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울을 살려준 다윗
본문: 삼상 24:1-7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괴롭고 비참하지만 오히려 가장 빛나는 사건은 그가 사울을 끝까지 하나님이 세우신 왕으로서 존중한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다윗의 왕위 승계과정을 가장 순적하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윗의 모습을 통해 다가올 메시아와 여호와의 마음까지 우리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 살펴봅시다.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집착은 사울이 다윗의 원수가 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는 창으로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딸을 이용하여 다윗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유도했으며,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다윗을 제거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전혀 사울의 왕위를 빼앗으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원수란 사실이 아닌 이유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상대방을 파멸시키려는 자를 가리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이 원수였습니다. 원수의 손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에게 인생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가 엔게디 광야의 한 동굴에 숨어 있을 때 사울이 홀로 그 동굴에 용변을 보러 들어온 것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이 때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고 다윗을 부추깁니다. 만약 다윗도 개인적 감정에만 충실했다면 부하와 같이 생각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엔 여전히 사울은 기름 부어 세운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해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동굴을 나간 후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에서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이 왕의 목숨을 보존해 드렸음을 알립니다. 사울은 감동하여 다시는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용서해 준 원수가 또 원수 짓을 한다면 어떨까요? 사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또 다시 다윗을 죽이려 십 광야로 출동합니다. 이 소식을 다윗이 들었습니다. 그는 부하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을 밤에 몰래 정탐하러 갑니다. 그 곳에 가 보니 사울과 그의 부하들은 경계도 하지 않고 모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아비새는 다윗에게 자신이 사울을 죽이도록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같은 이유로 승낙하지 않습니다. 다윗 일행은 사울의 창과 물병을 취하여 나온 후, 멀리 떨어져 사울의 경호대장 아브넬을 불러 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을 책망합니다. 이 소리를 듣고 일어난 사울은 똑같이 다윗에게 감동하여 용서와 축복을 빌어줍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게 돌아가지 않고 둘은 헤어집니다. 이것이 둘의 마지막 대면이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자기 원수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준 것일까요? 그가 자신과 사울의 관계에 대한 판단을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삼상 24:12, 삼상 26:10) 성경은 원수를 선으로 갚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내가 한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즉, 사울은 사울의 죄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다윗은 다윗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의 죄를 직접 벌하다가 죄를 지으면 그 죄는 다윗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전쟁을 걸어왔습니다. 사울왕은 이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치열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힘에 밀려 퇴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울은 궁수에게 활을 맞아 중상을 입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칼을 꺼내 그 위에 엎드려 자결합니다. 이 날 사울의 세 아들도 모두 전사합니다. 이 소식을 다윗이 전해 듣게 됩니다.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다윗은 자기 옷을 찢고, 저녁 때까지 슬피 울며 금식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애가를 지어 유다 족속에게 가르칩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슬퍼할 수 있었을까요? 정치적 쇼맨십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사울을 마음으로 용서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미웠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울을 보면서 그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를 기름 부으셨다가 그의 왕위를 폐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다윗이 주목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의 광적인 모습을 가장 측근에서 보았습니다. 사울의 삶은 비록 왕이었지만 결코 성공적이거나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울이 아무리 부족한 왕이어도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왕인데, 그가 블레셋 민족에게 짓밟힌 일은 하나님 앞에서도 너무나 슬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면서 사울을 용서한 것입니다. 바로, 메시아가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이 보여준 용서의 영성을 간단히 정리하면,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라’ 입니다.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수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과 처리를 철저히 여호와께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이야 말로 원수에 대해 가장 무서운 판결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만군의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아 원수를 내 마음에서 놓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용서입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원수 된 인간들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를 죽이고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하나님도 다윗처럼 두 번 크게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통해 구원받기를 바라시며 인내하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하나님의 용서의 열매입니다. 은혜와 자비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받은 우리도 같은 마음을 갖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실수가 많았던 다윗이지만 그의 용서의 마음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후에 오실 메시아의 마음이었습니다. 이 마음을 배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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