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낮음과 높음을 분별하는 지혜
우리가 함께 묵상중인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친동생이자 초대교회의 중요한 리더인 야고보가 기록한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특별히 믿음과 행함의 균형을 잘 가르쳐주는 성경으로서 건강한 믿음이 필요한 현대에 더 주목받는 글입니다. 야고보는 그 시작을 신앙인이 받는 시험으로 출발합니다. 시험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 그는 지혜를 구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험을 잘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지혜는 단순히 아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지혜는 삶에 연결된 것으로서 경험의 영역이며 신념과 가치관이자 믿음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신앙은 지식에만 머물러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지혜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야고보가 시험받을 때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 속 뜻은, 지혜가 있어야만 그 시험이 해석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신앙인은 그 시험을 인내하며, 시험 뒤에 올 축복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께로 오는데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합니다. 지혜 없는 사람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보통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어서, 시험받을 때는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이 너무나 간절히 필요한 때가 이 때입니다. 나를 위협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시고, 문제가 해결되도록 주께서 새 길을 열어 주셔야만 됩니다. 이를 구할 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시험을 통과할 때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시련은 보통 오래 걸리고, 해결되기 직전까지 계속 어려운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중간에 지치기가 쉽습니다. 의심이 생깁니다. 바로 이 때가 믿음을 붙잡아야 하는 때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고보는 중간에 의심하는 자를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말합니다. 그의 진단은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만, 내 방법도 따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마음의 평안이 없고, 기도응답의 역사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이런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두 마음의 뜻을 잘못 이해해서 기도만 하고 내 할 바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게으름입니다. 따라서, 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바른 자세는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기도한 후에, 내가 해야 하는 영역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혼자 힘으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야고보는 누가 낮은 자고 누가 높은 자인가에 대해 지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씀합니다(9). 이 말씀은 이사야 40장 말씀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40장의 배경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기를 거의 끝낼 무렵입니다. 따라서, 낮은 형제는 유다 백성이요, 부한 자는 바벨론의 통치자들이 됩니다. 그는 바벨론의 포로인 이스라엘에게 높음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여전히 노예 신분이 그들에게 높음이 있을까요? 그 해석의 실마리는 이사야 40장 3-5절의 메시야 예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노예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높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자는 비록 종이라 할지라도 높은 자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종과 같이 낮아지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만물 위에 높이신 것처럼, 그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는 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회복과 존귀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각이요, 성경의 약속입니다. 심지어 그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높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보다 바벨론의 포로인 이스라엘을, 로마보다 로마의 억압 속에 있는 초대교인들을 높게 보셨습니다. 반대로, 지금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부와 권력은 하나님 보시기엔 그저 잠시 피었다 지는 풀의 꽃과 같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그들 안에는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통치자라 할 지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눈에는 그들은 철저히 역사 속의 조연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주의 백성에게만 있습니다. 청년의 시기에 이 진리를 가슴 속에 새길 수만 있다면 여러분 인생은 정말 존귀하고 높임 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은 실제로는 낮은 자요, 세상에선 낮을 지라도 그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시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인생은 높은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은 예수님의 가치가 그 사람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았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의 폭정에 시달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편지를 읽으며 그리스도가 오시면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들은 낮아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익투스). 이 영성이 초대교회의 영성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축복관은 세상적 축복관을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삶을 무한 경쟁으로 살지 않습니다. 성실하되 삶의 균형을 지키고, 바쁘지만 신앙과 일의 균형을 지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자, 그 분 자체가 안식이십니다(마11:28). 하나님 안에 거하고 허락하신 환경에 자족할 줄 알며, 무한경쟁을 멈추고 자신과 주변을 볼 수 있는 삶을 삽니다. 안식과 사색이 있고 자아 성찰이 있으며 기쁨을 주변과 나눌 수 있는 삶입니다. 성취와 업적보다 신앙의 온전함이 삶의 목표가 되는 삶입니다. 야고보가 권하는 삶, 이런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질문 1. 지혜를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금 내가 구해야 할 지혜는 무엇일까요? 2. 나의 기도는 야고보가 강조하는 믿음의 간구에 가까운가요? (두 마음 vs 한 마음) 3. 성경의 높음과 낮음에 대한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나는 어디쯤 와 있다고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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