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를 버린 자들-바리새인예수님 당시 예수님께 가장 크게 질책을 받은 무리들의 대명사는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유력한 세 분파(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파)중 하나였는데, 그 이름의 뜻은 “구별된 자들” 입니다. 이들은 예수님 오시기 약 2백년 전 밀려오는 헬레니즘 문화와 이방신들에 저항하여 광야로 나가 끝까지 싸우며 율법의 순수성을 지켰던 자들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에게 백성들은 큰 지지를 보냈고, 그들은 이어 회당 (synagogue)을 중심으로 율법과 전승문헌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장로를 세우고 판사 역할을 하며 백성들의 민/형사 및 종교 문제를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바리새인은 종교교육과 재판권을 갖고 점차 백성들의 지도층이 되었고, 백성들에게 존경과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온 장로, 서기관, 제사장, 산헤드린 공의원들도 많은 수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렇듯 이방신을 섬기는 문화에서 율법을 지키는 ‘거룩 회복운동’이란 좋은 뜻으로 시작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당시까지 율법을 수호하기 위해 여러 번 학살과 처형을 받는 어려움도 감수하였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어찌하여 예수님께 가장 책망받는 부류가 되었는지는 역사의 아이러니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어떠한 점을 책망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그들의 외식함을 신랄히 비판하셨습니다. 외식(外飾)이란 겉과 속이 다름을 의미합니다. 또한, 가르치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죽어있는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럼 왜 율법을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바리새인들은 이렇듯 외식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 마음이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충직히 섬기자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로인해 권력층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에 하나님은 사라지고 백성들만 남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을 살피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마3:7, 막11:18, 마21:46 등) 이렇듯 사람이 중심이 되면 권력 중심적, 재물 중심적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 가치관이 성경 말씀보다 강하게 작동해서, 말씀이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튕겨 나갑니다. (눅16:14) 우리는 가급적, ‘하나님도 잘 섬기고, 세상에도 잘 맞춰 사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영적으로 타락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바알도 섬겼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영적 간음으로 간주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라는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처음에는 순수한 신앙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대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자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을 앉힌 것입니다. 그 결과, 헬레니즘을 반대했던 그들은 후에 권력유지를 위해 로마 권력을 끌어들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바리새인들의 영적 타락에는 성경에 대한 임의적 해석 관습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모세오경) 외에도 전승문헌 (미쉬나, 미드라쉬, 탈무드, 할라카 등)을 거의 동등한 권위로 인정합니다. 랍비의 성경해석법 (PRDS 4단계)를 보면 성경본문을 해석할 때 전승문헌을 함께 보도록 합니다. 전승문헌은 말씀과 전혀 관련 없는 수많은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 탈무드) 그래서 랍비들의 성경해석은 굉장히 율법적일 것 같은 첫인상과 반대로 개인별로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말씀 해석 자체는 보수적으로 하고, 이를 적용할 때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독교의 전통적 성경해석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신구약이 통합될 때 하나님의 구원사역, 은혜, 믿음, 종말 등에 대한 이해가 완성됩니다. 구약만 가지고는 이러한 내용이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구약만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세상과 삶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은 전승문헌과 자신들의 영적 상상력으로 해석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유대인들은 말씀의 본질인 메시아에 대한 이해조차 매우 비성서적이 된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을 보면서 놀라운 점은, 우리 안에도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들이 참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 있습니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태도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 사람에게 맞춰지면 그 때부터 우리의 가치기준은 세상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좋은 동기로 시작했지만, 그들이 대중의 지지에 취하면서부터 그들의 영성이 타락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항상 무엇을 하든지 첫 마음을 기억하고, 내가 이 섬김을 왜 하는지 근본 목적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성경말씀을 내 잣대로 가감하지 않고, 순수히 받으며, 순종하는 태도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경해석에 과도한 자기 생각은 우리를 미끄러지게 만듭니다. 말씀은 말씀 안에서 해석하고, 더 많은 노력을 ‘어떻게 살아낼까’에 기울여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율법공부하던 자들이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삶의 현장에서 제자훈련을 받은 자들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보다, 적게 알더라도 순종하는 것이 훨씬 보배로운 이유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이름의 참 뜻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잡아와 사형죄로 넘기고, 주님 부활하시자 거짓으로 제자들에게 시체를 훔친 혐의를 씌웁니다. 예수님을 버린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과 철천지 원수가 됩니다. 반면, 그들에게 탄압받던 초대교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구별된 자”의 삶을 삽니다. 누가 진정한 바리새인 (구별된 사람들) 입니까? 만일, 우리 크리스챤(예수를 따르는 자)이 예수를 따르는 진정한 의미를 놓친다면 우리도 제2의 바리새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는 이 시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신앙의 모습에서 외식함 (겉과 속이 다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2. 내가 사람의 인정을 가장 목말라 하는 분야는 어디인가요?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3. 오늘 말씀을 통해 진정한 크리스쳔의 삶을 살기 위해 내가 결단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해 봅시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면 나는 이미 바리새인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노력하면 우리도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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