정신이요, 정당한 기대였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즉, 그들이 처한 환경 때문에 스스로가 그린 잘못된 메시아 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탄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 권능의 메시아가 될 것을 시험했다는 점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이 시험에서 실패했다면, 그는 순종의 메시아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시험한 것입니다. 예수는 권능의 메시아가 되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셨지만, 순종의 메시아가 되기를 택하셨습니다. 이 순종의 결과가 위대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즉, 권능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수 있었다면, 순종의 메시아는 온 인류를 사망 권세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예수님만은 이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셨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권능을 포기하시고, 순종의 아이콘으로서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순종의 메시아가 진정한 권능의 메시아로 높임 받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주님은 스스로를 낮추심으로 높임 받으신 권능의 왕이 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문제는 소망 없음이 아니라, 잘못된 소망을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기 프레임에 갇힌 채 예수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부활의 증거들을 듣고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를 돌아봅시다. 우리의 소망을 우리 프레임으로 제한하고 가두면 엠마오의 제자처럼 절망과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이들을 친히 찾아가셔서 해 주신 특효약은 말씀과 성령이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그들의 소망이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진단하시고, 말씀 가운데 나타난 메시아를 이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성찬을 베풀어 주셨는데, 주가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에게 해 주셨던 모습 그대로 성찬을 베푸셨습니다. 이 때, 성령이 이들에게 임하여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주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 앞에서 사라지십니다. 이미 성령이 그들의 심령을 터치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라지신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말씀으로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를 서로 나눕니다. 그리고는 그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발걸음은 엠마오로 향하던 발걸음과는 전혀 다른 발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망의 능력’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선하신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꼭 맞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점을 믿으시고, 꼭 붙잡아야 합니다. 신앙의 삶이란, 이것을 찾아가며 실현하는 여정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고 인정한다면 우리는 절망 속에 빠져 있으면 안됩니다. 소망이 회복되면 가슴이 뛰고, 새 희망이 솟아납니다. 처한 상황은 그대로인데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이런 소망함이 우리 심령가운데 충만하십니까?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것 때문에 소망을 잃어버리셨습니까? 소망의 말씀으로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뜨겁게 하심으로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소망이 회복된 것처럼, 심령이 눌리고 답답한 모든 영혼들도 부활의 주님 만나 자유함과 기쁨을 회복하며, 새 소망으로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눔 질문
0 Comments
Leave a Reply. |
"주일설교에 대한 질문을 작성해주세요."
주일 청년부 예배오후 2시 (청년부 예배실) Archives
September 2024
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