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순종과 사랑
요 14:12-24 지난 주에 우리는 마태복음 7장 말씀을 통해서 올바른 믿음과 순종의 관계에 대한 살펴보았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좋은 믿음은 반드시 순종을 맺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14장 말씀을 통해 사랑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계명을 지키는 것, 즉 순종과 ‘사랑’을 특별히 연관짓고 계십니다. 15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주신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였습니다. 주님이 요약하신 구약 율법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이처럼 순종은 사랑 없이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구약의 율법은 언약, 계약적 뉘앙스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의 근원에 있는 정신은 바로 ‘사랑’ 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께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상대방을 위해서 내 행동을 바꿉니다.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은 부끄러움도, 수고도 감수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순종’ 이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이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저는 우리 기독교인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도 알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아는데 예수님을 사랑할 만큼 친근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어떻게 사귈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는 2천년이라는 시간적 갭과, 수만 마일이라는 공간적, 문화적 갭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 분의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차분하고, 깊이 있고, 배려심 있는 모습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 분께 삶을 내어 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과 친밀한 사귐을 하려면 ‘말씀과 묵상’의 방법을 통해야 합니다. 특히, 복음서를 깊이 있게 묵상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오감과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예수님의 행적과 그 속 마음을 깊이 읽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묵상하다보면 예수님의 성품이 느껴집니다. 그 분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된 예수님과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에서 예수님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 대하신 태도나 방법이 깨달아졌으면, 오늘 비슷한 상황에 있는 내게도 반드시 그렇게 대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말씀을 내 삶에 접목하는 근거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역사기록이 아니라, 신자들이 삶에서 살아 내도록 기록된 글입니다.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할 때 삶이 변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예수님 사랑하기’ 프로젝트 설교를 진행하려 합니다.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대표적인 모습들을 뽑아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깊이 있게 묵상하면서, 그 분을 우리가 사랑하도록 나아가려 합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예수님의 평온함’ 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주도하신 일이 아니라, 제자들의 조급함으로 시작된 사건이었습니다. 주께서 빈 들에 가시자 여러 고을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를 보러 나왔는데, 이미 저녁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뭔가 먹여야 할 책임이 있는 제자들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들을 마을로 보내어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한 어린아이 도시락이었던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져오자 주께서 축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눠졌는데 놀라운 배가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이 상황 가운데에서 평안하셨을까요? 이 평온함이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예수님은 광풍이 바다를 삼키려 할 때도 배 뒤편에서 베게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파도치는 바다에서 배를 타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해 볼 때, 이 상황에서 잠을 주무셨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자신들이 죽게 되었는데 주무시기만 하실 거냐고 따지듯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시고 바다와 바람을 꾸짖어 고요하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평온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 중에 인생의 폭풍우 앞에 계신 분 계십니까?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직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십니까? 그럼 괜찮습니다. 여러분도 주님 곁에서 주무셔도 됩니다. 여러분과 예수님은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위험해지면 주께서 깨어나셔서 여러분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지키시는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잡혀 갈 때조차 고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 섰을 때도 당당하면서도 평안함을 유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비록 육체적으로는 극한의 고통으로 떨림이 있으셨지만 그 내면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삶을 살면서 이런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이토록 온유하면서 대범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우리는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성경은 이러한 분이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이런 든든한 목자를 둔 양들입니다. 예수님의 평온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을 여러분께 하시는 말씀으로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심령이 새롭게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가장 어려운 길을 걸으셨기에 그 분의 위로는 우리를 살리는 새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평온함에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새 힘이 있습니다! 위로함이 있습니다! 이 주님 깊이 깊이 사랑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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