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 50:15-21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란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창조세계를 보존하시고, 세상 모든 일에 관여하시며, 만물을 정한 목적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손수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선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믿는 믿음은 기독교적 세계관의 근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신앙의 눈으로 볼 때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세상과 개인에게 일어난 일을 영적 시각으로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영안이 있어야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연법칙이나 우연으로 해석하겠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성도들에게 우연은 없습니다. (A.W. Tozer)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두 가지 (섭리 혹은 우연) 다 해석이 가능하기에,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는 결국 믿음과 선택의 영역에 속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증명하시거나 설득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지만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주신 영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깨달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점은,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뜻만 투영하시는 분이 아니라, 비록 죄 많고 부족한 피조물이라도 그들의 뜻과 결정을 존중해 주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섭리의 3요소 (보존, 통치, 협력)에서도 잘 알 수 있는데, ‘보존’은 하나님이 만물을 보존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며 (히 1:3), ‘통치’란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하신 존재 목적에 맞게 통치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 33:11-14) 가장 중요한 ‘협력’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의 생각과 의지와 협력하여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잠 19:21)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받아, 다른 형제들이 받지 못한 색동옷을 받은 특별한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통해 놀라운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순진한 요셉은 이를 형들에게 자랑하여 가뜩이나 질투심에 가득 찬 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이집트의 종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던 요셉은 옥에서 만난 술관원의 꿈을 해석해 준 일이 계기가 되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일약 이집트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에서 보여준 대로 다가올 흉년을 대비함으로써 이집트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많은 사람들, 게다가 자기 가족의 목숨을 구하는 놀라운 일을 하게 됩니다. 섭리의 라틴어는 provideo인데, 이는 ‘미리 알고 대책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하신 일이 바로 ‘섭리’ 인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을 매정하게 이집트로 팔아 넘긴 형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이 일은 요셉이 겪은 그 어떤 일보다 더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요셉의 깊은 상처와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19-21절을 보면 요셉은 자신의 비극적 상처를 하나님의 섭리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요셉에게 형들의 악한 계획을 허용하셨는지 요셉은 이미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보존되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지켜졌으며, 형제간의 화평이 유지되었습니다. 이것이 섭리의 결과입니다. 또한, 요셉 자신에게도 아픈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 삶이 재해석되면 상처는 치유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사람은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게조차 심판자의 자리에 서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를 끼친 사람과도 화평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롬 8:28)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섭리 신앙’은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줍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셔서 내 삶을 확실하게 이끄시고 책임지고 계심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어지고,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시 84:11, 렘 32:28) 둘째, ‘역경 속에서 인내’ 할 수 있게 됩니다. 역경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을 신뢰하며 우리는 소망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시 39:9) 슬픔 속에서 고요함을 유지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골 1:11) 셋째, ‘기도의 용사’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협력’적 섭리라는 말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때 기도하는 자를 찾으시고, 기도를 명령하시고,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지의 미래를 향한 소망의 빛’을 밝혀 줍니다. 특히 청년의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에 대한 선하신 뜻과 계획을 다 갖고 계십니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선하게 풀어가실 것입니다. 그것을 다 이루실 때까지 결코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는 삶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붙잡고, 영안으로 세상으로 바라볼 줄 알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동참하는 복된 인생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오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그동안 오해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2.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은 쓰지만, 섭리의 결과는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함께 나눠보세요. 설교에서 제시한 섭리의 유익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다면 함께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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